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 프로축구의 귀환을 환영합니다. 저는 낙관론자는 못 되는 사람이라서 일단 험로를 예상하고 있지만 마냥 장밋빛이 아니라고 하여 단지 조롱과 비웃음거리로만 삼는 태도는 경멸합니다. 따지고 보면 K리그 역사 자체도 졸속으로 시작되어 온갖 흙먼지를 피우고 스스로 구덩이를 파며 갈지자로 휘청거리며 걷다가 여기까지 이른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그렇게 수많은 시행착오로 얼룩졌던 한국 축구사에 한 매듭이 지어지는 느낌이고, 일련의 사태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민감한 주제들도 한결 편한 마음으로 가볍게 다룰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입니다. 한편으로는 이 전환점을 맞아 지난 시기를 찬찬히 살펴보고 싶은 축덕으로서의 욕구가 솟아나기도 하고요.
그러려면 모든 일의 시초가 되는 1996(~1999?)년의 이른바 '서울 공동화 정책'을 면밀하게 살펴보는 과정이 필수일 텐데, 미리 말씀드리지만 그러한 과정 끝에 내린 결론으로 연고이전 문제에 관한 어떤 의견에 힘을 실어주겠다는 의도는 없습니다. 그런 식의 분쟁은 과거지사가 됐다고 여기고 있고, 어차피 이미 각자가 취하고 있는 태도는 특정 결론에 따라 달라질 부분이 아닐 것이며 이는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어쩌면 이 문제에 관해 우리는 이미 어느 정도 합의된 결론을 갖고 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인터넷 여기저기를 둘러보면 LG 축구단의 안양→서울 연고이전을 둘러싼 축구팬 사회의 첨예한 대립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이해의 교집합이 꽤나 넓게 형성된 것으로 느껴집니다. 한 마디로 "잘못됐다"는 것. 계기를 보나 과정을 보나 결과를 보나 말이죠.
제가 아는 한 웹에서 이 문제에 대한 가장 상세하게 다루고 있는 문서인
위키피디아 한국판의 '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기사(이하 위키 문서)를 읽어보면, 연맹의 판단 착오(J리그의 도쿄 공동화 모방) 또는 재벌 간의 협잡(서울 연고를 원하던 삼성 참여 유도) 또는 당시 정부의 강압(청와대 지시)에 인해 촉발되었으며, 경기장 문제 등 졸속시행으로 인한 온갖 촌극을 벌인 끝에 1999년 서울 구단 창단 결정으로 '철폐'될 수밖에 없었던, 게다가 서울 방출(?) 후 최초 연고지를 유지하는 구단이 한 개도 없는 등 어떠한 소득을 거두지도 못했던, 그야말로 삽질의 파노라마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다른 위키 기반의 웹사이트, 예컨대
엔하위키 같은 곳의 '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문서는 입은 옷만 다를 뿐 몸뚱이는 그대로라고 해도 무방하며 심지어 연고이전을 반대한다는
풋케위키의
해당 문서 도 좀 지난 버전의 위키 문서를 전재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위키 문서가 이 문제에 대해, 적어도 네티즌-축구팬 사이에서는 상당한 권위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렇다고 그만한 완성도를 지니고 있느냐 하면 전혀 아닙니다. 조금만 들여다봐도 송송 뚫린 구멍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일단 위키 문서에서 '서울 공동화 정책'의 원인으로 상호 모순되는 세 가지를 들고 있다는 것부터 걸립니다.
위키 문서는 '발단' 항목에서 J리그의 성공에 자극받은 연맹이 '도쿄 공동화 정책'을 모방해 '서울 공동화 정책'을 시행했다는 요지를 근거 자료도 거의 제시하지 않으면서 A4용지 한 장이 넘어가도록 장황하게 서술하고 있는데, 바로 아래 '삼성그룹과 현대그룹의 알력설'이란 제목을 단 항목에서는 당초 서울을 원하던 삼성그룹의 리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서울 연고를 공동화시켰다는 사뭇 다른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다음 '시행' 항목에서는 당시 김영삼 정부가 추진하던 지방분권화의 일환으로 서울 소재 구단의 지방 분산이 이뤄졌다고 주장합니다.
