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다문제일 » 2012년10월18일(목) 23:47
“1993년 무렵 K리그 구단들 사이에서 지역연고제를 도시연고로서 확립하고자 하는 논의가 일어났고 특히 지역연고 정착이 미진하다고 여겨졌던 동대문경기장의 세 구단(유공 LG 일화)의 경우는 서울 외 지역을 도시연고로 삼자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동대문 3구단은 서울의 강남/북 분할 방안 등과 병행하여 서울 외 지역을 연고지로 검토하게 되는데 그 대상은 부천 인천(이상 유공) 수원 안양 창원 대전(이상 LG) 성남 과천 평택 천안(이상 일화) 등 주로 수도권 또는 그에 인접한 도시들이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이러한 각 구단의 움직임을 정책으로 수용하여 마침내 1995년 2월 연맹 이사회에서 ’96시즌부터 전용구장 건설 계획을 제출하는 구단에 한해서 서울 잔류를 허용한다고 결의, 이들 구단의 수도권 내 분산을 촉진하고자 하는 의지를 나타내기에 이른다.
유공과 일화가 ’96시즌에도 각각 목동과 동대문운동장을 홈으로 사용할 의사를 밝힘에 따라 정책 추진에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으나 서울을 비운다는 기본 방침 자체에 대해서는 구단 간 합의가 있었으므로, 일단 유공은 부천을, LG는 안양을, 일화는 천안을 도시연고로 확정, K리그 다른 구단들과 더불어 1996년부터 연고지로 삼은 지역 이름을 구단 명칭에 표기하게 되었다.
하지만 해당 지역의 미비한 경기장 시설 문제로 인해 실질적인 진입은 즉각 이뤄지지 못했고 LG는 1997년 유공은 2001년에야 각각 안양과 부천의 종합운동장을 홈 경기장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일화 구단의 경우도 1996년에는 천안시에서 홈경기를 거의 개최하지 않았으며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천안의 오룡경기장을 홈으로 활용하게 되었다.”
이렇게 써놓으니 별거 아닙니다만, 적어도 아무런 근거도 없는 주장을 주절주절 펼쳐대면서 지들 입맛에 맞는 것들만 취사선택하느라 정작 중요한 부분은 구렁이 담 넘듯 하고 연결된 근거 자료가 보여주는 실제에 비해 터무니없는 과장을 일삼는 위키 문서보다는 사실관계에서 놓치는 부분이 훨씬 적다고 자부합니다.
신중을 좀 덜어서 말씀드리자면, 당시 축구계에서 많지도 않은 전체 여섯(나중엔 여덟) 구단 가운데 세 개가 한 경기장에 몰려있다는 것은 문제라는 인식을 공유하여 일단 어떤 식으로든 분산한다는 방침 자체에는 각 구단 간에 이견이 없었으리라 보는데, 실제로 확인되는 사실도 대체로 그러합니다.
또 추정컨대 당시 프로구단이 실질적으로 사용할 만한 경기장이 동대문 목동뿐이었으므로 강남/북과 같은 식으로 서울을 분할할 경우 다른 형태의 불균형이 발생하게 되어 3구단 중 한 개 구단 이상이 서울 외 지역을 연고지로 정함이 불가피해졌으며, 끝내는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전부 서울을 비우기로 하고 이를 서로에게 확실히 보장받고자 월드컵 유치와 맞물린 전용경기장 건설이란 제약 조건을 걸기로 합의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뇌내망상이 지나치다고요? 위키 문서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온갖 개똥들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애교입니다. 망상이라고 하지만 구단들의 도시연고 확립 의지가 서울 공동화로 이어지는 과정을 그보다 더 잘 풀어낼 이론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막판에 눈치작전이 벌어진 경위도 자연스럽게 설명이 되고요.
이쯤 되면 결국은 다 편향된 결론을 유도하기 위한 거 아니었냐고 여길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위키 문서의 각주는 전부 일일이 조사해봤고 네이버 뉴스에서도 관련 기사를 최대한 확보하려고 노력했으나 제 주장의 핵심 논거인 1. 수도권 내 도시연고 확립 논의는 각 구단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것이다. 2. 해당 구단이 연맹 등에 본 정책의 전면 철회를 요구한 적은 없다. 에 대해 반례가 될 만한 것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못 믿겠으면 너님이 찾아보시죠.
