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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수 생활 == === K리그 이전 === 데니스는 1994년 FC 사할린 홀름스크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하였고, 1995 시즌에 32경기에서 12골을 넣으며 팀내 최다 득점자에 올랐다. 하지만 팀은 시즌이 끝난 뒤 러시아 2부 리그에서 러시아 3부 리그로 강등당하여 프로 클럽으로의 지위를 상실하였고, 결국 팀을 떠나게 되었다. 이때 그의 나이는 18살에 불과하던 때였다. === 수원 삼성 블루윙즈 시절 === 1995년 12월 창단한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창단 첫해 K리그 우승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대표팀 선수들을 [[우선지명]]하며<ref> 당시 애틀란타 올림픽대표 선수들 중에 수원에 지명된 선수로는 [[이기형2|이기형]], [[이경수]], [[박충균]]. 그리고 본선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올림픽 아시아예선에서 맹활약하였던 [[이운재]], [[조현두]], [[조현]], [[이병근]] 등이 있었다 </ref> , 힘찬 시동을 걸었다. 수원은 이러한 호화 멤버에 걸맞는 외국인선수의 영입을 원했고, 이에 [[바데아]], [[유리]], [[아디1|아디]] 등 해외에서 검증된 외국인 선수들을 보강했다. 이때 [[김호]] 감독은 러시아에서 데니스를 찾아냈고, 이적료 20만달러 연봉 3천만원에 입단 계약을 체결하였다. '18살에 불과한 외국인 선수가 국내에 적응하겠냐?' 라는 회의적인 시선도 있었지만, 김호 감독은 데니스를 중용했고, 이에 데니스는 보란듯이 K리그 첫 시즌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데니스는 첫 해 20경기에 출장, 5골과 3개의 도움을 기록하며 소속팀 수원의 후기리그 우승과 [[FA컵]] 결승진출을 이끌어냈던것. 이후 데니스는 수원의 화려한 전성기와 함께했다. 팀 전체가 부진에 빠졌던 1997년과 불미스러운 일 (하단 에피소드 참조)로 6개월간 경기에 나서지 못했던 1998년을 제외하고,<ref> 김주성 목밟기하던 시절도 데니스는 18경기에 출전하고 있었다 </ref> 데니스는 수원에서 매년 20경기 넘게 출장했고, 결정적인 순간마다 득점과 도움을 기록하면서 수원이 명문 구단으로 도약하는데 1등 공신이 되었다. 특히 2000년 [[산드로C]]가 들어오면서 [[고종수]] - 데니스 - 산드로C 로 이어지는 '''[[고데로 트리오]]'''는 상대팀들을 벌벌 떨게하는데에 충분했고, 수원은 이 트리오를 바탕으로 2001년과 2002년 [[아시아클럽선수권]]과 [[아시아위너스컵]]을 연속으로 재패하는데 성공했다. === 성남 일화 천마 시절 === [[File:데니스2.jpg|200픽셀|섬네일|오른쪽|성남 시절의 데니스]] 수원에서 성공적인 나날들을 보내던 데니스는 유럽 진출을 원하고 있었고, 이에 동의한 구단도 데니스를 놓아주기로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데니스의 선택은 유럽이 아닌 [[성남 일화 천마]]였다.<ref>어째 [[마토|모 선수]]가 떠오르는데?</ref> 이유는 역시나 돈. 당시 성남은 2001년, 2002년 K리그를 재패한데 이어, 2003 시즌을 앞두고 [[피스컵]]과 K리그 3연패를 위해 '''초호화급 스쿼드'''를 구성하기 시작했다. 이에 성남은 [[전북 현대]]에서 [[김도훈]]을 영입한데 이어 [[박충균]]과 [[이기형2|이기형]]의 영입을 확정지었고, 급기야 데니스마저 '''이적료만 150만 달러'''라는 엄청난 금액으로 데려오는데 합의하였다. 계약 기간은 2년에 (계약료 50만달러) 연봉 36만달러 (연간 18만달러), 경기당 출전수당 2천500달러.<ref>이외에도 성남은 [[이싸빅]], [[윤정환]]도 영입해왔는데 이때 쏟아부은 이적료가 총합 '''55억'''이었다. 