by 성현 » 2010년5월21일(금) 21:00
월드컵도 곧 오고하니 글 하나 올려봅니다. 뭐 월드컵16강이 어쩌니 저쩌니 하는건 솔직히 식상하니 한번 역사를 되짚어보자는 의미에서(...) 역사적인 경기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기준은 피파주관 성인대회인 월드컵과 올림픽 본선에서만 제한합니다. 제3국가의 범주는 아시아/아프리카로 한정하겠습니다. 북중미는 그래도 한깨나 했었으니까요~
올림픽 본선
6위. 1996년 나이지리아 4-3 브라질(미국 애틀란타)
'슈퍼 이글스'의 포스가 나던 경기이죠. 또 뒤에서도 언급될 것이지만, 카누 오코차 등의 선수들의 대활약이 돋보였던 경기라 할수 있겠습니다. 일단 브라질 멤버가 쩔었죠. 골키퍼 디다, 로마 주전 센터백 알다이르, 레알 주전 선수였기도 했던 콘세이상, 02년 월컵 주전멤버 주닝요 파울리스타(리옹의 선수와 다른 선수입니다.), 카를로스, 베베토, 히바우두, 호나우두야 말이 필요없고요..
종료 13분전까지 1-3으로 지고있다가 4-3으로 뒤집습니다. 은완코 카누는 동점골과 역전골을 넣고 영웅이 되죠. 물론 이것도 그 이후의 쾌거를 준비하는 것밖에 불과했다게 더욱 ㅎㄷㄷ 합니다.
5위. 2004년 이라크 4-2 포르투갈(그리스 파트라스)
미국의 침공으로 나라사정이 말이 아니었던 이라크이기에 이 경기의 승리는 매우 값졌지요. 포르투갈이 부실한 멤버로 데꼬온것도 아닙니다. 호날두에 휴고 비아나, 보싱와(유일한 포르투갈 득점자.. 한골은 자살골) 알메이다 등 지금 활약하던 선수들이 대부분 들어와있던 팀이었죠. 당시 퍼거슨에게 찍힐 위험을 불사하고 리그 개막까지 째고 올림픽 본선에 출전했던 호날두는 경기중에 이라크 선수들 때려서 유혈사태까지 만드는 뻘짓을 저지르고 조별리그 2경기만에 다시 맨유로 돌아옵니다.
4위. 1996년 일본 1-0 브라질 (미국 마이애미)
일본인들에게 '마이애미의 기적'이라 일컬어지는 전설적인 승리이죠. 물론 동시에 한국은 올림픽 본선 48년만에 승리를 일구는 쾌거를 맛보긴 했습니다만, 히바우두와 베베토, 카를로스가 있었던 브라질의 스무개에 달하는 유효슈팅을 전부 막아낸 가와구치의 선방이 빛이 발했던 경기였죠. 허나 이 경기에서 활약했던 죠 쇼지나 마에조노는 그 이후에는 별다른 활약없이 조용히 은퇴하게 됩니다. 참고로 현 감바 오사카 감독이 이때 일본 올림픽팀 감독이었죠.
3위. 1988년 잠비아 4-0 이탈리아(한국 광주무등구장)
만약 이 경기가 결선 토너먼트였다면 아마 이 순위에서 1위를 결정지었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88년 올림픽축구는 프로선수들의 문호가 전면적으로 개방되면서 나이제한도 없었던 유일한 대회였죠. 호마리우 클린스만 최순호 스토이코비치 미하일리첸코..다시말해 월드컵을 방불케했던 가장 최고수준의 대회였습니다. 그렇기에 가중치를 최대한으로 주었습니다. 잠비아의 축구영웅이었던, (한국의 차범근급인) 칼루샤 브왈야가 헤트트릭을 기록했었죠. 유투브에서도 봤었는데, 잠비아 선수들의 예측불가능한 움직임덕에 결정적인 순간마다 실점해서 대량실점으로 이어진거 같더군요. 당시 대회 4강까지 올라갔고, 서독과 소비에트와 상대해서 막상막하의 경기력을 보여주였던 이탈리아였기에 말이죠. 암튼 듣보잡 취급하던 이탈리아 선수들은 경기후 펜과 종이를 들고...(중략). 아무튼 헤트트릭을 기록한 브왈야 선수는 서울올림픽축구 득점 공동 2위를 기록했습니다.
2위. 2000년 카메룬 2-2(PK5-3) 스페인(호주 시드니)
카메룬 골키퍼 카메니의 승부차기 선방으로-02년 한국-스페인전과 비슷하군요- 당시 카메룬 올림픽 전종목에서 유일한 금메달을 따내고야 맙니다. 0-2로 지고있다가 2골을 따라붙은것도 카메룬이나 한국이나 비슷하군요. 아무튼 카메룬 축구 역사상 가장 큰 쾌거를 이루고 냅니다. 4년전의 나이지리아에 이어서 가까운 미래에 월컵 본선에서도 제 3국가의 우승을 점칠수 있다는 기대를 부풀게 만들었습니다. 에투는 이대회 덕에 레알에서의 주전자 신세의 부진을 털게 되었지요.
