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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월드컵 구걸은 그만!

Posted: 2010년6월30일(수) 21:53
by kingkenny7
# 만들어진 관중

지난 2009년 9월 30일, 수요일이었지만 나는 카타르 클럽 움 살랄과 국내 한 K-리그 팀과의 AFC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보기 위해 서울 월드컵 경기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예상했던 대로 평일 저녁의 서울 월드컵 경기장은 사람이 거의 없었고, E석에 아무 자리나 잡고 앉을 수가 있었다.

그런데 경기가 시작하기 전, 장내 아나운서가 이상한 방송을 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늘 경기장을 찾아주신 GS계열사 7곳 직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라며 해당 계열사의 이름이 전광판에 떴다. 평일날 관중석이 휑해 보이는 것을 우려한 홈 팀이 모기업의 계열사를 통해 관중 동원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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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관중수는 1만 5천 명이다. (믿기진 않지만)
사진을 찍은 E석에는 1층에 3/5만이 들어찼을 뿐이었다.

이러한 풍경은 K-리그에서 낯선 것이 아니다. 직접 눈으로 목격한 것으로만 쳐도 2009 K-리그 수원과 전북의 경기에서 전북 스탠드를 뒤덮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대자동차 계열사 사람들이었던 것을 비롯해 많은 경우에 관중 동원이 일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장은 채 반도 못 채우는 것이 사실. 과연 이렇게까지 관중을 채워야 하는 것일까?

# 월드컵이 끝나고...

월드컵이 끝나고 온라인 상에는 수많은 '이제는 K-리그를 보아야 할 때'라는 칼럼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안다. 월드컵 때 거리에 나선 사람들 대부분이 축구 팬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를 상대로 승리하는 것을 보러 나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월드컵을 기회로 광장에서 일탈을 경험하고 싶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그들을 'K-리그를 외면한다'라면서 비난 혹은 아쉬움을 표현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K-리그를 즐기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K-리그를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것 뿐이다. 혹은 아직 그 재미를 깨닫지 못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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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다는데 누가 뭐라나

90분 동안 '한국 축구의 미래'를 위해서 경기장에 앉아 있는 끔찍한 상상을 해 보면 그 이해가 갈 듯 하다. 나는 야구를 별로 즐기는 편이 아닌데, 성격이 원래 급해서도 그렇거니와 고등학교 때 야구부 경기에 동원되어 경기장에 앉아 있어본 이후로 야구를 지금껏 본 적이 없다. 권유를 빙자한 강요는 역효과를 낳을 뿐이다.

비인기 종목의 활성화, 국가대표팀의 강화를 위해서 스포츠를 보자고? 주객이 전도된 주장일 뿐이다. 우리는 스포츠 구장에 여가 선용을 위해 가는 것이지, 그런 의무감을 성취하려고 경기장을 찾는 것이기 아니기 때문이다.

또는 'K-리그가 재미없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뭐라고 할 필요조차도 없다. 선입견이라는 것이 어디 쉽게 고쳐지는 것이던가? 열심히 노력해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눈 앞에 행동으로 증명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백날 '나는 그렇지 않다'라고 떠들어 봤자 돌아오는 것은 싸늘한 눈초리 뿐이다.

# 국내의 프로 스포츠

그렇다면 왜 그들은 국가대표팀의 열기를 K-리그로 끌어들이려 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K-리그가 장사가 안되기 때문이다. 위키피디아(http://bit.ly/Qag8z)에 따르면, 2009 K-리그의 평균 관중은 11,226명으로 전 세계 국내 프로 야외 스포츠 순위에서 35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그 11,226명은 동원 관중, 뻥튀기 관중 수까지 모두 포함한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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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관중도 물론 포함이다.
김정우는 좋겠네 ㅠ

