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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 == 1983년부터 1985년까지는 실업 축구팀과 프로 축구팀이 모두 참가하는 혼합 리그 형국을 계속 유지했고, 리그 명칭도 한국프로축구리그가 아닌, [[수퍼리그]], [[축구대제전]] 등으로 불리우며 그 정체성을 제대로 정립하지 못하는 과도기적 상태가 지속되었다. 이처럼 불안정한 초기 프로축구리그의 형국을 타개할 필요성은 지속적으로 제기되었으나, 수퍼리그에 억지춘양으로 참가를 강요받은데다, 수퍼리그 출범 이후, 실업축구대회의 쇠퇴와 실업팀들의 잇단 해체로 인한 한국실업축구연맹의 상대적 박탈감<ref>1983년 리그 시작 이후, 실업축구대회 평균 관중은 1/5 이하로 격감했고, [[외환은행 축구단]],[[조흥은행 축구단]]등 금융권 팀들이 잇달아 실업팀 해체를 선언했다.</ref>과 프로축구단의 운영 주체인 대기업 (유공, 대우, 현대, 포항제철) 수뇌부 간의 의견 조율 등에 해결점으로 도출하지 못한채 표류하였다. 이후 [[1986년 프로축구선수권]]대회를 거쳐 1987년부터는 프로 축구팀만이 참가하는 대한민국 유일의 프로 축구 리그로서 입지를 다졌고,<ref>1987년 리그부터 [[수퍼리그]]나 [[축구대제전]]이 아닌 '''한국프로축구대회'''라는 리그명을 사용한다.</ref> 실업축구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게된다. 우여곡절 끝에 아시아 유일의 프로축구리그로서의 방향성을 다잡는데는 성공했지만 이와는 별도로, 갈수록 리그의 인기는 격감하고 있었다. 이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 [[1988년 서울 올림픽]] 등 메이져대회 본선에 잇달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출전한데 기인한 바가 컸다. 1985년부터 1988년까지 4년 가까운 시간동안 국가대표 선수들이 리그의 대부분 경기를 소화하지 못한채, 대표팀에서 합숙훈련을 하는 상황이 계속됨에 따라, 프로축구는 국가대표에 뽑히지 않은 2군 선수들이 뛰는 무대로 전락했고, 당연히도 리그의 인기에도 치명타를 입었다. 특히 1986년 리그는 [[포항제철 아톰즈]]를 제외한 4개 팀의 평균관중이 1천명 미만인 극악의 흥행 실패를 기록하며 프로축구리그의 자생성에 대한 회의적인 전망이 잇달았다.<ref>1986년 시즌은 [[포항제철 아톰즈]]만이 평균 관중 1만명대를 유지하며 흥행 몰이를 했고, 그 덕분인지 그 해 리그 우승은 포항제철이었다.</ref> 여기에 [[김종부 스카우트 파동]] 등, 리그 전체의 위신을 손상케하는 대기업 구단들의 전횡과 이를 막지못하는 연맹의 무능 등이 겹치며 1980년대 K리그는 1983년 초대 시즌의 화려한 출발을 제외하고는 전 기간동안 최악으로 치달으며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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