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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축구 피지컬 트레이닝의 역사는 [[1954년 FIFA 스위스 월드컵]]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대회에서부터 최초로 피지컬 코치가 일부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단 명단에 등장했기 때문. 하지만 이 때만 해도, 피지컬 코치는 과학적 지식을 갖추지 않고 선수들에게 강하고 힘든 체력 트레이닝만 지도하는 역할에 가까웠다.<ref>한국축구의 경우도 선수 생활 은퇴 후, [[트레이너]] 직함을 달고 팀에 남아있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바로 이런 체력 트레이닝 지도 역할을 맡고 있다.</ref> 그러다 1960년대 [[벨기에]]에서 [[서킷 트레이닝]] 등 다양한 트레이닝 기법이 개발된 것을 필두로, 유럽에서는 빠른 피지컬 트레이닝 부문의 발전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상대적으로 비 유럽권은 이런 축구 트레이닝 기법 개발 및 보급에 무관심했다. 그 결과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당시, [[잉글랜드]]를 비롯한 유럽의 독주를 남미 국가들이 막지 못하는 이변이 벌어졌고<ref>당시 대회 우승을 자신했던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이 조별 예선에서 탈락했고, 8강 토너먼트에 올라간 남미 팀은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2팀에 불과했다. 게다가 그 2팀 마저도 8강에서 탈락, 결국 4강 이후부터는 유럽 축구팀들의 잔치가 되버리며 남미 축구계는 자존심을 구긴바 있다.</ref> 이후 브라질을 중심으로 남미 축구계의 트레이닝에 대한 관심이 고조, 유럽에서 활동하던 전문가들을 초빙해 본격적으로 과학적인 피지컬 트레이닝 부문의 발전 시대를 열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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