프로페셔널 스포츠 클럽이라면 마땅히 수익을 내서 그 수익으로 스스로 클럽을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에는 순수한 프로페셔널 스포츠 클럽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기업의 마케팅 부서 소속이었거나, 독립 법인으로 운영되더라도 사실상 대기업에 종속된 클럽들이 대부분이다. 시민구단이라고 불리는 존재들도 사실상 지방 자치단체에 예속되어 인사라던가 여러 면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입김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 대한민국 스포츠의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쟁력이라는 것이 과연 생겨날 수나 있을까? 관중 동원은 대충 평균만 유지하고 필드 위의 성적만 내서 신문이나 TV에 가끔 구단 이름만 올리면 그것이 대기업의 홍보이자 부의 사회 환원에 일조하는 것일 뿐이다. 클럽 임원들은 대기업에서 선발된 사람들이거나 지방자치단체 소속이었던 사람들이 포함되어 스포츠 클럽 운영에 대한 기본 자세가 결여된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종종 있을 정도다. 한 마디로 스포츠 클럽의 존재 가치가 단순히 대기업과 지방자치단체에 예속되는 그런 비참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무조건적으로 국내 스포츠 클럽, 특히 축구 클럽들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홍보라던가 여러 면에서 일반 대중이 느끼는 것은 정말 부족하다라고 느낄 수 밖에 없다. 특히 인터넷 등 통신 기술이 발달한 지금, 다른 국가들의 프로 스포츠와 비교해 봤을 때 더욱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서울 주변에 지척이면 닿을 K-리그 경기장이 4군데나 되는데, 어떻게 가야 하고 언제 경기가 열리는 지 아는 일반 대중은 얼마나 될까? 구단은 그저 있는 팬들에게만 형식적으로 이메일을 보내고 보이는 곳에 포스터를 붙이는 게 전부일 뿐이다.

# 축구는 문화다

스포츠는 사람들의 일상에 쉽사리 자리잡을 수 있는 존재다. 프로 축구의 역사가 100년이 넘어가는 유럽이나 남미의 경우 그 사회의 역사, 문화적 배경이 축구 클럽에 오롯이 담겨있다. 사람들은 당연히 '우리 고장 팀'이기에 축구 팀을 응원하면서 축구 팀의 역사를 모두 배우는 것은 바로 축구가 그 지방 문화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축구 클럽을 응원한다는 것은, 그 축구 클럽이 내포하고 있는 그런 전체적인 문화를 같이 향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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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에 축구 인생 대부분(8년)을 바친 노상래의 은퇴 무대.
대구에서 은퇴하긴 했지만 전남은 그를 매몰차게 내쫓았다.
다행히 현재는 전남에서 코치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프로 축구 클럽들은 그런 문화를 만드는 데 미숙하다. 미숙한 거야 어쩔 수 없지만 노력조차 없다. 가장 쉬운 예로 시즌 DVD를 비롯한 각종 영상물을 들 수 있겠다. 현재 프로축구연맹을 비롯한 각 구단들은 시즌별 영상 자료를 전술 분석을 위해 촬영한 비디오로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대중들에게 절대 유통되지 않고 있다.

당장 유투브만 들어가 봐도 70년대 잉글랜드 리그 영상이 90년대 K-리그 영상보다 찾기 쉬운 것이 현실이다. 수도권의 모 구단은 기념식에서 팬들이 만든 영상으로 간신히 기념 영상을 재생하기도 했다. 기록 보존은 문화를 만들어 내는 데 가장 중요하고도 기본적인 요소 중 하나이다. 물론 위에서 언급했듯이 기본적으로 프로 클럽이라고 부를 수 없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우리나라 스포츠 클럽 들에게는 조금 과한 요구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간절히 필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유럽에서도 소규모 구단들은 시즌 리뷰 DVD를 내도 수익을 얻지 못하지만 계속 매 시즌마다 발매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삶 속에 축구가 녹아있는 것. 그것이 바로 속칭 프로 축구, 더 나아가 프로 스포츠가 활성화 된 나라의 모습이다. 스포츠는 돈을 얻고, 그만큼 국민들은 여가 선용의 기회와 각종 일자리 창출 등 '윈-윈' 현상이 벌어진다. 가카께서(어느 가카든) '이런 것 좀 해 보지?'해서 뚝딱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이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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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절친 될 필이다

# 아쉬운 건 누구?

일전에 '한국 유럽 축구 팬들이 놓치고 있는 것들'이라는 기사를 쓴 적이 있었다. 그 기사의 댓글은 여느 'K-리그는 재밌다' 글처럼 "내가 왜 K-리그를 의무적으로 봐야 하나?"의 유럽 축구 팬들과 "개념 좀..."이라는 국내 축구 팬들의 대립이 나와 버렸다.

