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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팀들의 등장 (1910년대-1930년대)=== 대한민국 실업축구의 시작은 20세기 초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축구 붐과 함께 학교팀, 학교 OB(졸업생)팀, 순수 동호회 팀과 같은 각종 유형의 클럽들이 등장하는 가운데, 같은 직장 내 사람들로 이루어진 실업팀들도 등장한다. 특히 상공업이 발달했던 서울과 평양 두 도시를 중심으로 실업팀들의 활동이 활발했으며, 이들은 전국 단위 대회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가령 1921년 [[제1회 전조선축구대회]]에 [[조흥은행 축구단|한성은행]](조흥은행의 전신) 축구팀이 참가한 기록이 있으며, 1922년 [[제2회 전조선축구대회]]에는 평양의 [[주작구락부]]라는 실업팀<ref>[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2021400209203003&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22-02-14&officeId=00020&pageNo=3&printNo=535&publishType=00020]</ref>이 참가한 기록이 있다. 그러나 실업팀에 대한 체계적 운영에 있어서는 서울에서 열린 [[전조선축구대회]]([[대한체육회|조선체육회]] 주최)보다 평양에서 열린 [[전조선축구대회 (관서체육회)|전조선축구대회]]([[관서체육회]] 주최)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1930년 평양에서 열린 제6회 전조선축구대회(관서체육회 주최)에서부터는 실업부가 창설되어 평양 일대의 실업팀들이 참가하게 되었으며, 1942년 마지막 대회에서는 경평실업대항전이라는 부문이 따로 만들어져 평양과 서울의 실업팀 연합이 2경기를 치룬다.<ref>大韓蹴球協會 편 『韓國蹴球百年史』라사라, 1986. p.544-549.</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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