이쯤 되면 이런 이모티콘이 나올 만하지 않습니까.
-_-ㅋ
(도대체 뭐가 진짜 원인이라는 건지...)
잘나가던 J리그의 도쿄 공동화를 모방했다? 서울 연고를 원하던 삼성의 K리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함이었다? 지방분권화를 추진하던 청와대 지시 때문이다? 세 가지가 꼭 양립 불가능한 것은 아니더라도 어느 하나를 강조하게 되면 나머지 것들은 부차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음은 상식이겠죠.
만약, 위키 문서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많은 각주를 달면서 “...었다는 설이 있다”는 유보적 표현도 없이, 엄연한 축구계 ‘외부’인 청와대™의 의지에서 비롯된 서울 소재 구단들에 대한 ‘강압’적인 연고 이전과 그에 따른 해당 구단들의 완강한 ‘저항’을 자신만만하게 써내려가고 있는 ‘시행’ 항목의 원인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어쨌든 축구계 ‘내부’에서 나온 발상이었다는 ‘J리그의 도쿄 공동화 모방설’이나 (서울 연고를 원하던) ‘삼성 참여 유도설’은 조금이라도 설자리가 줄기 마련입니다.
반대로 J리그 모방설이나 삼성 참여 유도설을 믿을 만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청와대 지시와 같은 것은 설령 실재했다고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마지막 도화선 정도 구실을 한 것에 불과하고 근본적인 원인이 되긴 힘들지 않겠습니까.
사실 이렇게 여러 사람이 한 논을 갈라 각각 다른 곳에서 끌어들인 물을 대는 양상은 비단 저 문서가 아니더라도 위키피디아 류의 집단 연구 문서가 항상 안고 있는 문제점이긴 합니다만, 아무튼 “남이 시켜서 했다”고 한다면 “스스로 알아서 했다”고 하긴 힘들다, 그 반대도 성립한다, 이 정도는 진영에 따라서 받아들이고 말고 할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적당히 종합해 보자고 하기엔 두 가지 설의 근거가 워낙 빈약합니다. J리그 모방설을 설명하는 ‘발단’ 항목에서 근거 자료의 출처를 밝힌 각주는 단 한 개인데 그나마도
베르디 가와사키의 창단 과정에 대한 것으로 전체적인 논점과는 별 관계가 없는 글입니다.
삼성 참여 유도설을 다루는 ‘삼성그룹과 현대그룹의 알력설‘ 항목에는 덕지덕지 여러 개의 각주가 붙어있습니다만 역시 클릭해서 확인해 보면 “삼성그룹이 서울 연고로 프로축구단을 창단하려고 하자 당시 협회와 연맹을 장악하고 있던 현대그룹이 위협을 느끼고 이를 무산시켰으나, 월드컵 유치를 위해 삼성의 리그 참여를 유도할 필요성이 제기되어 서울 공동화를 단행했다”는 핵심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은 전무하며, 월드컵 유치전과 삼성의 K리그 참가 과정을 보도한 신문기사들일 뿐입니다.
위키 문서에는 근거가 제시되지 않았어도 잘 뒤져보면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글쎄요, 이런 것도 찾아내는 실력이라면 벌써 찾아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화·유공·LG 내년에 서울연고 없어
서울을 연고로 하고 있는 일화·유공·LG가 내년시즌부터 서울을 연고로 할수 없게 된다. 11월초 청와대가 프로연맹을 통해 이들 3개구단에 대해 서울연고지 이전지침을 내렸다.
http://ikfhs.tistory.com/entry/서울연고공동화정책
바로 이것이 위키 문서에 있는 3종의 원인 설명에 대한 사실상 유일한 문헌적 근거입니다. 한창 ‘서울 공동화 정책’이 진행되고 있는 중에 나온 기사라는 것은 신뢰성을 어느 정도 보장하고 있습니다. 그럼 다른 건 몰라도 청와대 지시설은 일리가 있는 걸까요.