상식적으로 그렇게 청와대 지시 등의 외부 강요로만 시행된 정책이었다면 유수의 기업집단(+종교집단)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각 구단들이 당하고만 있었겠습니까. 서슬 퍼런(?) 김영삼 정부 때는 어쩔 수 없다 쳐도 그 시기 지나면 바로 행동 개시했겠죠. 결국은 일화는 천안 버리고 LG는 안양 버리고 SK는 천안 버리지 않았느냐고요? 그 연고지 다 지들이 선택한 거라니까요. -_- 강제성 어쩌구 하고는 아무 관련 없는 일입니다.
또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안양과 서울에 프로구단이 나란히 서게 된 이상 이제 와서 패륜 짓이니 연고 복귀니 해봤자 별 의미가 없는 것이고 어차피 안양→서울 연고이전이 잘못됐다는 제 신념은 안양 연고 확립 과정에 대한 이해가 달라진다고 해서 변할 부분이 아닙니다.
어차피 ‘연고지 조정’에 대한 저의 정리를 전적으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나중에 일어난 사건들에 대한 관점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겠죠. 어떤 이는 서울특별시를 본사 소재지 이상의 ‘지역 기반’으로 여기지 않나 싶은 한 기업집단 산하 스포츠클럽이 서울 도시연고를 확립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시행착오쯤으로 간주할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이는 GS가 월드컵경기장에 눈이 멀어서 검토 단계까지 포함하면 5년이 넘는 시간을 들여 해당 지역의 전폭적인 협조 하에 확립한 연고지를 헌신짝처럼 던져버린 사건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겁니다.
‘LG의 안양 시대’에 대한 해석이야 어떻든 1996~2000년의 도시연고 확립 정책은 K리그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으며 그 영향은 대체로 긍정적이었습니다. 구단 명칭에 지역명을 표기하고 유랑 경기를 점차 줄여가는 가운데 팬 집단의 질적 양적인 성장이 일어났고, 국내 축구 리그도 프로 야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메이저 스포츠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한국 축구 르네상스’도 이 시기의 일이었습니다. 수원과 같은 대형 클럽의 탄생도 도시연고제가 아니었으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겁니다. 어딘가의 볼멘소리에도 불구하고 많은 축구팬이 1996년을 지역 연고제 원년으로 인식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 공동화’만 보더라도 실패라 잘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혹자는 LG의 안양→서울 연고이전과 일화 SK도 최초 진입한 도시 연고를 유지하지 못했음을 들어 그러한 단언에 거리낌이 없지만, ‘서울 복귀’를 기준으로 삼더라도 실패는 1/3에 한정되며 나머지 두 구단은 여전히 서울 밖에 머물고 있으므로 2/3의 성공은 인정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천안 부천 연고를 이어나가지 못한 것은 탈 서울 ‘합의’(‘정책’보다는 이 표현이 어울립니다)의 실패가 아닌 연고지 설정의 실패일 뿐입니다. 물론 책임은 해당 구단의 몫입니다. 누차 말씀드렸다시피 모든 건 스스로의 선택이었으니까요.
“1,041만여명의 수도 서울이라는 대한민국 최대 시장을 포기”한 것이기 때문에 어리석은 결정이었다는 지적도 전혀 그럴싸하게 들리지 않습니다. 현재 유일한 서울 소재 구단이나 과거 동대문 시절 3구단의 관중 동원 능력을 보면 91년 체제의 연장은 평균관중 5~7천 수준 중소 구단의 병존에 그쳤을 공산이 큽니다.
안양 부천 천안 합쳐도 서울보다 훨씬 적다 어쩌고 하는 뻘소리는 낫 놓으면 낫 그림 밖에 그릴 줄 모르는 어린이다운 발상입니다. 좀 더 크면, 연고 도시 인구가 서울 1/10 밖에 안 되고 K리그 전체를 놓고 보면 딱 중간급 규모인 수원 삼성의 흥행성이 국내 최고인 것이나 부산 1/7 수준인 포항 스틸러스의 관중 동원 능력이 아파트 구단의 두 배 이상인 것에서 세상이 그리 단순치 않음을 깨달으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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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uxon82, 윤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