1위. 1996년 나이지리아 3-2 아르헨티나(미국 아틀란타)
88년의 잠비아가 초석이었고, 92년의 가나의 동메달이 성장이었다면, 나이지리아의 금메달은 쾌거이자 절정이라고 봐야 되겠지요. 94년에 이탈리아를 16강전에서 날려보낼 뻔했던 그들이 사고를 쳤습니다. 카누 오코차 바방기다.. 아드리아누 이전의 위닝계의 신들이었던 그들이 보여줬던건 '센세이션'이었읍죠. 4강전에서 브라질전의 2점차로 뒤진 상황에서 뒤집기를 성공시킨데 이어 또다시 뒤집기에 성공합니다. 결승골이 볼만했는데요, 아르헨티나의 약속된 오프사이드 트랩 작전을 완벽하게 무력화 시키면서 경기종료직전 역전골을 성공시킵니다. '아프리카의 월드컵 우승예상'이 현실화가 된 순간이었죠.
올림픽 본선은 프로선수들의 문호가 본격적으로 개방되었던 88년 대회 이후부터 기점으로 합니다. 상대팀들은 월드컵/올림픽 우승권의 국가와 대결한 것으로 걸려냈습니다. 같은 성인 대회이긴 합니다만 88년 이전의 대회는 비프로 선수들만이 허락되었으니 제 3세계 국가들의 호성적이 난무했었죠. 순위기준은 팀간의 전력차이나 경기전까지 받던 평판의 차이와, 어느 라운드에서 이겼는지에 더 가중치를 두었습니다. 물론 조별리그 경기에서 더욱 경악할만한 승부가 있었기에 윗순위로 올라가긴 했습니다. 그리고 그 업적이 비등한 경우라면, 더 이전의 대회의 사건에 더 가중치를 두었습니다. 선구자적인 면을 생각해야 될거 같아서요.
순위 외의 경기
1948년 한국 5-3 멕시코 (잉글랜드 런던)
물론 프로위주의 대회가 아니었습니다만, 태평양 전쟁기간 동안의 공식적인 축구경기 금지조치에 의한 공백과 정부수립도 안된 상황에서 거둔 승리였다는 점에서 한국축구 역사상 가장 기념비적인 경기라 칭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988년 한국 0-0 소비에트 (한국 부산구덕)
무승부라는 결과와 홈 그라운드였다는 점이 자격 미달이긴 합니다만, 당시 소련이 브라질, 아르헨과 삐까뜨던 팀이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 대회 우승국이었다는 점에서 순위 외라도 언급될만하지 않을까 합니다. 참고로 소비에트 감독이 8년뒤엔 한국 올림픽 대표팀 감독을 맡게 됩니다. 그 이름은 아나톨리 비쇼베츠..
아이러니입니다만, 92스페인팀을 빼고 월드컵과 달리 이후 올림픽본선 개최국들의 성적이 매우 저조했었다네요.
2000년 카메룬2-1브라질(호주 브리즈번)
순위권에서 아주 아깝께 떨어진 경기였습니다. 카메룬의 올림픽 우승의 초석이 되었던 경기라죠.. 2000-2001년의 브라질이 침체기였던 점에서 점수를 좀 깍아먹은 면이 있습니다. 이 경기 끝나고 룩셈부르고 감독이 대표팀 감독자리에 짤리는 일이 발생하죠.
월드컵 본선
14위. 1994년 한국 2-2 스페인(미국 댈러스)
66년 북한을 제외하고 아시아팀들중에서 유럽 정상권 팀과 무승부 이상을 이끌어낸 예는 이 경기가 최초라고 생각합니다. 사우디의 벨기에전 승리는 며칠 뒤이 일이죠. 처음에 선취골 넣다가 무승부가 된것도 아닙니다. 강팀을 상대로 경기종료 5분전까지 두점차로 뒤지다가 경기 종료직전 따라붙고야 말았던거죠. 당시 월드컵 본선 1무 7패의 한국팀이 일궈낸 이 무승부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쾌거였다고 생각합니다.
13위. 1990년 이집트 0-0 네덜란드(이탈리아 팔레르모)
카메룬의 8강신화에 가려졌던게 이집트의 선전이었다죠. 이집트도 카메룬에 준하는 선전을 펼친 덕에 아프리카에 티켓이 한장 더 주어지지 않았을까 합니다. 상대팀은 유로88에서 폭풍포스를 보이며 우승을 차지한 네덜란드. 선전을 펼치며 막판 동점골로 무승부를 이끌어냅니다. 아쉽게 잉글랜드에게 패배해서 16강에 떨어졌다네요.
12위. 1986년 모로코 0-0 잉글랜드(멕시코 몬테레이)
1차전 폴란드와 무승부를 이끌어낸 모로코가 잉글랜드하고도 또 무승부를 이끌어냅니다. 당시의 잉글랜드는 나름 마이다스의 손이었던 보비 롭슨감독이 이끌던 괜찮던 팀이었습니다. 브라이언 롭슨과 리네커가 있었읍죠. 물론 저 두번의 무승부는 비난을 받을정도의 수비축구에서 비롯된 거였습니다만, 이것은 다음경기의 신화를 위한 준비작업이었죠.
11위. 1982년 카메룬 1-1 이탈리아(스페인 비고)
당시 아프리카를 대표한 두팀의 통합성적이 6경기에서 무려 2승3무1패였답니다. 아시아 국가들로서는 꿈도 못꾸는 성적표이지요. 이 3무는 전부 카메룬이 작성해 냈었습니다. 물론 강팀들중에는 조별리그에서 힘 못쓰다가 결선토너먼트부터 풀파워를 나타내는 경향덕에 얻은 성적이라고 보일수 있습니다만, 당시 대회 우승국 상대로의 무승부는 기억될만한 자격이 있지요.