덥석 물기엔 일단 분량이 너무 짧아 구체성이 부족하다든지, (한참 나중인 2003년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기사를 가장한 에세이 같은 것을 빼놓는다면) 이른바 교차검증이 되지 않는 자료라든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만, 일단 저 기사를 전적으로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서울 공동화 정책’이 당사자인 연맹이나 구단들의 의지와는 완전히 상반된 오로지 외부의 강압에 의한 것이었음을 증명하지 않는다는 상식만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작용(강압)이 있으면 반작용(저항)도 있는 법. 역설적으로 반작용의 존재는 작용이 존재했다는 사실의 방증이기도 합니다. 위키 문서에서 내세우는 ‘저항’의 근거는 어떤 것일까요.
그리하여 3개 서울 연고 구단들은 12월까지 서울 연고지를 고수하기 위해 연맹에 저항하였으나[18]
각주 18번의 문을 두드려 봅시다.
↑ “일화, LG, 유공 서울 포기 못해”, 《한겨레신문》, 1995년 12월 13일 작성.
길지만 전문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프로축구계의 '뜨거운 감자', 지역연고제의 정착은 끝내 스스로 풀 수 없는가.
서울을 공동연고로 하는 유공, 일화, LG 세 팀이 프로축구연맹의 '탈서울 요구' 결의에도 불구하고 서울연고 고수방침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지역연고 정착을 위한 조처가 첫걸음조차 제대로 떼지 못한 채 무산될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연맹은 지난 2월 이사회에서 지역연고제 정착을 위한 고육지책으로 '전용구장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서울연고팀은 내년 시즌부터 무조건 서울을 비워야 한다'고 결의했으나, 서울 연고팀들의 탈서울 거부 움직임으로 성사 여부가 불투명해진 것이다.
유공은 다음 시즌부터 목동운동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할 방침을 세우고 서울 잔류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으며, 일화쪽은 내년에도 동대문을 홈구장으로 계속 사용할 계획으로 연고지 이전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LG도 "두 팀이 서울을 떠나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마당에 우리만 떠날 수 없다"며 서울 연고를 고수할 뜻을 숨기지 않고 있다. 연맹은 이에 따라 지난 7일 서울연고 구단들이 연말까지 서울을 떠나지 않을 경우 내년 시즌 프로리그에 참여시키지 않는다는 내부방침을 세우고 각 구단에 서울이전 계획서 제출을 요구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그러나 연맹의 이런 내부방침은 최악의 경우 프로축구 자체의 공멸로 이어질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불투명하다.
구단들의 탈서울 기피현상은 우선 관중동원 등에서 가장 풍부한 시장성을 갖추고 있는 서울을 놓치기 싫다는 인식에서 비롯한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는 구단운영을 모기업의 홍보 차원에서만 바라보는 일부 구단관계자들의 근시안적 사고방식이 현재와 같은 기형적인 지역연고제의 주범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프로축구의 활성화를 통해 전체 판의 규모를 먼저 키운다는 장기적인 안목보다는 눈앞에 펼쳐져 있는 당장의 손익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축구 관계자들은 프로축구가 지역연고에 확실히 기반할 때만 관중을 운동장으로 불러 모으고 국민적 호응을 되찾을 수 있다며 관계 구단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연맹의 한 관계자는 "서울 3개 팀이 현상황에서는 사실상 지역연고가 없는 무연고팀이나 마찬가지"라며 "이런 태도는 포철팀이 포항으로 팀명칭을 변경하며 독립법인화해 연고지에 뿌리를 내리고, 전남·전북팀이 본격 활동하는 등 이제 겨우 걸음마를 시작한 지역연고제의 정착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겨레 1995.11.09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 ... Type=00010
제 눈에는 “서울 3개 팀이 현상황에서는 사실상 지역연고가 없는 무연고팀이나 마찬가지"라는 연맹 관계자의 발언이 크게 들어오지만, 이 글의 주제는 90년대 전반의 동대문 3구단, 유공 LG 일화가 과연 ‘진정한 서울 구단’이었는가를 따지는 것이 아니므로 이에 대해 길게 말씀드리진 않겠습니다.