당시 [[대전 시티즌]]의 1년 예산이 30억 남짓하던 시절인걸 생각하면 얼마나 돈을 퍼부었는지 이해가 가리라.. -_-</ref> 기존의 리그 2연패 멤버에 데니스까지 가세하자 성남은 K리그 최강의 위용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이성남으로 이름을 바꾼 데니스는 2003년 38경기에 나와 9골 10도움을 기록했고, 성남은 일찌감치 [[2003 삼성 하우젠 K리그]] 우승을 확정짓게 되었다. 2004년에도 데니스는 21경기 4골 2도움을 기록한데 이어 2005년 20경기 1골 6도움을 기록했다. === 부산 아이파크 시절 === 2005년 전기리그 우승을 확정지은 [[부산 아이파크]]는 [[AFC 챔피언스리그]]와 [[K리그 플레이오프]] 준비를 위해 이성남과 [[다실바]]를 6개월간 임대해 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당시 부산의 철벽 플랫 4의 주축이었던 [[박준홍]]이 시즌 아웃되면서, 부산 전술은 근본부터 헝클어지기 시작했고 여기에 선수단들도 전기리그 우승 후 긴장감이 풀어지면서 제대로된 유기적인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이성남은 부산에서 후기리그 5경기에 출전했지만,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지는 못했고 부산도 중요하게 걸려있던 두개 대회에서 모두 탈락하고 말았다. 결국 이성남은 짧은 부산 생활을 마치고 원소속팀 성남으로 복귀하였다. === 다시 수원 시절 === 성남으로 돌아왔지만, 주전 경쟁에서 승산은 없어보였고, 이에 이성남은 친정팀 수원으로의 복귀를 추진하게 되었다. 수원은 이성남의 영입을 위해 당시 주축선수였던 [[안효연]]을 성남에 보내고 이성남을 데려오게 되었다. 이때 등록명이 다시 데니스로 바뀌게 되었다. * '''이성남 ([[성남 일화 천마]]) ↔ [[안효연]]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6 K리그 개막전 [[FC GS]]와의 경기에서 후반 교체로 출전한 데니스는 패널티킥을 이끌어내며 활약하였고, 후반기 [[울산 현대]]와의 경기에서도 결정적인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후기리그 우승에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다. 하지만, 이듬해 데니스는 서혜부 부상을 당하면서 장기간 재활에 돌입했고, 끝끝내 재활에 실패하며 수원에서 자유계약으로 풀리고 말았다. === K리그 이후와 강원 입단 === 수원에서 자유계약으로 풀린 데니스는 2008년 당시 러시아 2부 리그의 FC 시비르 노보시비르스크로 이적하여 러시아 무대로 복귀하여 2시즌 동안 27경기에 출전하였으며, 시비르의 승격을 이끌었으나, '승격후 외국인 선수 교체'로 인해 재계약에 실패하였다. 2012년 초까지 데니스는 [[니폼니쉬]] 감독이 지휘하고 있는 FC 톰스크에서 [[플레잉코치]]로 활동했으나, '승격후 외국인 선수 교체'로 인해 방출. 2012년 7월 [[강원 FC]]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김학범]] 강원 FC 감독은 데니스의 영입을 고민중인 것으로 알려져있으며, 2012년 7월 25일 [[K리그 연맹]]에서 [[수원 삼성]]에 등록되어있던 데니스의 등록말소를 공시해 강원 FC 입단이 거의 기정 사실화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있다. 결국 모두의 기대대로(?) 2012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데니스는 강원에 등록되는데 성공하였다. 무려 6년만의 K리그 복귀로 직함은 [[플레잉코치]]라고 한다. 강원 입단 후, [[김학범]] 감독의 조련아래 교체 자원으로 강원 경기를 소화하였으며, 노장으로서의 관록과 팀 장악력을 앞세워 [[지쿠]]와 함께 강원 FC의 1부리그 잔류에 첨병이 되었다. 하지만 2013시즌에는 세월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었던지,<ref>한국 나이로 무려 37세...</ref> 1경기 교체출장에 그쳤고, 결국 2013년 6월을 끝으로 강원 FC에서 퇴단하였다. 이후 수원 삼성의 U-15팀인 매탄중학교 축구부 코치로 부임해 지도자 인생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2014 시즌이 끝난 직후 고향인 러시아로 돌아갔다. === 플레이스타일 === 탄탄한 하드웨어로 그라운드에서 상대 수비수들의 압박에도 밀려나지 않고, 폭발적인 순간 스피드와 공간활용 능력을 보여주는 선수였다. 문전에서의 파워넘치는 돌파와 마무리 능력을 갖추었고, 동료들과의 연계 플레이도 뛰어났다. 하지만 2004년에 접어들면서 노쇠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평을 받았으며, 팀을 자주 옮겨다님에 따라 동료 선수와의 연계 플레이의 세밀함도 갈수록 무뎌져가 아쉬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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