이탈리아가 이 경기를 겨우 비기고 카메룬과 무려 똑같은 3무를 기록합니다만, 다득점으로 조 2위로 올라가지요. 물론 그 이후는 다 아시듯이 우승입니다만, 이탈리아 국민들은 기대도 안했답니다. 이후에는 이 경기가 승부조작이 아니었나는 시비에 물리기도 했었지요. 뭐 며칠 지나고 흐지부지 됬지만요.
10위. 1978년 튀니지 0-0 서독 (아르헨티나 코르도바)
언급은 되진 않았지만, 아프리카 축구 최초의 월드컵 본선 승리를 거둔 나라가 튀니지입니다. 멕시코를 3-1로 격파하지요. 물론 멕시코가 그때까지는 '월드컵 공인 승점자판기'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르죠. 물론 베켄바워와 뮬러가 빠졌습니다만 그들은 월드컵 본선서 뼈가 굵었지 말이죠. 아무튼 강력한 수비로 서독의 공격전을 전부 막아냈습니다만, 당대 최강팀 폴란드와의 2차전 패퇴가 발목을 잡아서 '카르타고의 후예들'의 반란은 조별리그에서 끝나게 되었습니다.
9위. 1994년 사우디 1-0 벨기에 (미국 워싱턴)
66년 천리마팀 이후로 월드컵 본선에서 유럽팀을 꺽은 팀이 나타났습니다! 그것도 월드컵 최초 출전국이 말이지요. 물론 사우디가 이전부터 오일달러를 이용해서 브라질이나 유럽의 감독을을 초빙해서 실력을 다졌긴 했었습니다. 이것은 결국 이전의 전통강호였던 한국이나 북한 이라크 이란등을 따돌리고 본선에 올라가게 만들었지요. 이 경기에서 볼것은 다른거 없이 득점이었죠. 오와이란이 자기진영 페널티박스 근처에서 공을 잡아서 70미터를 달리며 상대 수비수들을 따돌리고 골을 넣은것은 마라도나와도 견주어서 전혀 손색이 없다고 보여집니다.
8위. 1998년 나이지리아 3-2 스페인(프랑스 낭트)
이전에 열거되었던 경기들중에 상당수는 강팀을 상대로 강력한 수비를 바탕으로 승리나 무승부를 따낸 예가 많았습니다. 물론 상대적으로 최근에 벌여졌던 경기였습니다만, 선수비 후역습의 경기가 아닌 강팀과의 난타전이었던 경기 내용이 더 높은 점수를 주게 만들지 않았을까 합니다. 사실 2-2동점골을 내준 주비사레타 골키퍼의 실수가 승부에 영향을 줬다고 봅니다. 결국 이 경기는 이 대회에서 가장 최고의 명승부로 불려지게 되었구요. 암튼 선데이 올리세의 140km짜리 중거리슛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물론 이 다음 경기가 한국-멕시코전이었다는게 좀 안습이었죠ㅠㅠ
7위. 1986년 모로코 3-1 포르투갈 (멕시코 과달라하라)
잉글랜드 전까지 수비 위주의 경기를 펼쳤던 모로코팀. 운명의 3차전에서 가드를 내리고 포르투갈을 상대로 난타를 벌이기 시작합니다. 상대적으로 약팀이었던 포르투갈 상대로 총공격을 가한 것이었죠. 대첩을 이루어냅니다. 포르투갈이 한골 만회하기전까지 3-0으로 앞섰다는 점에서 말 다한거죠. 이 경기후 모로코는 무려 조 1위로 아프리카 최초로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돌파를 일구어내고야 맙니다. 4년전에 초대박을 터트렸던 이웃나라 알제리는 1무 2패로 쪽박차는 동안에 말이죠.
6위. 2002년 한국 0-0 (PK 5-3)스페인 (한국 광주월드컵경기장)
개최국 어드벤티지가 분명히 있었습니다만, 개최국으로도 저조한 성적을 보였던 예가 없었던건 아닙니다. 82년 스페인, 94년 미국, 02년 일본의 예를 비교해보면 당당히 6위에 올릴만한 경기입니다. 날씬한 이운재님의 퍼포먼스가 쩔었었죠. 아무튼 한국은 백여년간 절대로 깰수 없는 기록을 만들고야 말았습니다. 물론 이게 한국 축구계에 양날검이 되었다는게 문제라면 문제겠네요.
5위. 2002년 한국2-1 이탈리아 (한국 대전)
다른거 없습니다. 월드컵/올림픽에서 이탈리아를 역전시켜 이겼던 예가 1988년 서울올림픽 소비에트였다는 점에서 초유의 명승부였다고 보여지네요. 상당히 최근의 일이고 홈 그라운드였다는 점이 다른 예들보다 뒤로 밀리게 됬긴 하지만요. 물론 너무나 많이 회자되긴 합니다만 히딩크가 밀루티노비치를 능가하는 '세계최고의 목표 달성인'이라는 칭호를 붙이게 만들었던 순간이기도 했죠.
4위 2002년 세네갈1-0프랑스(한국 서울)
월드컵 개막전, 상대는 지난대회 우승국. 그리고 처녀진출국 세네갈. 사실 그 이전 98년 대회때는 지역 최종예선도 못올라갔었더군요 ㄷㄷ.. 골대의 신이 돕기는 많이 도와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경기의 승리에 힘입어 세네갈은 월드컵 8강까지 올라가게 되지요. 94 미국 월드컵과 더불어 이변이 난무했던 대회가 02년 대회이기도 합니다.