전용구장을 확보(건설 계획이라고 봐야겠죠)할 경우 서울 잔류를 보장했는데 하나도 아니고 셋씩이나 되는 구단이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는 것 역시 의미심장한 대목이지만 역시 긴 말 않겠습니다.
헌데 해당 구단들이 ‘탈서울 거부 움직임’이란 게, 구체적인 내용을 들여다보면 기껏해야 연맹이 기한으로 정한 ’96시즌에도 여전히 서울의 목동과 동대문운동장을 홈으로 사용할 의사를 내비추었다는 것에 불과함은 그냥 넘기기 어렵군요. 위키 문서에서 “마지막까지” “강력하게 저항했”다고 하는 LG 구단의 태도는 더욱 한심해서 다른 구단 눈치 보느라 미루고 있다는 게 고작인데, 과연 이 정도 반응을 ’동대문 3구단의 지방 분산‘이라는 기본 방침에 대한 전면적 거부로 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연맹이 내년까지 하라고 했는데 따를 뜻이 없다는 태도를 보였으면 그게 전면적 거부지 무슨 말장난이냐고 할지 모르겠는데, 꼭 연맹이 정한 타임라인에 맞춰 후다닥 일을 처리해야만 기본 방침에 동의한다고 볼 수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그렇게 개념 없이 놀던 구단들이 시간 약속 정확히 지켜 해당 지역 들어가서, 프로 경기에 손색없는 경기장 바로 확보하고 유랑 경기 같은 거 싹 없애버리고 했다면 당시 한국 축구 현실에서 훨씬 더 불가사의한 일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큰일을 진행하는 데는 언제나 과도기가 필요한 것이고 그 기간이 꼭 (연맹 이사회가 결의한 시점인) 1995년 2월 이후 ‘1년 내’라는 법은 없는 겁니다. 여러 가지 사정에 따라 1년보다 훨씬 더 길어진다고 해도 그것을 반드시 방침 자체에 대한 거부라고 보는 것은 비약입니다. 사정이라니, 그런 게 어디 있냐고요?
또한 안양종합경기장은 1년간 경기장 개보수를 했으며 부천은 아예 프로축구를 할 수 있는 경기장이 없어서 1996년도부터 2000년까지 서울 목동 주경기장에서 홈경기를 개최하게 되었다. 그리고 천안 역시 야간 경기가 가능한 조명탑이 없는 종합경기장이어서 일몰 상황 발생한 뒤에 제비뽑기로 승부를 가리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발생했다.
위키 문서 스스로 밝히고 있네요. 경기장 문제 때문에 새로 정한(관점에 따라서는 ‘확립한’) 연고지에 대해 즉각적인 진입이 불가능했다고.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으면서 ‘동대문 3구단이 95년 시점에서 다음 해인 96년에도 서울 소재 경기장들을 사용할 계획을 밝힌 것’ 정도 가지고 ‘반대’ ‘저항’으로만 해석하는 건 좀 웃기는 일 아닙니까.
물론 위 기사가 ‘전면적 거부’에 대한 증거로서는 부족한 것처럼, ‘전면적 찬성’에 대한 증거가 될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95년 2월의 연맹 이사회 결의 직전에 해당 구단들이 나타낸 움직임을 추적하는 편이 훨씬 낫겠죠. 상식적으로 구단들이 나중에 연맹에 정한 방침과 유사한 행동을 이미 그때 보였다면 ‘공동화’가 단지 강압에 의한 것이었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테니까요. 그런데 위키 문서에 대해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소홀히 다루고 있어,
1994년 4월 대한축구협회에서 서울 동대문 운동장을 공동 연고지로 하는 일화 천마, LG 치타스, 유공 코끼리의 서울 연고권의 분산을 추진중이었지만[16]
라고 한 것이 전부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별 근거 없는 모방설/유도설을 장황하게 늘어놓는가 하면, 그 앞에서는 직접적인 관련도 없는 80년대 유공 럭키금성의 유랑에 대해 ‘출처 필요’라는 딱지까지 맞아가며 많은 분량을 할애해 서술하고 있으면서 말이죠.
