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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파일:HIhistory.png|섬네일|200픽셀|할렐루야 축구단 및 임마누엘/이랜드 축구단의 역사 개괄]] == 창단과정 == 1979년 [[대한축구협회]] 회장에 취임한 [[신동아그룹]]의 오너 [[최순영]]씨가 자신의 축협 회장 취임시 공약<ref>당시 최순영의 공약이자 축협의 당면과제는 크게 [[축구전용구장]], [[승강제]]와 [[프로축구]] 출범이었다.</ref>중 하나인 프로리그를 위해 1980년 12월 20일 창단한 대한민국 최초의 프로 축구단이었다. 축구의 대중화 및 기독교 선교가 창단 목적이었기 때문에 보통 기업구단들이 그룹 자회사 산하에 구단을 두는 것과 달리 최순영이 이사장으로 있던 선교단체인 한국기독교선교원 산하에 구단을 두었고, 창단 감독이던 [[김용식]] 이하 선수 전원이 개신교 교인이거나 개신교에 입교할 사람으로 구성되었으며, 팀명은 할렐루야가 되었다.<ref>할렐루야(Hallelujah)는 하느님을 찬양하라라는 의미의 히브리어로 개신교에서 많이 사용되며, 가톨릭에서는 알렐루야 혹은 찬미 예수라는 표현을 사용하므로 개신교적인 단어라 할 수 있다. 개신교측에서는 개신교라는 단어보다 기독교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나 기독교는 개신교와 천주교(가톨릭) 모두를 칭하는 단어이다.</ref> 그러나 할렐루야팀이 창단되었으나, 정작 다른 프로팀이 생기지 않았고 프로 리그가 출범되지 못해 곤란함을 겪게 되었다.<ref>때문에 정식 창단은 80년 12월에 했지만 공식 경기는 이듬해 3월에야 이루어졌다. 즉 1981년 3월 28일, 할렐루야 축구단은 [[동대문운동장]]에서 브라질 Americano를 초청해 친선 경기를 가졌으며 [[이영무]]의 골과 상대팀의 [[자책골]]을 더해 2:1로 데뷔전 승리를 거두었던 것. 이후 동년 4월 11일에는 [[대전공설운동장]]에서 [[홍콩 1부 리그]] 팀인 세이코를 초청해 [[이영길]], [[이영무]], [[신현호]]의 연속골로 3:1 대승을 거두었던바 있다. 그러나 경기간 간극도 길었고, 이벤트성 초청 경기에 국한된 한계가 있었다.</ref> 그래서 1981~82년 동안 [[미주]](북아메리카)와 [[홍콩]] 등지의 국제 축구대회에 출전하기도 하고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일명 [[박스컵]]) 에도 출전하여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과 자웅을 겨루기도 하였다. 1982년에는 신앙과 축구 사이의 중심문제로 논란이 생겼는데 결국 할렐루야 축구단의 창단주역이었던 [[이영무]]를 비롯하여, [[신현호]], [[조병득]], [[김철용]], [[박민재]] 등 5명의 선수가 4월 29일 제명, 탈퇴되어 12명의 선수만 남게 되는 위기 상황에 쳐하기도 하였다.<ref>탈퇴된 선수들은 기독교 선교구단인 할렐루야가 신앙보다 축구만 신경쓰고 있으며 할렐루야 감독이 되기 위해 입교한 [[함흥철]] 감독과 나머지 선수들의 신앙심이 부족하다고 하고 구단측에서는 경기전 운동장에서 지나칠 정도로 기도를 하여 경기에 지장을 주며 간증선교를 위해 훈련에 무단으로 불참하는 등 축구선수로서의 책임을 망각하고 신앙에만 몰두한다고 대립했다. 결국에는 이수정 할렐루야 축구단 단장이 주장 [[이영무]]에게 좀 더 훈련에 매진하라고 했으나 그에 대해 반발하고 5명의 선수가 탈퇴를 선언하여 결국 5명의 선수가 제명. 이영무는 탈퇴후 [[임마누엘 축구단]]을 꾸려 코치겸 선수로 활동하면서 목사까지 되었고 나중에는 할렐루야 축구단의 단장이 되었으니 승리의 이영무. 좀 ㅎㄷㄷㄷ한 스토리.</ref> == 슈퍼리그 시절 == {{본문|할렐루야 독수리}} 1983년 드디어 프로팀과 실업리그 선발팀이 함께 출전하는 [[슈퍼리그]]가 개막되면서 할렐루야도 참가하게 되었는데 첫해 우승을 차지해 K리그 초대 챔피언이란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83년 우승 이후 주축 멤버들의 대거 은퇴 선언과 타 팀 이적등으로 전력이 처지면서 84, 85시즌에는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지 못하였다. 결국 1985년 가을, 85시즌을 끝으로 슈퍼리그 참가 포기와 더불어 아마추어팀 전환<ref> 원래는 구단 매각을 추진했지만 협회장의 구단해체에 대한 반발 및 기독교계의 반발(신의 부름에 부응하기 위한 팀을 매각한다는게 말이 안된다며..)로 인해 매각 계획은 철회하고 아마추어로 전환하여 운영하는 것으로 방침을 바꿨다. [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_column.php?gisa_uniq=2013040305410852§ion_code=40&key=&field= 김덕기의 프로축구 30년<23> 아듀, 프로 1호 독수리 날개 접다] -[[스포탈코리아]], 2013년 4월 3일- </ref>을 선언하면서 프로 무대에서 할렐루야 축구단은 사라지고 말았고, 이후 프로 축구와는 다른 실업 축구로써의 독자적인 길을 모색하게 되었다. == 실업 전환 이후 == 할렐루야 축구단이 프로리그 참가를 포기하였다지만 여전히 선수단은 건재했고, 덕분에 아마 축구계에서는 최강의 자리를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유지하였다.