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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방직 축구단 == [[파일:대구_시민운동장.jpg|썸네일|380픽셀|1970년대 대한방직 대구공장(구, 군시방적/조선방직 대구공장) 및 구 군시방적터에 세워진 [[대구시민운동장]]. 운동장 위로 보이는 공장 건물들이 대한방직 공장이다.]] '''조선방직 축구단'''은 1951년 창단된 실업 축구단이다. 조선방직, 혹은 조방으로 줄여서 불리웠다.<ref>[[1948년 런던 올림픽대표]]였던 [[보성전문]] 출신 [[김규환]]이 1950년 홍콩원정단 대표로 뽑힐 때 조선방직 소속이었다고 기록되어있으나, 그때는 아마추어 선수의 직장 명칭일뿐 조방에 축구단이 존재하던 시기는 아니었다.</ref> 1950년 한국전쟁이 발생한 이후 여기저기로 흩어졌던 축구인들을 규합하고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 참가하는 것이 당시 축구인들의 염원이었는데, 사장 강일매의 결단으로 1951년 창단되었다.<ref>이 때의 공로로 강일매는 [[대한축구협회]] 12대 집행부의 부회장이 될 수 있었다. 역사적으로 강일매는 이승만의 위세를 등에 업고 권력을 전횡한 심복 정도의 평가를 받고 있으나, 축구원로들 사이에서는 계속 축구판이 유지될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존재로 기억된다.</ref> 이에 전쟁 직전까지 대전방직에서 근무하던 [[1948년 런던 올림픽대표]] 출신 [[박대종]] 씨를 중심으로, [[옥정빈]], [[차순옥]], [[이철]], [[최정민]], [[박일갑]] 등 전쟁 중 이북에서 남하한 축구 선수들이 대거 참가하여 팀을 구성하여, '조선방직 대구공장' 팀명으로 제5회 [[전국축구선수권대회]]에 출전, 우승을 차지하였다. 당시 조선방직은 '조선방직 대구공장'과 '(본사의)조선방직' 2팀 모두 출전하여, 나란히 4강에 진출했었다. 본사 조선방직은 4강에서 공군에게 0:2로 패했으며, 결승전에서 대구조방은 공군을 1:0으로 이기면서 우승을 차지한다.<ref>[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1101000329209007&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1-10-10&officeId=00032&pageNo=9&printNo=11087&publishType=00020 30년전의 경향신문 1951년 10월 11~17일] -1981년 10월 10일, [[경향신문]]-</ref> 해당 경기 이후 조선방직 축구단은 대구조방과 1~2명 외에는 선수 구성이 상동하므로 조선방직 축구단은 대구를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여기에 군시방적 공장 원래터에 [[대구시민운동장]]이 지어졌으므로 공장과 연습장이 가까워 선수단을 관리하기 편했고 대구공장의 책임자도 [[손기정]]이었으므로 여러므로 부산보다 축구단 운영이 편리했을 것이다. 1952년 이후에는 조선방직팀이란 명칭으로 참가하며 1950년대 초중반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를 비롯해 각종 축구대회에서 우승을 다투었으나, 1955년 조선방직 대구공장이 대한방직 사장인 설경동 씨에게 불하되고 대구 대한방직 파업 등의 혼란기를 거치며, 축구단은 해체된 것으로 여겨진다.<ref>설경동 씨가 공장을 인수 한 이후 대구공장에 근무하던 2600명을 월급 1달치를 지급하면서 해고하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만 재고용하였으며, 남은 900명의 직원들은 고강도의 노동에 시달렸으므로 처우 개선과 복직을 요구하는 대구 대한방직 쟁의가 일어났다. 이에 관한 파업과 소송은 1960년 4.19 이후에나 해결되었으므로 축구단을 꾸려나갈 형편은 아니었던 셈.</ref> 1956년 도시대항 축구대회에서는 조선방직팀이 [[안성]]대표로 출전을 하거나, [[연세대]]와의 친선경기를 펼치기도 했다는 기사가 있지만 공식적인 출장은 1955년 [[전국선수권대회]]의 출장이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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