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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수 생활 == === 유소년 생활 === 인천 [[부평고등학교]] 시절인 1999년, [[박용호]], [[이천수]] 선수와 함께 '''부평고 트리오'''로 불리었다. 당대 부평고 트리오의 위상은 전국고교무대를 일찌감치 평정하고 탈고교급으로 평가받았는데, 이게 어느정도였냐면 부평고 트리오를 [[고려대학교]]로 스카우트하기위해 고려대 1,2학년 축구부 선수들이 부평고와 친선매치를 치룰 지경이었다. 선수 스카우트를 위해 고교졸업 선수를 대학교로 불러서 연습경기를 하는것은 더러있어도, 고교선수를 스카우트 하기위해 대학 선수들이 고등학교를 찾아간 사례는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 안양 LG 치타스 시절 === 고려대학교의 뜨거운 구애(?)에도 불구하고, 부평고 트리오 중 최태욱과 [[박용호]] 선수는 [[안양 LG 치타스]]에 입단해 고졸 프로선수의 길을 택했다. 입단 조건은 계약금 2억, 연봉 2천만원에 4년 계약의 조건이었다. 안양 입단 후 소속팀과 올림픽대표팀, 국가대표팀에서 바쁜 행보를 이어가던 최선수는, 2003시즌 한 시즌 최다 출장 및 3골 5도움을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 시즌을 찍는데 까지 성공하였다. 이미 2002년 FIFA 한일 월드컵 4강 달성으로 군면제 혜택까지 받았던 상황. 최선수의 가치는 시간이 갈수록 치솟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2004년 K리그 창단 구단이었던 [[인천 유나이티드]]는 인천 지역 출신인 최선수의 영입을 시도, 무려 '''11억원'''이라는 거액의 이적료를 안양에 지불하며, 인천의 창단 멤버로 최태욱 선수를 영입하는데 성공하였다. === 인천 시절과 J리그 생활 === 인천에서 5골 3도움을 기록하며 [[마니치]]에 이어 팀 내 득점 2위에 랭크된 최선수는, 04시즌 종료를 앞두고 해외진출을 추진하였고 2005년 1월, [[시미즈 S.펄스]]로 이적하는데 성공하였다. 이적료만 1억 5000만엔 (당시 한화로 약 16억 5,000만원), 연봉 5,000만엔, 2년 계약의 호조건이었다. 시미즈로 이적해서는 [[조재진]]과 함께 공격진에서 활약하며 J리그에서 25경기 출장 6골, 나비스코 컵 6경기에서 3골, 일왕배 4경기에서 1골 등의 성적을 올렸으나, 시즌 종료 후 국내 복귀를 선언, [[울산 현대]]와 [[포항 스틸러스]]의 줄다리기 끝에 2006년 2월, 포항 스틸러스 유니폼을 입기에 이른다.<ref>본래 인천에서 시미즈로 이적할 당시, 국내 복귀 시에는 무조건 인천으로 돌아온다는 계약 조항이 있었기 때문에, 포항은 거액의 이적료를 시미즈와 인천 양쪽에 지불했다는 후문이 돌았다. 그만큼 포항이 최태욱 선수에게 거는 기대는 대단했다.</ref> === 포항과 전북 시절 === 2006년 포항에 입단하였지만, 당시 [[3-4-1-2]] 포지션을 사용하던 포항에서는 최태욱 선수에게 맞는 자리가 없었다. 결국 자신이 원치않는 포지션이었던 윙백 역할을 요구받으면서 최선수의 위상은 점점 추락해갔고, 2007년 [[플레이오프]] 때는 벤치에도 거의 앉지 못하는 수모를 겪었다. 결국 07시즌이 끝난 후, 2:2 트레이드로 [[전북 현대 모터스]]로 이적하게 된다. * '''[[김성근]] + 최태욱 ([[포항 스틸러스]]) ↔ [[권집]] + [[김정겸]] ([[전북 현대 모터스]])''' 전북으로 이적한 후에도, 최 선수는 한동안 슬럼프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윙백 신세는 벗어났지만, [[최강희]] 감독 역시 최 선수에게 적극적인 수비가담과 투쟁심을 요구했고, 좀처럼 나아지지 않자 2군으로 밀려나기도 했다. 하지만 감독의 조련과 선수의 노력이 후반기부터 빛을 발하면서 완벽하게 부활, 이듬해인 2009년에는 [[이동국]], [[루이스2]], [[에닝요]]와 함께 "F4"를 구축하며 전북의 우승을 이끌었다. === 은퇴 시기까지 === 2010년 시즌 중에 GS로 이적, 이후 2014시즌을 앞두고 울산 현대의 [[김동석]] 선수와 1:1 트레이드 되며 울산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 '''최태욱 ([[FC GS]]) ↔ [[김동석]] ([[울산 현대]])''' 울산 입단 후 ACL 2경기와 리그 1경기를 소화한 최선수는, 2014년 3월 훈련 도중 오른쪽 무릎 연골 손상으로 시즌 아웃 판정을 받았고 이후 적지 않은 나이를 고려해 2014년 5월 15일 선수 생활 은퇴를 선언하였다. 이후로는 울산 현대 유소년 스카우터로 활동한다고 한다. === 국가대표 생활 === [[올림픽대표]]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과 [[2004년 아테네 올림픽]], 2차례 연속 본선 멤버에 뽑혔던 선수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 예비 엔트리 구성 당시에는 고교생 출신으로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활약해 주변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하였다. 이후 2000년 4월 7일, [[아시안컵]] 예선전 對 [[몽골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를 출장하며 [[A매치]] 데뷔전을 치루었으며, [[2002년 FIFA 월드컵]]에 최종 엔트리에 포함되어 [[터키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3.4위전 후반전에 교체 투입으로 출장하며 월드컵 4강 공헌을 인정받아 병역 면제 혜택을 받았다. 이후 한동안 국가대표와 연을 잇지 못하다가 2005년 [[동아시아 축구대회]]에서 잠시 활약하였으며, [[2006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예선 당시에도 잠시 발탁되었으나 월드컵 본선 최종 엔트리에는 들지 못했던바 있다. 2009년 5월에는 4년여만에 대표팀에 복귀하기도 하는등, 건재함을 과시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2000년대 초반의 입지를 되찾지는 못했다. === 플레이 스타일 === 100미터를 11초대에 주파하는 빠른 발이 장점. 다만 내성적인 성격 탓에 몸싸움을 꺼리고 투쟁심이 부족하다는 평을 받아왔다. 전북에서 이루어낸 부활은 이러한 소극적인 플레이스타일을 <del>드디어</del> 고쳐낸 결과라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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