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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리그 == 그렇게 박감독의 총애를 받으며 입단한 겐나디 선수는 이종화 선수와 번갈아가며 또는 함께 호흡을 맞추며 한국 축구에 적응하기 시작했고, 터프한 몸싸움과 태클이 주를 이루던 한국 축구 스타일에 금새 적응하며 일화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특히 1995년 12월, [[AFC 챔피언스리그]]의 전신격인 제 15회 아시아클럽선수권대회에서는 일화 천마를 우승으로 이끄는데 공헌하며 수비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이후 2년차가 된 1996년 시즌에는 경쟁상대였던 이종화 선수를 주전경쟁에서 밀어내고 붙박이 일화 스위퍼로 활약하게 되는데, 당시 '''[[안익수]] - [[이영진]] - 겐나디'''로 이어지는 [[플랫 3]] 라인은 K리그 역대를 통틀어도 맟수가 거의 없는 철벽같은 수비진이었다. 그걸 이겨내도 그 다음으로 k리그의 전설적인 골키퍼 발레리 [[샤리체프]]가 막고 있었기 때문에 절대 득점 할 수 없는 최고의 수비진이었다. 그러나, 1996년 시즌 도중 겐나디를 총애하던 [[박종환]] 감독이 사임하고 [[이장수]] 감독을 거쳐 [[레네 드자이에르]]가 1997년 시즌을 앞두고 부임하면서 겐나디 선수의 운명에도 먹구름이 드리우게 된다. 레네는 겐나디 선수를 자신과 맞지 않는 선수라고 생각해 결국 그를 [[안양 LG 치타스]]로 현금 트레이드했다. 겐나디를 쫒아낸 레네는 아프리카 국적의 선수를 영입했지만 모두 부진에 빠졌고 그는 그 당시 시즌을 망친 뒤에 경질되었다. 일화에서 쫒겨난 겐나디도 자신의 2번째 K리그 팀이었던 안양에서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채 방출되고 말았다. 박감독의 수비전술에 특화된 선수였던 겐나디에게 당시 안양의 수비는 꿈도 희망도 없는 수준이었고, 당시 겐나디의 나이도 32세로 기량 저하가 시작되던터라 새로운 스타일에 적응할 요령도 부족했었던듯. 결국 3년여만에 한국과의 인연을 정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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