일단 16번 각주에 연결된 근거 자료는 ‘
스포츠에 “地自制” 바람’이란 표제의 <경향신문> 1994년 4월 15일자 기사로 당시 이상룡 수원시장이 LG 구단 측에 수원으로 연고이전을 제안했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위키 문서의 해당 본문은 “이 관계자는 축구협회가 서울을 연고로한 LG·유공·일화등 3개구단의 연고권 분산을 추진하고있는 상황에서...”라고 한 기사 말미의 구절을 직접 인용하다시피 한 것입니다.
아마 지자제라는 용어가 떡하니 들어있는 표제로써 김영삼 정부의 지시사항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해당 구단들의 자발적 의지 같은 것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건 뭡니까?
구단 관계자들은 최근 정부와 국민의 축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자 지금이야 말로 프로축구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라는데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이들은 특히 정부가 축구와 태권도를 특별관리 종목으로 선정,가능한 최대한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자세여서 구단 자체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지역연고 설정과 전용구장 확보 등에 정부의 힘을 빌리기로 한 것.
구단 사무국장 선에서 논의되기 시작한 연고지 설정문제는 최근 단장회의에서도 빈번히 거론되고 있어 조만간 마스터 플랜이 탄생할 것으로 보인다.
프로구단의 연고지 설정방법에 따르면 도시 단위로 연고를 형성하고 있는 현대와 포철은 우선적으로 울산-경남,포항-경북으로 묶어주고 기업의 지역연고에 따라 대우를 부산-제주로,
유공은 인천-경기로 할당하며 LG와 일화를 서울의 강남이나 강북으로 지정한다는 것.이같은 방안에 대해
LG와 일화도 다른 연고지를 찾고 서울은 연고팀 없이 비워 두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아직 팀간에 완전한 합의를 이룬 것은 아니나 연고지 미확립으로 프로야구에 설움을 당해 온
각 구단 관계자들은 연고지 할당에는 원칙적으로 합의하고 있다.(강조는 인용자) 연합뉴스 1993-12-01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 ... 0003723566
동대문 3구단의 지방 분산 논의가 최소한 1993년 12월로 상향 조정될 수밖에 없어 1994년 4월이라고 한 위키 문서의 부실함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겠죠. 이 글을 읽는 누구라도, 구단 관계자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서울 공동화’를 포함한 연고지 ‘설정‘ 또는 ’할당‘이 오로지 정부 또는 협회(산하 연맹)의 강압에 의한 것이라고 하는 게 과연 맞는 얘기인가, 하는 반문이 위의 자료를 완독한 다음의 정상적인 반응일 겁니다.
그쪽 친구들 옛날 신문 열심히 뒤져서 리그 가입 전 LG가 서울 연고를 희망했다는 사실 따위는 잘도 찾아내면서 이런 건 왜 그렇게 눈에 띄지 않았던 건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네이버 검색창에 LG+축구+연고지 때려 넣고 뉴스 클릭해서 오래된 순으로 정렬시키면 첫 페이지에 나오는 기사인데 말이죠.
이제 제가 왜 청와대 지시설의 강력한 근거로 제시되는 <월간 축구>의 단신 기사에 연연하지 않았는지 이유를 아셨을 겁니다. ‘지시’는 생략된 거라고요? 예, 우리 집에 금송아지 있습니다. ^^b
물론 구단 간에 완전한 합의를 이룬 것은 아니라는 구절 같은 것은 따로 점검할 필요가 있는 것도 사실일 겁니다. 그럼 동대문 3구단은 어떤 과정을 거쳐 각자 연고지를 확정하게 됐을까... 요?
에 대해선 다음 이 시간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