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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소년 시절 == 황해도 은율군 출신으로, 1.4 후퇴 당시 남하하여 서울 아현동에 정착한 뒤 강문중 (오늘날의 서울 용문중학교), [[한양공고]], [[경희대학교]]를 나왔다. 강문중 시절까지 키가 작은 편이었기 때문에 축구 선수가 아닌 핸드볼 선수의 길을 걸었으나, 우연한 기회를 잡아 축구 골키퍼의 길을 걷기에 이른다. 월간축구 1971년 6월호 인터뷰에 따르면, 중학생 시절 축구를 보고자 [[서울운동장]]을 찾아갔는데 우연히 [[대신고등학교]] 축구부 벤치 근처에 자리를 잡았고, 대신고 축구부 골키퍼가 부상을 당해 경기 시작 10여 분만에 실려나가는 상황을 봤다고 한다. 당시 대신고에는 후보 골키퍼가 없던 상황, 코치가 난처해하던 차에 이세연 씨가 '나 골키퍼 할 줄 알아요!' 하고 당돌하게 나섰고, 코치가 그를 기용해 경기에 나섰다는 것..<ref>지금 들으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할 수 도 있겠지만, 이 당시만 해도 소위 부정 선수 출전이 매우 흔했다…. 저 유명한 [[이회택]] 씨도 [[영등포공고]] 소속으로, 고교 대회를 나섰으나 이 때 신분은 부정 선수였고 결국 이를 문제 제기한 상대팀에 의해 영등포공고 축구부에서 쫒겨나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을 정도.</ref> 이 때 이세연 씨는 1실점하며 경기를 이기는데는 실패했지만, 당시 대신고 코치가 이세연 선수의 가능성을 직감하고 훈련에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이후 동기 부여를 받은 이세연 씨는 점프력과 유연성을 기르기 위해 기계체조까지 배워가며 연습에 매진, [[한양공고]]에 진학해서는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청소년대표팀]]에도 발탁될 정도로 기량이 일취월장했고, 경희대학교 시절부터는 본격적으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국가대표]]에도 발탁되며 성공 가도를 걷기 시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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