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국 축구의 아픔을 함께 한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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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gkenny7
레프리(중재)
포스트: 245
가입일시: 2010년2월09일(화) 14:17

[인터뷰] 한국 축구의 아픔을 함께 한 이방인

포스트 by kingkenny7 »

들어가기에 앞서, 이 글은 다른 곳에도 나간 자료라 북패에 대해 FC서울이라는 용어를 썼고, 중간 과정에서 해당 표기가 꼭 필요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그대로 게재합니다.

요즘 K-리그 경기장에 부쩍 외국인이 늘었다. K-리그의 재미는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많은 외국인들은 자국에 응원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국에서 자신만의 '지역 팀'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중 일부는 한국 축구에 매료되어 원래 자신의 팀보다도 한국의 '지역 팀'을 더 열렬히 응원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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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자료 사진이 다른 게 없어 이거라도 올린다. ⓒ 연합뉴스

이번에 소개할 인터뷰는 조금 어두운 이야기다. 2004년 안양 LG 치타스는 (당시 서울 시장 이명박의 비호 아래) 서울로 이전해 이름을 FC서울로 바꿨다. 하루만에 팀을 잃은 수많은 안양 팬들은 분노에 차서 울부짖었지만 천만 서울 시민이라는 시장을 목전에 둔 LG 스포츠단은 그들의 울음을 외면할 뿐이었다. 지금도 메이저 언론에는 함부로 다루어지지 못하는 (주)GS스포츠단과 그 전신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이번에 소개할 사람은 당시 그 슬픔을 함께 나누었던 안양팬이다.

* 안녕하세요. 간단히 자신을 소개해 주시겠어요?

제 이름은 제이미 머독이구요, 33살 된 뉴질랜드 남자입니다. 한국에는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살았었습니다.

* K-리그 팀 이외에 응원하는 팀이 있다면 간단히 소개해주시겠어요?

안양 LG 치타스를 응원하기 전까지는 그 어떤 축구팀도 응원하지 않았습니다. 뉴질랜드에서는 그저 TV로 프리미어리그를 보면서 전반적인 축구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는 수준이었고 럭비와 크리켓을 주로 봤죠. 2004년 한국을 떠나면서부터 뉴캐슬 유나이티드와 뉴질랜드 리그에 있는 와이타케레 유나이티드를 응원하기 시작했어요. 와이타케레 유나이티드는 이번 시즌 클럽 역사상 2번째 우승을 해냈죠.

* 안양 LG와 연고 이전 이전을 얘기해보도록 하죠. 그렇다면 어떻게 안양 LG의 팬이 되셨던 건가요?

우선 안양 LG는 저의 지역 팀이었습니다. 다른 도시에 살았다면 저는 아마 가장 근처에 있는 축구팀을 응원했을 거 에요. 전 항상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제가 사는 곳의 축구 팀을 응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사실 특별히 안양 LG 치타스에게 끌리게 된 계기가 있다면 내가 여가 시간에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특별히 할 일을 찾고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많은 외국인들은 강사로 와서 일하고, 펍에 가고, TV를 보고 여행하는 게 전부에요. 그러나 전 한국에서 좀 더 의미 깊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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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15개월 정도 서울시 노원구에 산 적이 있었는데요, 한국어 교실에 몇 달 동안 다닌 거 빼고는 그다지 한국이라는 나라와 문화에 대해서 배운 것이 없었죠. 그래서 전 제 자신에게 한국 영화를 보고, 여러 종류의 한국 음악을 들어보고 한국의 스포츠를 경험해 보겠다고 약속했어요.

그리고 곧 저는 안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요, TV에서 안양 팀이 경기를 하는 것을 보고 다음 일정을 찾아서 경기를 보러 갔어요. 때마침 그 경기는 수원과의 라이벌 경기인데다가 2002년 월드컵이 끝난 직후여서 엄청난 관중이 들어왔죠. 전 안양이 3대 0으로 승리한 이 경기를 정말 즐겼습니다. 곧 저는 골대 뒤에서 열렬한 응원을 하는 안양 팬들을 만나 같이 원정 응원을 다니기 시작했죠.

* 안양 팬이 된 이후로 삶에 뭔가 변화가 있었나요?