3위. 1990년 카메룬 1-0 아르헨티나(이탈리아 밀란)
02년의 예보다 더 높은 순위를 차지한 이유야 더 앞선 시절이었던게 큰 이유죠. 그리고 유럽 남미 선수들이 익숙했던 개최지였던것도 플러스 점수가 들어갔습니다. 오맘 비크의 골로 카메룬은 역사를 쓰게 시작되지요. 카니자에게 살인태클 날리랴해서 2명이나 퇴장당했지만 결국 소기의 목적을 얻고 맙니다. 참고로 카메룬팀 감독이 부천의 니폼니시 감독이었다죠.
결국 카메룬팀과 앞서 언급한 이집트덕에 아프리카는 다음 대회부터 6대주에서 3번째로 많은 티켓을 배분받게 됩니다.
2위. 1982년 알제리 2-1 서독 (스페인 히혼)
이번 월드컵에서 제 개인적으로 알제리에게 기대를 거는게 이런 예가 있어서였지요. 알제리 역사상 최고의 선수들인 벨루미와 마제르가 포진되었던 알제리팀은 주고받기를 하며 알제리의 2-1 승리를 이끌어냅니다. 당시 서독 멤버가 대박이었죠. 마테우스와 루메니게, 후루베시 브라이트너가 포진된 서독팀은 알제리의 맞춤 전술 덕에 굴욕을 당하게 됩니다. 지난 대회의 튀니지가 깊은 여운을 남겼긴 했지만, 이런 대형 폭탄은 생각도 못하는 일이었죠. 2차전 오스트리아전에서 패배하게 되는데 이것이 나중에 뼈아픈 실책이 되고 말았죠. 조별리그에서 2승 1패도 조 3위가 될수있는 '경우의 수'가 존재했었던거죠..
결국 서독은 나중에 동족 오스트리아와 '어뷰징'급의 뺑끼를 부리면서 조별리그에서 살아나고 알제리는 더없는 억울함을 안기게 되죠. 그래서 다음 대회부터 조별예선 3차전은 동시경기를 하게 만들도록 정관이 개정되고 말았습니다.
1위. 1966년 북한 1-0 이탈리아 (잉글랜드 미들스보로)
이 경기가 독보적인 1위에 뽑힌 이유는, 당시의 아시아/아프리카축구가 받던 대우와, 이탈리아의 전력. 그리고 대회가 강호들에게 최적화되었던 잉글랜드였다는 점. 그리고 더욱이 중요한것은 이 경기가 나중에 보여줬던 파급력이 엄청났다는 점이었습니다.
66년 월드컵 지역예선부터 언급해보자면, 티켓 배분이 이랬답니다. 개최국/전대회우승국 유럽 10장 남미 3장 북중미 1장 그리고..아시아/아프리카/대양주 1장....이때 아프리카 국가들이 빡쳐서 죄다 대회 불참하게 되죠. 이런 상황이었습니다. 뭐 62년 대회는 더 쩔엇죠. 아프리카 0.5장. 아시아 0.5장. 그리고 플레이오프 상대는 전부 유럽. 말 다한거죠. 북한이 일궈낸 이 업적의 파급력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독립적인 지역 예선전 확립과 각 지역에 1장의 티켓을 보장받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어쩔수 없었던 남한덕에 줄었던 파이가 다시 복구아니 확대되었던 거죠.
북한이 63년부터 합숙훈련을 통해서 경기력을 늘렸습니다. 그때문에 출전권이 있었던 도쿄올림픽도 불참하게 되죠. 물론 약체팀이었다지만 양놈들의 팀인 호주를 2차전 통합 9-2로 작살냅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3차전 이태리전..
박두익의 골로 1승 1패의 이탈리아를 탈락시키고 1승 1무 1패로 8강에 오르고야 맙니다. 이때 프랑스와 브라질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던것을 견주어 볼때 완전 신화였던 거죠. 북한에 매료된 미들스보로 시민들은 8강전이 펼쳐질 리버풀을 향해서 원정응원을 펼치러 갔다는 전설이 있었답니다.
안타까운 점은 북한의 타 정치파 숙청으로 인해 선수들이 다 작살이 났던거죠. 북한대표선수와 김일성과는 라이벌 정치파였답니다. 소련파였던거 연안파였다던가.. 그래서 되려 70년대에 월컵 최종예선도 못올라가는 수준으로 전락하다가 90년대부터 궤도에 오르고 지금의 수준에 올라왔죠. 66년 천리마팀의 업적은 월드컵이 유럽 남미의 전유물에서 진정한 세계적인 대회로 범위를 넓히게 한 혁명적인 사건이라 볼수 있겠습니다.
아쉽게 떨어진 경기가 82년 쿠웨이트1-1체코슬로바키아, 그리고 득점자도 황당해 했다는 50년 브라질 대회 미국1-0잉글랜드. 78년 이란1-1스코틀랜드가 있는데.. 공통적으로 그 경기 빼고는 전부 저조한 경기력을 보였다는데에 있었습니다.
