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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소년 생활 == 어렸을 적 유상철은 유난히 허약하고 잔병치레가 많았고, 키도 작고 비쩍 마른 체질이었기에 장차 이 아이가 국가대표 축구선수가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가 초등학교 5학년때 처음 축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축구에 대한 재능이 있었다기 보단 운동을 통해 허약체질을 개선하고 몸이 좋아질 것을 기대한 어머니의 권유 덕분이였다고 했을 정도.. 그렇게 축구를 시작하게 된 유상철은 서울 응암초등학교, 경신중, [[경신고등학교]]를 거치며 축구선수로써 커리어를 쌓아갔다. 하지만 학창 시절 유상철의 작은 키는 계속 발목을 잡았는데.. 이 때문에 경신고 1학년 시절, 당시 경신고 감독이 유선수에게 축구를 그만두라고 권유했을 정도였다. 이 권유가 충격요법으로 작용했던 것인지, 그 해 겨울 축구부 합숙훈련에 합류하는 대신에 두달간 보약을 보충하면서 체력을 키워나가는 것을 선택한 유상철은 그 이후 키가 자라 2년 사이에 신장이 20cm나 성장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경신고 주전으로 도약한 유상철은 눈에 띌 정도로 부각되진 않았으나, 팀플레이에 능했던 덕분에 1990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AFC U-19 챔피언쉽]]에 한국 청소년대표팀 멤버로 발탁되었으며 이 대회에서 한국을 우승으로 이끄는 데 크나큰 활약을 펼치는데 성공하였다. 유선수의 활약을 발판삼아 한국은 1991년 [[20세이하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진출 티켓까지 거머쥐었지만, 아쉽게도 1991년 대회 참가를 위해 [[남북 단일 대표팀]]이 결성되는 바람에, 유상철은 청소년대표팀 엔트리에 들지 못하였다.<ref>당시 북한 청소년대표가 공격진을, 한국 청소년대표가 수비와 골키퍼를 뽑아 대표팀을 구성하였는데, 유상철은 엔트리에서 탈락하였던바 있다.</ref> 아쉬움을 뒤로 한 유상철은 이후 경신고를 거쳐 건국대학교로 진학하였으며 건국대 축구부 에이스로 군림하다 1994시즌을 앞두고 [[현대 호랑이]]에 입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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