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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수 생활 == === 유소년 생활 === 중동중학교, [[중동고등학교]]를 거쳐 [[건국대학교]]에 진학하였다. 건국대 4학년 시절 대학생 신분으로 대표팀에 발탁되며 주가를 높였던 선수이다. === 수원과 성남 시절 === 건국대를 졸업하고 창단팀 [[우선지명]]으로 신생팀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입단하였다. 수원에 입단한 후에는 [[김호]] 감독의 지휘 아래에서 측면 수비수로 첫 시즌 10경기 출전에 성공하며 준우승에 이바지하기도 하였고, 이듬해인 1997년에는 데뷔 시즌보다 두 경기 더 많은 12경기 나섰다. 그러나 1998년부터 동 포지션의 [[이기형2|이기형]]과 [[울산 현대]]에서 이적해온 베테랑 [[신홍기]], 멀티 플레이어 [[이병근]]에게 밀려 단 두 경기 출전에 그치고 말았고, 시즌 종료와 함께 [[상무 축구단]]에 입단하였다. 군 복무에서 복귀 한 뒤에도 이러한 사정은 비슷하여서 2001년 두 차례 경기에 출전하였고, 여름 이적 시장에서 [[성남 일화 천마]]의 유망주 미드필더 [[황인수]]와 트레이드 되어 수원을 퇴단하게 되었다. * '''박충균 ([[수원 삼성 블루윙즈]]) ↔ [[황인수]] ([[성남 일화 천마]])''' 성남에 입단한 이후로도 2002년까지 정규 주전 선수로 오르지 못하고 말았고, 이 시기에 무명이었던 [[문삼진]]보다 적은 경기 출전을 보여주며 불안한 입지를 가져고 말았다. 이후 2003년에 수원에서 프로 입단 동기 선수였던 같은 포지션의 [[이기형2|이기형]] 선수까지 영입하게 되면서 더욱 주전 경쟁이 험난해 질 것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으나, [[차경복]] 감독의 신뢰 속에 정상 컨디션을 회복한 모습으로 정규 주전으로 출전해 꾸준하고 성실한 플레이로 데뷔 이래 가장 많은 경기인 25경기에 출전하며 기량이 만개하였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고, 성남의 리그 3연패의 금자탑의 주인공으로 한 몫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 부산과 대전 시절 === 성남에서 좋은 활약을 보인 뒤로 박충균 선수는 [[이안 포터필드]] 감독의 부름을 받아 [[자유계약]] 신분으로 [[부산 아이콘스]]에 입단하였다. 부산에 입단한 뒤로 14경기에 출전하며 부산의 [[2004 하나은행 FA CUP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 멤버로 이름을 올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점차 30대 중반으로 접어드는 나이로 2005년부터 경기 출전 수가 10경기로 줄어들었고, 시즌 종료와 함께 [[대전 시티즌]]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대전에 입단한 박충균 선수는 베테랑으로 젊은 대전 선수들을 이끌며 측면 수비와 미드필더로 진두지휘하며 22경기에 출전하였다. 이후 2007년 부산의 [[엔디 에글리]] 감독의 요청에 따라 부산으로 복귀하였고, 10경기에 출전한 뒤 시즌 종료와 함께 현역에서 은퇴를 결정하였으며, 2008년 [[삼성 하우젠 K-리그 2008]] 1라운드 개막 경기에서 은퇴식을 치러 현역에서 물러났다. === 국가대표 생활 === 1995년부터 국가대표 선수로 이름을 올렸으며, 칼스버그컵 [[콜롬비아]]와 4강 경기에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이 이끄는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본선 대표 선수로 [[이상헌]], [[이임생]], [[최성용]] 등의 선수와 함께 발탁되기도 하였지만 경기에 출전하지는 못하였다고 한다. 올림픽 대표 선수로 이름을 올린 뒤로 프로에 녹아들지 못해 대표팀과는 거리가 멀었기도 했으나, 2003년 [[성남 일화 천마]] 소속으로 안정적인 활약을 선보여 [[움베르투 코엘류]] 신임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오랜만에 발탁되기도 하였으며, [[일본]]과 [[우루과이]]와의 친선 경기에 출전하였다. === 플레이 스타일 === 장신 선수임에도 측면 수비를 담당하는 선수로 [[이기형2|이기형]] 선수보다 민첩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아 측면 수비로 최적의 요건을 갖춘 선수로 각광받기도 하였으나, 수비력에 있어서 가다듬어지지 않는 모습과 공격력에 있어서도 날카로운 면이 경쟁 선수들 보다 부족하다는 평가가 한동안 커 한동안 주전 선수로 올라오지 못하였다. 이후 30대에 접어든 2003년부터 안정적이고 터프한 수비를 보여주게 되면서 수준급 수비 능력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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