이런 경기들 덕에 유럽남미를 제외한 타 지역의 국가들이 이정도의 행정적인 대접을 받을수 있는 데는 이런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에 한번 정리해 봤습니다. 오랜만에 쓰는데 이렇게 방대한 양이라니 ㅡㅡ;
아 그리고 광주는.. 세계축구에 기억될만한 도시이군요 ㄷㄷ
월드컵도 곧 오고하니 글 하나 올려봅니다. 뭐 월드컵16강이 어쩌니 저쩌니 하는건 솔직히 식상하니 한번 역사를 되짚어보자는 의미에서(...) 역사적인 경기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기준은 피파주관 성인대회인 월드컵과 올림픽 본선에서만 제한합니다. 제3국가의 범주는 아시아/아프리카로 한정하겠습니다. 북중미는 그래도 한깨나 했었으니까요~
올림픽 본선
6위. 1996년 나이지리아 4-3 브라질(미국 애틀란타)
'슈퍼 이글스'의 포스가 나던 경기이죠. 또 뒤에서도 언급될 것이지만, 카누 오코차 등의 선수들의 대활약이 돋보였던 경기라 할수 있겠습니다. 일단 브라질 멤버가 쩔었죠. 골키퍼 디다, 로마 주전 센터백 알다이르, 레알 주전 선수였기도 했던 콘세이상, 02년 월컵 주전멤버 주닝요 파울리스타(리옹의 선수와 다른 선수입니다.), 카를로스, 베베토, 히바우두, 호나우두야 말이 필요없고요..
종료 13분전까지 1-3으로 지고있다가 4-3으로 뒤집습니다. 은완코 카누는 동점골과 역전골을 넣고 영웅이 되죠. 물론 이것도 그 이후의 쾌거를 준비하는 것밖에 불과했다게 더욱 ㅎㄷㄷ 합니다.
5위. 2004년 이라크 4-2 포르투갈(그리스 파트라스)
미국의 침공으로 나라사정이 말이 아니었던 이라크이기에 이 경기의 승리는 매우 값졌지요. 포르투갈이 부실한 멤버로 데꼬온것도 아닙니다. 호날두에 휴고 비아나, 보싱와(유일한 포르투갈 득점자.. 한골은 자살골) 알메이다 등 지금 활약하던 선수들이 대부분 들어와있던 팀이었죠. 당시 퍼거슨에게 찍힐 위험을 불사하고 리그 개막까지 째고 올림픽 본선에 출전했던 호날두는 경기중에 이라크 선수들 때려서 유혈사태까지 만드는 뻘짓을 저지르고 조별리그 2경기만에 다시 맨유로 돌아옵니다.
4위. 1996년 일본 1-0 브라질 (미국 마이애미)
일본인들에게 '마이애미의 기적'이라 일컬어지는 전설적인 승리이죠. 물론 동시에 한국은 올림픽 본선 48년만에 승리를 일구는 쾌거를 맛보긴 했습니다만, 히바우두와 베베토, 카를로스가 있었던 브라질의 스무개에 달하는 유효슈팅을 전부 막아낸 가와구치의 선방이 빛이 발했던 경기였죠. 허나 이 경기에서 활약했던 죠 쇼지나 마에조노는 그 이후에는 별다른 활약없이 조용히 은퇴하게 됩니다. 참고로 현 감바 오사카 감독이 이때 일본 올림픽팀 감독이었죠.
3위. 1988년 잠비아 4-0 이탈리아(한국 광주무등구장)
만약 이 경기가 결선 토너먼트였다면 아마 이 순위에서 1위를 결정지었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88년 올림픽축구는 프로선수들의 문호가 전면적으로 개방되면서 나이제한도 없었던 유일한 대회였죠. 호마리우 클린스만 최순호 스토이코비치 미하일리첸코..다시말해 월드컵을 방불케했던 가장 최고수준의 대회였습니다. 그렇기에 가중치를 최대한으로 주었습니다. 잠비아의 축구영웅이었던, (한국의 차범근급인) 칼루샤 브왈야가 헤트트릭을 기록했었죠. 유투브에서도 봤었는데, 잠비아 선수들의 예측불가능한 움직임덕에 결정적인 순간마다 실점해서 대량실점으로 이어진거 같더군요. 당시 대회 4강까지 올라갔고, 서독과 소비에트와 상대해서 막상막하의 경기력을 보여주였던 이탈리아였기에 말이죠. 암튼 듣보잡 취급하던 이탈리아 선수들은 경기후 펜과 종이를 들고...(중략). 아무튼 헤트트릭을 기록한 브왈야 선수는 서울올림픽축구 득점 공동 2위를 기록했습니다.
2위. 2000년 카메룬 2-2(PK5-3) 스페인(호주 시드니)
카메룬 골키퍼 카메니의 승부차기 선방으로-02년 한국-스페인전과 비슷하군요- 당시 카메룬 올림픽 전종목에서 유일한 금메달을 따내고야 맙니다. 0-2로 지고있다가 2골을 따라붙은것도 카메룬이나 한국이나 비슷하군요. 아무튼 카메룬 축구 역사상 가장 큰 쾌거를 이루고 냅니다. 4년전의 나이지리아에 이어서 가까운 미래에 월컵 본선에서도 제 3국가의 우승을 점칠수 있다는 기대를 부풀게 만들었습니다. 에투는 이대회 덕에 레알에서의 주전자 신세의 부진을 털게 되었지요.
