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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수 생활 == === 유소년 생활 === 전라남도 화순군 출생으로, 8살때 아버지와 어머니를 여의면서 큰 형에 의지하며 지내다 서울로 상경하였다. 그리고 서울 상경 후 그의 인생에 전환점이 찾아오게 되는데.. 은로초등학교 4학년 우연히 체육대회에 출전하여 달리기 우승을 차지했고, 이를 지켜본 축구부코치가 축구선수가 되기를 권유한 것이다. 서울로 올라와 나쁜친구들과 어울리지 않을까 걱정하던 큰 형도 이기형의 결정에 찬성하였고, 이기형은 축구선수 생활을 시작하였다. 뛰어난 축구실력을 바탕으로 중,고교 모두 체육특기생으로 진학하였고, [[정명고]] 2학년 시절 주니어 대표에 뽑힌 이후로 태극마크는 늘 그의 가슴에 붙어있었다. 이러한 실력을 바탕으로 이기형은 축구명문 [[고려대학교]]에 진학하였고, 95년 애틀란타 올림픽 예선전에서 발군의 기량을 보여주었다. 이에 이기형을 눈여겨보던 신생팀 [[수원 삼성]]은 그에게 계약금 1억 5천만원이라는 당시로써는 거액을 안겨주며<ref> 이기형은 받은 계약금으로 큰 형에게 집을 사드렸다고. </ref> 순탄한 프로생활을 열어주었다. === 수원 삼성 블루윙즈 시절 === [[K리그 드래프트 1996]]에서 올림픽 대표 선수들을 대거 지명하였던 신생팀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창단팀 우선지명 선수로 입단하였다. 입단 첫 해에는 올림픽 대표팀 동기인 [[박충균]] 선수와 경쟁이 예고되기도 하였으나, 저돌적이고 활발한 플레이로 단숨에 [[김호]] 감독이 아끼는 자원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활약은 계속 이어져 1998년과 1999년 수원의 [[K리그]] 2연속 우승의 핵심 멤버로 활약하게 되었고, 2000년 잠시 부상으로 주춤하기도 하였으나, 금세 컨디션을 회복하고 2002년까지 수원 오른쪽 수비를 담당하였다. === 성남 일화 천마 시절 === 수원 창단 멤버로 준수한 활약을 이어온 이 선수는 2002년까지 [[박충균]]ㆍ[[김용희]]ㆍ[[문삼진]] 선수들의 불안정한 로테이션 체제를 이루고 있던 우측 수비 적임자로 [[성남 일화 천마]]에 입단하게 되었다.<ref>수원과 2003년을 끝으로 연봉 재계약 협상이 틀어지면서 새로운 팀을 찾아 나서게 되었고, 여기에 과거 애틀란타 올림픽 트레이너로 연을 맺어본 바 있었던 당시 성남 [[김학범]] 코치에게 먼저 성남 입단을 주선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고 한다.</ref><ref>다만, [[김용희]] 선수와 [[문삼진]] 선수 모두 활약 자체는 준사하였다고 한다. [[김용희]] 선수는 2001년 혜성같이 등장한 측면 수비 신예로 데뷔 시즌인 2001년부터 폭발력 있는 모습을 보여준 바 있고, 1999년 실업 무대를 떠나 성남에 입단한 [[문삼진]] 선수는 무명 신화를 이루며 깔끔하고 안정적인 수비로 기량을 인정받았다. 당시 성남의 수비가 상당히 강했던 것을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불안정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여기에 대표팀 출신인 [[박충균]] 선수가 오히려 더 적은 경기에 출전하고 다른 포지션에서 뛰는 모습이었다고 한다.</ref> 그렇게 프로 입단 후 처음으로 유니폼을 갈아입었고, 활약 또한 이어가 2004년까지 각종 대회에 주전 우측 수비로 활약하며 날카로운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K리그]] 3연패를 끝으로 2004년부터 성남이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여기에 수비가 무너지는 경향이 심해지면서 이 선수의 입지도 다소 애매하게 흘러가고 말았다. === 은퇴까지 활약상 === 이후 시즌 종료와 함께 어린 선수들의 중심을 잡아 줄 베테랑 수급이 시급하다고 여긴 [[FC GS]]의 제의를 받고 성남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이장수]] 감독과 전술적 견해 차이로 출전이 불안정하게 되었고, 점차 전성기에서 내려오는 마당에 당시 GS의 수비 조직력도 그다지 좋지 못했던 관계로 뒷공간을 내주는 일이 잦아지는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이것은 2006년에도 이어져 비교적 GS 수비 조직력이 안정화 된 2006년에는 2005년과 비슷한 경기 수를 출전하였으나, 세간의 평가는 지난 시즌과 비슷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장수]] 감독의 계획에도 이미 제외된 상태였다. 결국, 시즌 종료와 함께 팀을 퇴단하였고, 호주로 떠나 [[현대 A리그]]의 [[웰링턴 피닉스]] 입단을 추진하였으나, 협상 단계에서 좌절되고 말면서 뉴질랜드의 [[오클랜드 시티]]로 전격 이적하였다. 오클랜드 시티에 입단한 이후로 세미 프로였던 뉴질랜드에서 월등한 기량을 자랑하며 노익장을 과시하는 활약으로 정규 주전으로 출전하였으며, 리그 우승이 이바지하고 [[FIFA 클럽 월드컵]]에도 출전하여 도움을 기록하는 등의 활약을 보인 뒤 2010년을 끝으로 현역에서 최종 은퇴하게 되었다. === 플레이 스타일 === 공격형 풀백으로 명성이 높았던 선수였다. 수비적으로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강한 힘을 바탕으로 한 중거리 슈팅과 중거리 프리킥에 특출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캐논슈터''' 1999년 올스타전에서 123km, 2002년 올스타전에서 138km를 기록하며 최고의 캐논슈터상을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기형 선수의 최대 단점은 수비 상황에서 전환 속도가 느리다는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빠른 상대를 만나면 고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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