그러나 나는 절대 그런 의도로 글을 쓴 것이 아니었다. 나 자신조차도 단순히 유럽 축구를 TV로만 즐기던 2005년, 영국으로 여행을 떠나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경기장을 찾아 직접 축구를 눈 앞에서 보면서, '직접 축구를 본다'는 행위 자체가 얼마나 큰 즐거움을 주는지. 축구가 품고 있는 그 거대한 문화 자체를 즐긴다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축구의 그러한 재미 중 아주 일부분만을 즐기고 있는 한국의 유럽 축구 팬들에게 '이런 재미도 있다. 한번 즐겨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안하면 너네 손해'라는 권유에서 비롯된 글이었던 것이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외국인 한국 축구 팬 인터뷰도 같은 맥락에서다. 한국 유럽 축구 팬들이 선망하는 클럽을 응원한다는 면에서는 그들과 같을지 모르지만, 국내 축구를 외면하는 일부 한국 유럽 축구 팬들과는 다르게 한국 축구를 즐기는 외국인들은 날로 늘어나고 있다. 실제 '3대째 맨유빠'가 K-리그 인천 유나이티드 경기장을 찾는 이유가 뭘까? 이런 논지에서 한국의 유럽 축구 팬들이 놓치고 있는 기회를 찾아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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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허물어지고 있는 성남 종합 운동장(일명 모란 경기장)
자리 넓고 좋다. 작년 이맘 땐 차양막을 쳐 놓고 노신 분들도 있더라.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다른 사람이 적게 올 수록 축구가 관람하기 편하다. 지난 2009년 FA컵 결승전, KBS 뉴스에는 적은 인원이 찾아 축구에 대한 비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고 보도 된 그 경기에서 나는 처음으로 2만명이 넘는 사람이 성남의 홈 구장을 찾았던 것을 목도할 수 있었고, 하프 타임 때에는 화장실을 가기 위해 줄을 서야 했던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이했다. (고로 하프타임에 먹는 라면이라는 것은 꿈도 못 꿨다) 그런 상황을 매 주 맞이한다면 지금처럼 자유롭게 경기장을 활보하던 나로써는 불편함을 맞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리그는 팬들이 직접 홍보에 나서는 이상한 리그다. 사실 아쉬운 것은 그 재미를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지 이미 그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지 않은가. 'K-리그에 와주세요'는 '그만큼 사람이 없어요'와 '그만큼 재미 없어요'와 같은 맥락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음식을 하나 사먹더라도 사람들이 가득 차 있는 곳이 맛있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지, 텅텅 빈 식당에서 아주머니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여기 맛있어요!'라고 해봤자 공허한 외침에 불과할 뿐이다.

경기 내적으로는 성숙한 리그라는 것이 이미 판명이 났는데도 계속 '와주세요'를 연발하는 것은 자기 비하나 다름이 없다. 특히 이번 월드컵을 통해서 한국 프로축구연맹은 자신들이 선구적 입지를 다졌음을 분명히 했다. K-리그에서 악명높은 CGV(그래도 이 분은 요즘 굉장히 잘 보신다), KGB(이 분은 이번 월드컵에서 '이구아인의 골은 온사이드다'라는 발언으로 자신이 세계적인 클래스임을 밝히셨다)등의 심판들이 FIFA의 국제적인 심판들보다 훨씬 났다는 것이 이번 월드컵으로 밝혀졌다. 심지어 판정 논란에 대한 대응 또한 K-리그와 동일하다. 2008년 인천 경기에서 나왔던 에두와 임중용의 타액 교환때 K-리그가 취했던 '경기장 화면 리플레이 금지' 조치를 FIFA가 담습하기까지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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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즐거우면 장땡이다.
2006 FA컵 결승전 전남 대 수원 모습.

# 구걸은 이제 그만!

분명 축구를 포함한 스포츠, 정확히 스포츠 관람은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채워지는 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즐기기 힘든 문화이기도 하다. 그러나 국내 프로 축구가 제대로 살아나지 않는 이유를 '소비자'에게 돌린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다. 옛말에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판다고 했다. 클럽 운영에 있어서 지금처럼 안이한 모습을 보인다면 당연히 경기장은 텅텅 빌 수 밖에 없다.

K-리그, 더 이상 구걸로는 살아남기 힘들다. 이제는 자신을 갈고 닦아 멋진 모습을 보여줄 차례다. 진정 팬들에게 가치를 인정받고 싶다면 그만큼 노력을 기해라. 멀쩡한 행색의 사람이 구걸하고 있다면 한 두 번은 연민을 느껴 동전을 던져줄지 모른다. 그러나 언제까지 구걸만 하고 살 수는 없다. 이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할 차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