1위. 1996년 나이지리아 3-2 아르헨티나(미국 아틀란타)
88년의 잠비아가 초석이었고, 92년의 가나의 동메달이 성장이었다면, 나이지리아의 금메달은 쾌거이자 절정이라고 봐야 되겠지요. 94년에 이탈리아를 16강전에서 날려보낼 뻔했던 그들이 사고를 쳤습니다. 카누 오코차 바방기다.. 아드리아누 이전의 위닝계의 신들이었던 그들이 보여줬던건 '센세이션'이었읍죠. 4강전에서 브라질전의 2점차로 뒤진 상황에서 뒤집기를 성공시킨데 이어 또다시 뒤집기에 성공합니다. 결승골이 볼만했는데요, 아르헨티나의 약속된 오프사이드 트랩 작전을 완벽하게 무력화 시키면서 경기종료직전 역전골을 성공시킵니다. '아프리카의 월드컵 우승예상'이 현실화가 된 순간이었죠.
올림픽 본선은 프로선수들의 문호가 본격적으로 개방되었던 88년 대회 이후부터 기점으로 합니다. 상대팀들은 월드컵/올림픽 우승권의 국가와 대결한 것으로 걸려냈습니다. 같은 성인 대회이긴 합니다만 88년 이전의 대회는 비프로 선수들만이 허락되었으니 제 3세계 국가들의 호성적이 난무했었죠. 순위기준은 팀간의 전력차이나 경기전까지 받던 평판의 차이와, 어느 라운드에서 이겼는지에 더 가중치를 두었습니다. 물론 조별리그 경기에서 더욱 경악할만한 승부가 있었기에 윗순위로 올라가긴 했습니다. 그리고 그 업적이 비등한 경우라면, 더 이전의 대회의 사건에 더 가중치를 두었습니다. 선구자적인 면을 생각해야 될거 같아서요.
순위 외의 경기
1948년 한국 5-3 멕시코 (잉글랜드 런던)
물론 프로위주의 대회가 아니었습니다만, 태평양 전쟁기간 동안의 공식적인 축구경기 금지조치에 의한 공백과 정부수립도 안된 상황에서 거둔 승리였다는 점에서 한국축구 역사상 가장 기념비적인 경기라 칭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988년 한국 0-0 소비에트 (한국 부산구덕)
무승부라는 결과와 홈 그라운드였다는 점이 자격 미달이긴 합니다만, 당시 소련이 브라질, 아르헨과 삐까뜨던 팀이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 대회 우승국이었다는 점에서 순위 외라도 언급될만하지 않을까 합니다. 참고로 소비에트 감독이 8년뒤엔 한국 올림픽 대표팀 감독을 맡게 됩니다. 그 이름은 아나톨리 비쇼베츠..
아이러니입니다만, 92스페인팀을 빼고 월드컵과 달리 이후 올림픽본선 개최국들의 성적이 매우 저조했었다네요.
2000년 카메룬2-1브라질(호주 브리즈번)
순위권에서 아주 아깝께 떨어진 경기였습니다. 카메룬의 올림픽 우승의 초석이 되었던 경기라죠.. 2000-2001년의 브라질이 침체기였던 점에서 점수를 좀 깍아먹은 면이 있습니다. 이 경기 끝나고 룩셈부르고 감독이 대표팀 감독자리에 짤리는 일이 발생하죠.
월드컵 본선
14위. 1994년 한국 2-2 스페인(미국 댈러스)
66년 북한을 제외하고 아시아팀들중에서 유럽 정상권 팀과 무승부 이상을 이끌어낸 예는 이 경기가 최초라고 생각합니다. 사우디의 벨기에전 승리는 며칠 뒤이 일이죠. 처음에 선취골 넣다가 무승부가 된것도 아닙니다. 강팀을 상대로 경기종료 5분전까지 두점차로 뒤지다가 경기 종료직전 따라붙고야 말았던거죠. 당시 월드컵 본선 1무 7패의 한국팀이 일궈낸 이 무승부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쾌거였다고 생각합니다.
13위. 1990년 이집트 0-0 네덜란드(이탈리아 팔레르모)
카메룬의 8강신화에 가려졌던게 이집트의 선전이었다죠. 이집트도 카메룬에 준하는 선전을 펼친 덕에 아프리카에 티켓이 한장 더 주어지지 않았을까 합니다. 상대팀은 유로88에서 폭풍포스를 보이며 우승을 차지한 네덜란드. 선전을 펼치며 막판 동점골로 무승부를 이끌어냅니다. 아쉽게 잉글랜드에게 패배해서 16강에 떨어졌다네요.
12위. 1986년 모로코 0-0 잉글랜드(멕시코 몬테레이)
1차전 폴란드와 무승부를 이끌어낸 모로코가 잉글랜드하고도 또 무승부를 이끌어냅니다. 당시의 잉글랜드는 나름 마이다스의 손이었던 보비 롭슨감독이 이끌던 괜찮던 팀이었습니다. 브라이언 롭슨과 리네커가 있었읍죠. 물론 저 두번의 무승부는 비난을 받을정도의 수비축구에서 비롯된 거였습니다만, 이것은 다음경기의 신화를 위한 준비작업이었죠.
11위. 1982년 카메룬 1-1 이탈리아(스페인 비고)
당시 아프리카를 대표한 두팀의 통합성적이 6경기에서 무려 2승3무1패였답니다. 아시아 국가들로서는 꿈도 못꾸는 성적표이지요. 이 3무는 전부 카메룬이 작성해 냈었습니다. 물론 강팀들중에는 조별리그에서 힘 못쓰다가 결선토너먼트부터 풀파워를 나타내는 경향덕에 얻은 성적이라고 보일수 있습니다만, 당시 대회 우승국 상대로의 무승부는 기억될만한 자격이 있지요.
