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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단 배경 == 직접적인 배경은 [[1966년 런던 월드컵]]에서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이 보여준 월드컵 8강행 충격에 있었다. 당시 북한의 월드컵 8강은 세계적인 이슈이기도 했지만, 남북간 체제 경쟁의 구도가 극에 달했던 1960년대 후반, 북한의 8강행이 남한 정부에게 준 충격의 강도는 엄청난 것이었다.<ref>때문에 북한 월드컵 8강 소식은 박정희 정권에 의해 보도관제되었고, 월드컵 8강 신화를 퇴색시키기 위해 퍼뜨려진 것으로 여기어지는 루머, 이를테면 북한 월드컵 8강의 주역들이 숙청되어 정치범형무소로 끌려갔다더라, 런던 월드컵 북한대표들이 런던에서 영국 매춘부와 놀아난게 걸려서 북한에 가서 숙청당했다더라 (;;) 류의 낭설이 남한 사회에 떠돌기도 하였다. 아직도 이게 진짜라고 믿는 사람도 많고 -_-;</ref> 특히, 북한팀과는 언제든 월드컵 아시아 예선이나 올림픽 아시아 예선등에서 맞닿드릴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부담감은 더한 것이었고, 이에, 당시 중앙정보부 부장이었던 김형욱은 국가적 지원하에 북한 축구팀을 꺽을 역량을 가진 남한 최고의 축구팀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ref>비슷한 이유로 올림픽에 대한 국가적 지원 방향성도 확립되었다.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북한에 최초의 금메달을 안긴(사격 남자) 이호준 선수는 수상 소감에서 '원수의 심장을 겨누는 심정으로 쏘았다'는 유명한 발언을 남기며 남한을 충격으로 몰아넣었고, 이후 올림픽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와 지원이 늘어나게 되었다.</ref> 이에 1967년 2월 창단된 것이 양지축구단. 양지축구단에서 '''양지'''는 당시 중앙 정보부의 표어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 에서 따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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