큰 변화를 꼽자면, 그 전까지는 저는 앉아서 간간히 박수를 쳐주는 스포츠 팬이었습니다. 그러나 안양 서포터의 일부가 된 후에는 전 일어나서 노래를 부르며 점프를 뛰고 심판과 상대팀 선수들에게 소리 지르며 경기를 보는 팬이 됐죠. 전 단순히 안양 치타스가 어떤 팀인지도 모르는 사람에서, 매 경기를 찾아 응원하고 골에 흥분하거나 결과에 좌절하는 축구팬으로 변하게 된 거죠. 전 정말 경기 결과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사람이 됐어요. 특히 수원과의 경기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만약 패하기라도 한다면 마치 가족이 세상을 떠난 것만 같이 마음이 무거워요. 사실 2003년 당시, 가족 중에 몇몇이 세상을 떠나긴 했네요. 하하.

* 안양을 응원한 이래 가장 재미있는 경기를 꼽자면요?

제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세 경기가 있습니다. 한 경기는 아까 말했던 수원과의 첫 경기였구요, 나머지 두 경기는 모두 원정 경기에요.

첫 경기는 2003년 전북을 상대로 2대 1 승리를 거둔 경기입니다. 20명 정도의 외국인들이 모두 전북 원정길을 떠났죠. 우리는 경기장을 향해 가는 내내 노래를 불렀고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정말 멋졌죠. 또 하나 기억나는 건 경기가 끝난 후 전북 팬들이 경기장을 둘러싸고 우리 안양 팬들과 싸우고 싶어 했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때때로 패배를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그런 것 같네요. 그런 분들은 PC방에 가서 스타크래프트를 하며 화를 달래는 것이 났습니다.

다른 한 경기는 제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경기입니다. 버스를 타고 포항 원정을 떠났을 땐데요, 차가 막혀서 7시간이나 걸렸습니다. 아... 정말 완전히 지쳐서 힘들었는데도 경기장에서 잘 놀았어요. 경기는 정말 미친 것 같았어요. 스틸야드는 조그마한 경기장이어서 통풍도 잘 안되고 밤인데도 온도가 30도 중반 즈음이어서 완전히 사우나처럼 온 몸이 땀에 젖었죠. 그래서 결국 응원하기보다는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었죠.

하프 타임까지 1대 1이었던 경기는 6골이 더 터져 4대 4로 끝났어요. 마지막 골은 89분에 안양이 득점했죠. 경기 막바지에 외국인 선수 한 명이 퇴장 당했는데, 오죽했으면 전 그 선수가 들어가서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하고 싶어서 일부러 퇴장당한 줄 알았어요. 아니나 다를까 퇴장 당하자마자 지체 없이 얼른 본부석 안으로 들어가 버렸죠. 경기가 끝나는 휘슬이 울리자마자 양 팀 선수들 모두 그라운드에 완전히 드러 누워 버렸습니다.

또 신기했던 건 경기장에서 2002년 월드컵 때 팔던 맥주캔을 팔았어요. 무려 15개월이나 지난 맥주는 정말 맛이 이상했지만 우리는 목이 말라서 그냥 마셨어요! 골이 들어갈 때마다 우리 팬들은 철창에 기어 올라가 환호했죠. 그런 기억들만으로도 엄청난 밤이었어요. 안양으로 돌아올 때는 5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사실 90분 경기를 보기 위해 버스에 12시간 동안 갖혀 있는 것은 좀 미친 짓 처럼 보이긴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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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양에서 당신이 최고로 꼽는 선수가 있다면요?

사실 특정 선수를 꼽아서 이야기 하고 싶지는 않네요. 외국인 선수들은 왔다가 금방 떠나기 일쑤여서 한 선수를 고르기가 어렵습니다. 한국 선수 중에서는 이영표와 김동진이 안양 출신으로 큰 선수죠. 제 아내는 이영표와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그녀가 말하길 이영표를 포함한 학교 축구팀이 원정 경기를 떠날 때면 자신도 학교 밴드와 함께 응원하러 가야만 했다고 하더라구요. 정조국도 마찬가지로 떠오르는 스타였지만 좀 뛰지 않고 걸어다녀서 짜증났던 기억이 있죠. 안양 유니폼을 마련했을 때, 등번호와 이름을 고를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어서 그의 이름을 새겼던 기억이 나네요. 당시 이영표나 정조국 마킹만을 새길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조광래 감독은 매 주마다 다른 선수를 고용해서 팬들을 짜증나게 만들었는데 덕분에 안양은 리그 최고의 선수들을 가지고도 이긴 경기보다 진 경기가 더 많은 끔찍한 시즌을 보냈죠. 그러나 아직도 그 때 그 팀을 사랑합니다!