이탈리아가 이 경기를 겨우 비기고 카메룬과 무려 똑같은 3무를 기록합니다만, 다득점으로 조 2위로 올라가지요. 물론 그 이후는 다 아시듯이 우승입니다만, 이탈리아 국민들은 기대도 안했답니다. 이후에는 이 경기가 승부조작이 아니었나는 시비에 물리기도 했었지요. 뭐 며칠 지나고 흐지부지 됬지만요.
10위. 1978년 튀니지 0-0 서독 (아르헨티나 코르도바)
언급은 되진 않았지만, 아프리카 축구 최초의 월드컵 본선 승리를 거둔 나라가 튀니지입니다. 멕시코를 3-1로 격파하지요. 물론 멕시코가 그때까지는 '월드컵 공인 승점자판기'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르죠. 물론 베켄바워와 뮬러가 빠졌습니다만 그들은 월드컵 본선서 뼈가 굵었지 말이죠. 아무튼 강력한 수비로 서독의 공격전을 전부 막아냈습니다만, 당대 최강팀 폴란드와의 2차전 패퇴가 발목을 잡아서 '카르타고의 후예들'의 반란은 조별리그에서 끝나게 되었습니다.
9위. 1994년 사우디 1-0 벨기에 (미국 워싱턴)
66년 천리마팀 이후로 월드컵 본선에서 유럽팀을 꺽은 팀이 나타났습니다! 그것도 월드컵 최초 출전국이 말이지요. 물론 사우디가 이전부터 오일달러를 이용해서 브라질이나 유럽의 감독을을 초빙해서 실력을 다졌긴 했었습니다. 이것은 결국 이전의 전통강호였던 한국이나 북한 이라크 이란등을 따돌리고 본선에 올라가게 만들었지요. 이 경기에서 볼것은 다른거 없이 득점이었죠. 오와이란이 자기진영 페널티박스 근처에서 공을 잡아서 70미터를 달리며 상대 수비수들을 따돌리고 골을 넣은것은 마라도나와도 견주어서 전혀 손색이 없다고 보여집니다.
8위. 1998년 나이지리아 3-2 스페인(프랑스 낭트)
이전에 열거되었던 경기들중에 상당수는 강팀을 상대로 강력한 수비를 바탕으로 승리나 무승부를 따낸 예가 많았습니다. 물론 상대적으로 최근에 벌여졌던 경기였습니다만, 선수비 후역습의 경기가 아닌 강팀과의 난타전이었던 경기 내용이 더 높은 점수를 주게 만들지 않았을까 합니다. 사실 2-2동점골을 내준 주비사레타 골키퍼의 실수가 승부에 영향을 줬다고 봅니다. 결국 이 경기는 이 대회에서 가장 최고의 명승부로 불려지게 되었구요. 암튼 선데이 올리세의 140km짜리 중거리슛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물론 이 다음 경기가 한국-멕시코전이었다는게 좀 안습이었죠ㅠㅠ
7위. 1986년 모로코 3-1 포르투갈 (멕시코 과달라하라)
잉글랜드 전까지 수비 위주의 경기를 펼쳤던 모로코팀. 운명의 3차전에서 가드를 내리고 포르투갈을 상대로 난타를 벌이기 시작합니다. 상대적으로 약팀이었던 포르투갈 상대로 총공격을 가한 것이었죠. 대첩을 이루어냅니다. 포르투갈이 한골 만회하기전까지 3-0으로 앞섰다는 점에서 말 다한거죠. 이 경기후 모로코는 무려 조 1위로 아프리카 최초로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돌파를 일구어내고야 맙니다. 4년전에 초대박을 터트렸던 이웃나라 알제리는 1무 2패로 쪽박차는 동안에 말이죠.
6위. 2002년 한국 0-0 (PK 5-3)스페인 (한국 광주월드컵경기장)
개최국 어드벤티지가 분명히 있었습니다만, 개최국으로도 저조한 성적을 보였던 예가 없었던건 아닙니다. 82년 스페인, 94년 미국, 02년 일본의 예를 비교해보면 당당히 6위에 올릴만한 경기입니다. 날씬한 이운재님의 퍼포먼스가 쩔었었죠. 아무튼 한국은 백여년간 절대로 깰수 없는 기록을 만들고야 말았습니다. 물론 이게 한국 축구계에 양날검이 되었다는게 문제라면 문제겠네요.
5위. 2002년 한국2-1 이탈리아 (한국 대전)
다른거 없습니다. 월드컵/올림픽에서 이탈리아를 역전시켜 이겼던 예가 1988년 서울올림픽 소비에트였다는 점에서 초유의 명승부였다고 보여지네요. 상당히 최근의 일이고 홈 그라운드였다는 점이 다른 예들보다 뒤로 밀리게 됬긴 하지만요. 물론 너무나 많이 회자되긴 합니다만 히딩크가 밀루티노비치를 능가하는 '세계최고의 목표 달성인'이라는 칭호를 붙이게 만들었던 순간이기도 했죠.
4위 2002년 세네갈1-0프랑스(한국 서울)
월드컵 개막전, 상대는 지난대회 우승국. 그리고 처녀진출국 세네갈. 사실 그 이전 98년 대회때는 지역 최종예선도 못올라갔었더군요 ㄷㄷ.. 골대의 신이 돕기는 많이 도와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경기의 승리에 힘입어 세네갈은 월드컵 8강까지 올라가게 되지요. 94 미국 월드컵과 더불어 이변이 난무했던 대회가 02년 대회이기도 합니다.