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 및 각급 실업 축구대회를 90년대 석권하였고, [[K리그 드래프트]]로 수많은 선수를 프로에 배출시키기도 하였다. == 할렐루야 해체 및 부활 == 1997년 IMF 위기상황은 할렐루야 축구단도 비켜가지 못했는데 할렐루야 축구단의 모기업인 신동아 그룹 산하의 기독교 선교횃불재단<ref>최순영이 이사장으로 있던 한국기독교선교원의 후신으로 1991년 양재동에 횃불선교센터가 지어지면서 이름을 변경하였다. 할렐루야 선수단의 숙소와 구단사무실이 센터내에 위치해 있었다. 최순영이 재단이사장으로 있다 최순영이 경제관련비리로 수감되어 있을 때는 부인이자 국민의 정부 시절 옷로비사건으로 유명세를 치룬 이형자씨가 재단이사장으로 있었다. </ref>이 98년 9월 구단운영 포기를 선언하면서 구단주를 잃은 할렐루야는 선수들의 자비를 모아 참여하는 등 어렵사리 1998년 실업리그를 마무리 하고 일부 선수들은 [[K리그 드래프트 1999|K리그 드래프트]]를 통해 프로구단으로 적을 옮기게 되었으며, 팀은 12월 말 공식 해체되었다. 같은해 2월, 이랜드의 운영 포기로 인해 이랜드 축구단에서 다시 원래의 이름인 [[임마누엘 축구단]]으로 원상 복귀한 후<ref>2월에 구단 해체를 결정하였고 팀 이름도 임마누엘로 원상복귀 되었지만 이랜드 측에서 98년 시즌까지 최소한의 운영비를 지원하기로 하었으므로, 실제 이랜드의 지원이 끊어진 것은 할렐루야와 비슷한 시기이다. 그러나 이랜드 회장 박성수씨가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으므로 계약서와는 별도로 이후 할렐루야 시기에도 구단 물품 및 용품 지원은 꾸준히 이루어졌고 나중에는 할렐루야의 유니폼 스폰서로 참여하기도 하였다.</ref> 힘겹게 구단을 운영하던 [[이영무]]씨에 의해 재창단하게 되었다. 선교횃불재단이 해체를 결정한 할렐루야팀에 기존에 남아 있던 선수들에 임마누엘축구팀에서 뛰었던 선수들을 합류시킨 후 전국의 개신교 단체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기로 하고<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4437712 할렐루야축구단, 2월말 재창단] -1999년 1월 13일, [[연합뉴스]]-</ref> 1999년 2월 공식 창단식을 가지고 [[한국실업축구연맹]]에 등록, 리그의 중단없이 실업리그에 참가하게 되었다. <ref>98년 말을 기점으로 할렐루야는 신동아 그룹의 지원이 끊어졌고 임마누엘은 이랜드의 지원이 끊어지는 최악의 상황에서 선교구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개신교계의 지원이 절실하였는데 임마누엘보다 할렐루야가 훨씬 인지도가 높았기 때문에 할렐루야 중심으로 팀을 존속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ref><ref>[http://news.kbs.co.kr/news/view.do?ncd=3799024 할렐루야 축구단 재창단] -1999년 3월 16일, [[KBS]]-</ref> == K2리그 및 내셔널리그 == 이영무를 중심으로 전국 기독교 단체의 후원으로 재창단한 [[할렐루야 축구단]]은 이후 실업리그를 꾸준히 참여하였으나 90년대 중반 할렐루야와 임마누엘이 서로 우승을 다투던 전성기시절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2003년 K2리그(이후 [[내셔널리그]])가 출범하자 [[익산]]을 연고로 리그에 참여하였으나 지자체 주민들의 반발로 후반기에는 연고 경기장을 사용하지 못해 리그에 참여하지 못했으며, 2003년 말 [[김포]]를 연고로 활동하게 되었으며, 이 시기에는 서산, 험멜 등과 탈꼴찌 경쟁을 하는 상황이었다. 2006년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에서 18년만에 우승을 차지하며<ref>당시 언론에서는 1988년 이후 18년만에 대통령배를 우승했다고 하였다. 88년 우승팀은 임마누엘이 아니라 할렐루야였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73&aid=0000001467 할렐루야, 18년만에 대통령배축구 우승] -2006년 3월 30일, [[스포츠서울]]- </ref> 상승세를 탔으나 그해 내셔널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고양KB]]에 분패하며 준우승을 차지하고 말았다. 이후 [[안산와~스타디움]] 완공후 축구단을 유치하려던 안산시와 연고협약을 체결하고 2007년부터 안산 할렐루야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였으며, 2012년에는 종교색을 지우고 향후 K리그 입성을 위해 '''안산 H FC''' 라는 이름으로 변경하였다. 그러나 종교색으로 인해 안산시와 갈등을 빚으며 결국 2012년 고양시와 연고협약을 맺고 2013년부터 '''[[고양 Hi FC]]'''라는 명칭으로 [[K리그 챌린지]]에서 활동하게 되었고 2016년 [[고양 자이크로 FC]]라는 이름으로 참여했다. ==현재== 2016년 시즌 종료후에 K리그를 탈퇴, 2017년부터 다시 할렐루야 축구단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아마추어 선교축구단으로 활동중이다. 고양시절 코치로 활동 했던 [[서현철]]씨가 감독으로 활동하며 이사장이었던 [[이영무]]씨가 단장으로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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