* 자, 이제 심판의 시간입니다. 좀 잔인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요. 혹시 LG팀이 서울로 떠나던 날을 기억하시나요? 언제 그 소식을 들었나요? 어떤 느낌이 드셨죠?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에는 좀 뜬소문 형식으로 퍼졌어요. 시즌이 끝난 상태라 다른 팬들을 만날 기회가 적었거든요. 공식적으로 발표가 났을 때는 무진장 화가 났지만 기분이 착잡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다음 시즌부터 토요일마다 보러 갈 팀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기분이 땅 끝까지 꺼져버리는 느낌이었어요. 당시 전 안양이 곧 팀을 하나 만들어서 기업의 손에서 벗어날 것으로 생각했었죠. 다른 지방 자치 단체에 생긴 시민구단들 처럼요. 슬프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 현재 많은 한국 축구 팬들이 FC서울을 일컬어 ‘북패륜’이라고 부르면서 안양 지역 사회를 배반하고 서울로 떠난 것에 대해 부모님을 집에서 쫓아낸 것과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생각에 동조하시나요?

네, 사실 그렇습니다. 전 FC서울드(‘Seould’ - 원래 Seoul이 아니었는데 Seoul이 되었다는 것을 표현 : 그는 인터뷰 내내 이 표현을 썼다)가 연고 이전한 후에 서포터가 생겼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뇌가 반이라도 존재하는 축구 팬이라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하고 그런 부끄러운 일은 저지르지 않았을 겁니다. 아마 그 팬들은 가슴이나 뇌가 없어서 그 팀을 응원하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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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FC서울 팬들은 그들이 동대문에 연고를 두고 있던 럭키금성축구단임을 내세우며 ‘서울로 연고 복귀한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K-리그 원년 참가 팀들은 사실상 연고지가 모두 서울입니다. 그 팀들은 다른 지역들의 축구에 대한 관심을 증진시키고 리그의 크기를 키우기 위해 서울에서 나가야만 했죠. 만약 그들이 처음 연고를 이전했을 때 대놓고 ‘우리는 잠깐 여기 있다가 다시 서울로 갈 거다’라고 얘기했다면 어떠한 서포터들도 그들을 응원하지 않았을 겁니다.

동대문에 있던 팀들이 서울 밖으로 나갔을 때가 한국 프로축구 리그의 진정한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리고 각 팀은 해당 지방에서 축구 팬들을 끌어들였습니다. 안양 LG는 그렇게 하고 나서 다시 옮겨간 거에요. 정말 바보같은 일 아닌가요? 안양 지역에는 아직도 축구팀이 없습니다. 한국 축구에서 가장 큰 더비인 안양과 수원의 지지대 더비가 하룻 밤에 날아가 버린 거에요.

왜 서울은 새로 팀을 창단하지 않았죠? 현대는 3개(울산 현대, 전북 현대, 울산현대미포조선)나 팀을 가지고 있어요. 그렇다면 LG도 서울에 새로 2번째 팀을 만들면 되는 것 아니었나요? 만약 정말 연고 복귀를 주장하고 싶다면 동대문 운동장으로 돌아가서 경기를 하라고 말하고 싶네요. 하하. (현재 동대문 운동장은 철거되었고, 제이미도 이를 알고 있었다)

* 어떤 안양 팬들은 FC서울을 그대로 응원하기도 하는데요.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직 제가 아는 사람 중에선 그런 사람이 없네요. 제가 우리 서포터들에게서 본 것은 분노였습니다. 만약 누군가 그런 사람이 있다면, LG에 취직해서 CEO의 구두를 닦고 싶었던 모양이겠죠.

* 외국인들이 주를 이루어 만든 서울 선데이 리그에 안양 팀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팀이 앞으로 생길 안양 축구팀의 밑바탕이 될 수 있을까요?

사실 서울 선데이 리그에 안양에 거주하는 외국인 축구팬들이 안양 올스타즈라는 팀을 만들었죠. 실력이 형편없긴 했죠. 지금도 그 팀은 존재하는데, 이름을 안양FC로 바꾸었어요. 2004년인가 2005년인가 다른 리그에 안양 시티즌이라는 팀이 생긴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들에 관한 자료는 아직 못 찾고 있습니다. 이 글을 보고 계시는 분 중에 아는 분이 있다면 좀 알려주세요.

* 많은 안양 팬들이 안양 LG의 연고이전 이후 축구계를 떠났습니다. 안양 LG가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런 생각은 안해보셨나요?

