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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리그 시절 == 1995년 12월 창단한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창단 첫해 K리그 우승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1996 애틀란타 올림픽]] 대표팀 선수들을 우선지명하며<ref> 당시 애틀란타 올림픽대표 선수들 중에 수원에 지명된 선수로는 [[이기형2|이기형]], [[이경수]], [[박충균]]. 그리고 본선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올림픽 아시아예선에서 맹활약하였던 [[이운재]], [[조현두]], [[조현]], [[이병근]] 등이 있었다 </ref> , 힘찬 시동을 걸었다. 수원은 이러한 호화 멤버에 걸맞는 외국인 선수의 영입을 원했고, 루마니아에서 맹활약하던 바데아를 점찍었다. 당시 바데아는 [[전남 드래곤즈]]와 이적 합의가 거의 마무리되어가던 시점이었지만, 전훈지였던 포르투갈에서 [[김호]] 감독이 직접 이적협상에 개입한 끝에 수원은 바데아의 영입을 확정지었다. 이적료는 당시로써는 최고액인 60만달러, 연봉은 11만달러로 역대 최고급 대우였다. <ref> 당시 전남은 수원에 대해 제소하겠다고 할 정도로 많은 비난을 퍼부었다 </ref> 우여곡절 끝에 입단한 바데아는 모두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K리그에서 성공신화를 써내려갔다. 바데아는 1996년 32경기에 출전해 4골 4어시스트를 기록했는데, 공격 포인트로만 본다면 평범할지 모르겠지만 바데아는 수비가담과 공격배급을 모두 도맡은 플레이메이커의 역할을 도맡았고 때문에 팀 공헌도가 무척 높은 선수였다. 특히 젊은 수원 선수들에게 바데아는 프로 선수로서의 자세등 많은면에서 타의 모범이 되기에 충분했다. 1996년 수원은 비록 [[울산 현대 호랑이]]에 밀려 준우승에 그쳤지만, 이해 바데아는 [[K리그 베스트 11]]에 뽑히며 최고의 한해를 보냈다. 1997 시즌에도 바데아는 33경기에 나와 3골 4도움으로 분전했지만, 공격수들이 워낙 부진한 탓에 팀성적은 5위에 그치고 말았다. 바데아는 1998년 필립 모리스컵과 정규리그 전반기 12경기에 나와 4골 2도움을 기록한 뒤 J리그의 벨마레 히라츠카로 이적하였다. 당시 이적 조건은 연봉과 이적료를 합해 52.5만 달러. 당시 벨마레에는 [[홍명보]] 선수가 활약하고 있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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