3위. 1990년 카메룬 1-0 아르헨티나(이탈리아 밀란)
02년의 예보다 더 높은 순위를 차지한 이유야 더 앞선 시절이었던게 큰 이유죠. 그리고 유럽 남미 선수들이 익숙했던 개최지였던것도 플러스 점수가 들어갔습니다. 오맘 비크의 골로 카메룬은 역사를 쓰게 시작되지요. 카니자에게 살인태클 날리랴해서 2명이나 퇴장당했지만 결국 소기의 목적을 얻고 맙니다. 참고로 카메룬팀 감독이 부천의 니폼니시 감독이었다죠.
결국 카메룬팀과 앞서 언급한 이집트덕에 아프리카는 다음 대회부터 6대주에서 3번째로 많은 티켓을 배분받게 됩니다.
2위. 1982년 알제리 2-1 서독 (스페인 히혼)
이번 월드컵에서 제 개인적으로 알제리에게 기대를 거는게 이런 예가 있어서였지요. 알제리 역사상 최고의 선수들인 벨루미와 마제르가 포진되었던 알제리팀은 주고받기를 하며 알제리의 2-1 승리를 이끌어냅니다. 당시 서독 멤버가 대박이었죠. 마테우스와 루메니게, 후루베시 브라이트너가 포진된 서독팀은 알제리의 맞춤 전술 덕에 굴욕을 당하게 됩니다. 지난 대회의 튀니지가 깊은 여운을 남겼긴 했지만, 이런 대형 폭탄은 생각도 못하는 일이었죠. 2차전 오스트리아전에서 패배하게 되는데 이것이 나중에 뼈아픈 실책이 되고 말았죠. 조별리그에서 2승 1패도 조 3위가 될수있는 '경우의 수'가 존재했었던거죠..
결국 서독은 나중에 동족 오스트리아와 '어뷰징'급의 뺑끼를 부리면서 조별리그에서 살아나고 알제리는 더없는 억울함을 안기게 되죠. 그래서 다음 대회부터 조별예선 3차전은 동시경기를 하게 만들도록 정관이 개정되고 말았습니다.
1위. 1966년 북한 1-0 이탈리아 (잉글랜드 미들스보로)
이 경기가 독보적인 1위에 뽑힌 이유는, 당시의 아시아/아프리카축구가 받던 대우와, 이탈리아의 전력. 그리고 대회가 강호들에게 최적화되었던 잉글랜드였다는 점. 그리고 더욱이 중요한것은 이 경기가 나중에 보여줬던 파급력이 엄청났다는 점이었습니다.
66년 월드컵 지역예선부터 언급해보자면, 티켓 배분이 이랬답니다. 개최국/전대회우승국 유럽 10장 남미 3장 북중미 1장 그리고..아시아/아프리카/대양주 1장....이때 아프리카 국가들이 빡쳐서 죄다 대회 불참하게 되죠. 이런 상황이었습니다. 뭐 62년 대회는 더 쩔엇죠. 아프리카 0.5장. 아시아 0.5장. 그리고 플레이오프 상대는 전부 유럽. 말 다한거죠. 북한이 일궈낸 이 업적의 파급력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독립적인 지역 예선전 확립과 각 지역에 1장의 티켓을 보장받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어쩔수 없었던 남한덕에 줄었던 파이가 다시 복구아니 확대되었던 거죠.
북한이 63년부터 합숙훈련을 통해서 경기력을 늘렸습니다. 그때문에 출전권이 있었던 도쿄올림픽도 불참하게 되죠. 물론 약체팀이었다지만 양놈들의 팀인 호주를 2차전 통합 9-2로 작살냅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3차전 이태리전..
박두익의 골로 1승 1패의 이탈리아를 탈락시키고 1승 1무 1패로 8강에 오르고야 맙니다. 이때 프랑스와 브라질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던것을 견주어 볼때 완전 신화였던 거죠. 북한에 매료된 미들스보로 시민들은 8강전이 펼쳐질 리버풀을 향해서 원정응원을 펼치러 갔다는 전설이 있었답니다.
안타까운 점은 북한의 타 정치파 숙청으로 인해 선수들이 다 작살이 났던거죠. 북한대표선수와 김일성과는 라이벌 정치파였답니다. 소련파였던거 연안파였다던가.. 그래서 되려 70년대에 월컵 최종예선도 못올라가는 수준으로 전락하다가 90년대부터 궤도에 오르고 지금의 수준에 올라왔죠. 66년 천리마팀의 업적은 월드컵이 유럽 남미의 전유물에서 진정한 세계적인 대회로 범위를 넓히게 한 혁명적인 사건이라 볼수 있겠습니다.
아쉽게 떨어진 경기가 82년 쿠웨이트1-1체코슬로바키아, 그리고 득점자도 황당해 했다는 50년 브라질 대회 미국1-0잉글랜드. 78년 이란1-1스코틀랜드가 있는데.. 공통적으로 그 경기 빼고는 전부 저조한 경기력을 보였다는데에 있었습니다.
이런 경기들 덕에 유럽남미를 제외한 타 지역의 국가들이 이정도의 행정적인 대접을 받을수 있는 데는 이런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에 한번 정리해 봤습니다. 오랜만에 쓰는데 이렇게 방대한 양이라니 ㅡㅡ;
아 그리고 광주는.. 세계축구에 기억될만한 도시이군요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