음, 안양은 평균적으로 경기당 10,000명 가량의 관중을 기록하고 있었죠. 막판 몇 경기에서는 20,000명도 기록하고는 했어요. 그 사람들이 현재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몇 시간씩 걸리는 거리의 다른 도시로 축구를 보러 떠날 거 같진 않네요. 그것이 안양 LG의 연고 이전이 미쳤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부천 SK가 제주로 떠나면서 둘러댔던 핑계였던 ‘적은 관중 수’는 안양에게는 말도 안 되는 현실이었어요. 다른 K-리그 팀들과 비교해 봐도 안양 팬의 숫자는 많았습니다. 모든 원정 경기에 원정 버스 1,2대는 너끈히 투입됐죠. 7년이 지난 지금도 어떤 팀들은 겨우 3명의 원정 팬을 기록하고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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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천과는 달리, 안양 팬들은 아직도 K3에 팀을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안양이 K3나 내셔널리그에 팀을 창단하자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보기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으로, 안양 시가 새로운 축구팀을 후원하는 거죠. 안양 시장인 이필운이 2조 2천억원을 들여 100층짜리 시청사를 지을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그 새로운 안양 시청의 방 몇 칸만 덜 지으면 축구 팀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안양에는 농구 팀은 있지만 축구와 야구팀은 없어요. 안양은 한국에서 인구수로 따지면 15번째로 큰 도시인데다가 근처 의왕과 군포 주민 수까지 합치면 1백만이 넘는 거대한 도시입니다. 안양 시민들은 시청이 후원하는 제대로 된 축구팀을 가질 자격이 있습니다.

대전, 인천, 대구도 하고 있고 이제는 광주도 시민구단을 창단할 예정입니다. 구단이 흑자를 내는 건 전혀 상관 없는 문제입니다. 안양시가 과연 안양 미술 공원이나 놀이터, 도서관을 만들어서 돈을 벌고 있나요? 아니죠. 돈은 좀 쓰겠지만 그것으로 얻는 심리적인 효과는 훨씬 큽니다.

다른 방법은 적당한 크기의 기업이 팀 창단을 후원하는 건데요, 현재와 같이 경제가 별로 살아나지 않은 때에 그런 일이 벌어질 것 같진 않네요.

* 그렇다면 축구 팀에게 왜 연고 의식이 중요할까요?

아, 물론 중요하죠. 연고지에 있는 팬들이 경기에 올 사람들이기 때문일 뿐 아니라 그 사람들과 축구 클럽이 단단한 유대감을 형성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축구 클럽이 그 지역을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시민 구단 뿐 아니라 기업 구단일 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 구단들도 함부로 연고 이전을 할 수가 없는 것이죠. 팀들이 “부산 아이파크”나 “포항 스틸러스” 혹은 “울산 호랑이”라고 불리는 것은 다 그런 이유가 있어섭니다. 그 지역은 그 팀들에, 그 팀들은 그 지역에 속해있는 셈이죠.

* 자, 다시 일반적인 축구 얘기로 돌아가죠. 가장 싫어하는 축구 팀을 꼽자면요?

싫어하는 팀 1위, 2위 그리고 3위 모두 FC서울드 입니다. 안양 팀을 응원할 때는 수원과 성남을 싫어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이유가 없네요.

* 한국 축구 유니폼 중에서 최고/최악의 유니폼이 있다면요?

흠... 어려운 질문이네요. 부산은 나쁘지 않아요. 전북에게 악의는 없지만, 전북 유니폼의 초록색은 마치 일요일 새벽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종류죠. (환경 미화원 같다는 얘기다) 나머지 유니폼들은 고만고만하지만 전 이해할 수 있어요. 많은 디자이너들이 모험을 시도했다가 끔찍한 결과를 낳을까봐 고민했을 테니까요!

* 한국에서는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방송과 야구가 인기를 얻고 있는 반면 축구는 그다지 인기가 없는데요.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2003년에 이에 대해 코리아 타임즈에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K-리그가 얼마나 TV 마케팅이 부실한지 말이죠. K-리그는 당장 경기 날을 좀 더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사무실에서 나와 팬들과 인터뷰를 하고, TV에 경기를 내보내기 위해 경기 일정을 잘 짜야만 할 겁니다. 축구 전문 TV 채널을 만든다면 K-리그에게 굉장히 유익할겁니다.

