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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수 시절 == 10년의 세월동안 럭키 금성과 안양 LG의 수비를 책임졌던 선수이다. [[1988년 드래프트]]에서 우선지명된 3명과 별도로 1순위로 지명된 조병영 선수는, 1992년 K리그 최종전에서 [[포항 스틸러스|포항제철 아톰즈]]의 우승을 저지시킬 뻔한, 동점골을 터뜨렸던 주인공으로도 올드 포항팬들에게 기억되는 선수이기도 하다. 조선수는 10년이라는 세월동안 한 팀에서 줄곧 뛰었지만 입단 동기인 [[윤상철]]이나, 럭키금성 전력의 핵심이었던 [[이영진1|이영진]], [[이영익]], [[구상범]] 등 일세를 풍미했던 이들에게 밀려 데뷔 시즌의 반짝 활약 이후, 오랜 기간을 서브 멤버로 머물었다. 그러다 93년 시즌 종료 후, [[고재욱]] 감독이 사임하고, [[조영증]] 감독이 취임하면서 조병영 선수는 기회를 얻어 대활약했다. 당시 조감독은 [[구상범]] 선수의 이적 공백을 조병영 선수의 기용으로 메우려했던 것. 하지만 결과적으로 LG는 구상범의 공백을 메우는데 실패하며 수비 조직력이 와해되고 말았고 하위권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이후 LG 치타스는 90년대 중반 긴 암흑기를 거쳤는데, 역설적으로 LG의 암흑기가 짙어질수록 조병영 선수에게 오는 출장기회는 늘어났다. 96년 개인 최다 리그 출장인 33경기를 기록했고, 97 시즌에는 [[안양 LG 치타스]]의 주장을 맡아 팀의 수비 라인을 진두지휘했던 것. 하지만 96년, 97년 연속 9위를 기록하는등 팀의 상황은 점점 더 안좋아져만 갔다. 이에 주장의 책임감으로 조선수는 삭발을 감행하기도 했을 정도였는데.. 조선수의 투혼에도 불구하고, 97시즌 [[윤상철]], [[이영익]] 등 노장 선수들의 부진으로 안양 LG는 10개 팀 중 9위를 기록했고, 안양 LG는 이에 선수단 쇄신을 주장하며, [[윤상철]], [[이영익]], [[김판근]], 조병영 등 총 5명의 노장 선수를 은퇴시켰다. 결국 조병영 선수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10년만에 선수 생활을 정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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