또 다른 방법은 축구 전용 구장을 건립하는 거죠. 트랙이 있는 거대한 구장들은 좋은 축구 관람 분위기를 만들기 힘들게 합니다. 특히 거대한 월드컵 구장들은 K-리그 평균 관중에 비해 너무 큽니다. 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지만 전 아무런 희망도 가지고 있지 않아요. 지난 몇 년간 그런 것들을 불평해 왔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거든요.

그러나 적어도 내셔널리그(2부리그)와 K3리그(3부리그)는 점점 모양새를 갖추고 있고, 몇몇 축구 전용 구장들이 건립되기 시작했습니다. 어쨌거나 가장 중요한 것은 매우 좋은 품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팬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는 정기적인 TV 방송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건 어떤 프로 스포츠에게도 가장 중요한 요소죠.

* 한국 축구 경기장과 뉴질랜드 축구 경기장이 다른 점이 있다면요?

뉴질랜드에서 축구는 크게 인기가 있는 편은 아니지만 올해 뉴질랜드 역사상 가장 축구가 조명을 받을 겁니다. 호주 A-리그(프로 리그, 뉴질랜드는 자체 프로 리그가 없다)에 참가하고 있는 뉴질랜드 팀인 웰링턴 피닉스는 플레이오프 준결승까지 진출해 34,000명의 관중을 모았어요. 그 팀 팬들은 정말 열정적입니다.

또한 뉴질랜드 국가대표팀이 월드컵에 나가게 되었고 뉴질랜드 축구 클럽인 오클랜드 시티는 세계 월드 클럽 챔피언십(아시아 대표로 포항 스틸러스가 참가했다)에서 5위를 차지했지만, 아마추어 클럽으로써는 정말 대단한 성과죠. 그러나 아직까지 프로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축구 리그 관중은 거의 없습니다. 럭비 같은 스포츠는 평균 10,000명에서 20,000명 정도의 관중을 끌고 다니거든요.

* 월드컵이 다가오네요! 뉴질랜드가 어떤 성적을 낼까요?

글쎄요, 만약 그들이 한 경기라도 비긴다면 월드컵을 우승한 것과 마찬가지일 겁니다. 물론 저는 아무런 희망도 가지고 있지 않아요. 한 골이라도 넣는다면 전 정말 행복할 것이고 만약 4골 차 내로 패배한다고 해도 기쁠 겁니다. 이탈리아는 뉴질랜드를 뼈까지 발라버릴 것이 분명하고 파라과이도 분명 어려운 상대입니다. 심지어 슬로바키아도 별 힘 들이지 않고 우리를 이기고 싶어 할 것이지만, 뉴질랜드는 슬로바키아를 상대로 승부를 걸 작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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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한국 축구 팬들, 혹은 FC서울 팬이나 동료 안양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안양에 사는 축구 팬들이 시청에게 팀을 만들자고 요청했으면 좋겠습니다. 설령 그 팀이 K3리그에 참가할 지라도요. 사실 한국의 어떤 축구 팬이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그들에게 앞으로 채워야 할 빈 경기장이 많다고 얘기하는 것도 잊지 마시구요!

한국에서 축구를 배우고, 그리고 그 축구로 인해 상처를 입은 축구팬 제이미 머독. 이방인이지만 안양을 사랑했던 33살의 뉴질랜드 청년은 아직도 글을 쓸 때 마지막에 자신의 희망을 조그맣게 남겨 놓는다.

'2012 K-League Champions, Anyang Citizen'
칫통
레프리(중재)
포스트: 1702
가입일시: 2010년1월10일(일) 23:10
위치: Suwon

헐 딴지보다 빠른 인터뷰넹..ㅎㅎ

포스트 by 칫통 »

딴지보다 먼저 올린거임? 이글 보고 딴지 뒤져도 기사가 없길래..
앵 어디 올린거지? 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딴지에도 올라왔넹..ㅎㅎ

전 FC서울드(‘Seould’ - 원래 Seoul이 아니었는데 Seoul이 되었다는 것을 표현 : 그는 인터뷰 내내 이 표현을 썼다)가 연고 이전한 후에 서포터가 생겼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뇌가 반이라도 존재하는 축구 팬이라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하고 그런 부끄러운 일은 저지르지 않았을 겁니다. 아마 그 팬들은 가슴이나 뇌가 없어서 그 팀을 응원하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뇌가 없어도 연수로 가슴이 없으면 뽕으로도 알아채면 좋을껀데..흠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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