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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리그 == === 대구 입단 과정 === 벨마레에서 활약하던 2003년에도 한국 청소년대표에 잠깐 차출되었으나, 같은 이유로 고배를 마신 적이 있는 김근철이었다. 그리고 몸값도 지나치게 높아 [[K리그]] 클럽들은 그를 외면했다. 그런 그를 영입할 의사를 비친 곳은 [[박종환]]의 [[대구 FC]]였고, 경쟁자가 없는 상황에서 김근철을 영입하며 중원을 보강하는 데 성공했다. 계약기간은 1년. === 대구 시절 === 우여곡절 끝에 대구에 입단한 김선수를, 몇번 기용해 본 [[박종환]] 당시 대구 FC 감독의 평가는 냉정했다. 인용하자면, {{인용문2 | 근철이 같은 경우는 볼을 잘 차. 그런데 본인이 들으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순발력과 수비력이 부족해. 또 볼을 논스톱으로 처리할 때 해야하고, 1:1 할 때 해야하고, 2:1 패스를 통해 돌파할 때 해야하는 것이 축구인데, 그게 적응이 안 됐어. 혼자 축구를 하려는 경향이 많기 때문에 아직까지 우리 팀에 적응이 안 됐지. 그거 고치려면 힘들어. 본인도 힘들어 하고 있고. 그렇지만 내가 원하는 축구, 아니 한국축구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빨리 고쳐야 해. 감각은 분명히 있는 애거든.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미드필더로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항상 근철이한테 강조하고 있는데, 본인도 노력하고 있어.}} 플레이메이커 성향이 강했고 스스로 공간을 뚫어내기엔 몸싸움이나 스피드가 부족했던, 현대 축구의 흐름과 상반되는 능력의 불균형이 김근철 선수의 최대의 약점이었다는 것이다. [[박종환]] 감독은 핵심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고 김근철 선수에게 공격형 미드필더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의 전환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런 포지션 전환은 한두달의 훈련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김근철 선수의 경우는 전술 훈련에 강도 높은 체력훈련까지 병행해야 했다. 하지만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새로운 역할을 소화하기는 쉽지 않았다. 대구가 보기에 김근철은 역할 변경도 지지부진하고, 만족스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반면 몸값이 너무 높았던 선수였다. 결국 대구는 김근철을 방출하기로 결정하였다. === 경남 시절 === 대구를 떠난 김근철은 2006년 창단한 [[경남 FC]]에 입단했다. [[박항서]] 당시 경남 감독 역시 김근철 선수의 약점을 보완하는데 주안점을 두었으나, 박종환 감독과는 달리 스피드보다는 기술을 향상할 것을 주문했다. 드리블과 개인기를 중점적으로 훈련하면서 자신의 스타일을 찾게 된 김근철은 무서운 속도로 기량을 끌어올렸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0027615 (OSEN - 박영태 기자) 박항서, "김근철이 기대 이상으로 성장했다" ]</ref> 기량 향상은 그대로 출장기록 증가와 개인 기록 향상으로 이어졌고, 2007 시즌에는 대구 시절 그렇게 소화하지 못하던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도 완벽하게 수행해 내며 경남 중원의 핵심 선수로 자리잡았다. 특히 [[김효일]]과의 중원 장악 능력은 리그 최상급으로 평가받았으며 중앙에서의 조직력 극대화는 팀 성적 향상으로 이어져, [[경남 FC]]의 팀 창단 최고 성적인 리그 4위를 이끌었다. <ref>다만 6강 플레이오프 첫 경기 상대인 [[포항 스틸러스]]와의 경기에서 연장 접전에도 승부가 나지않아 승부차기 키커로 나섰는데, 이때 뼈아픈 실축을 하였다. 이 때 경남을 잡은 5위 포항은 플레이오프에서 승승장구하여 당해시즌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다.</ref> [[조광래]] 감독이 부임한 이후에도 김근철에 대한 신뢰는 변함이 없었다. 기존에 김근철의 파트너로 활약한 김효일을 공격형 미드필더로 올리며 전방 압박에 중점을 두고, 스토퍼 [[이상홍]]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끌어올려 김근철을 보조할 볼 위닝 미드필더 역할을 맡겨 김근철이 자유롭게 공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던 것. 그에 힘입은 김근철은 2008시즌에도 [[하나은행 FA컵]] 준우승을 이끌며 팀을 이끌어가는 존재임을 증명했다. 이처럼 경남에서 3년동안 꾸준한 활약을 펼쳐온 그에게 2009시즌은 악몽이었다. 시즌 준비 기간까지만 해도 당연히 중앙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남은 자리를 놓고 [[이용래]], [[노용훈]] 등이 경쟁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예기치 않은 부상으로 시즌아웃이 되면서 김근철 선수의 입지는 빠르게 좁아져갔던 것. 특히 그의 공백을 [[이용래]], [[안상현]] 선수가 훌륭하게 메워주면서 김근철 선수의 가치는 격감하고 말았다. 결국 주전 경쟁에서 밀린 김근철 선수는 자유계약 대상자로 팀을 떠나고 말았다. === 부산 시절 === [[부산 아이파크]]는 김근철 선수가 자유계약으로 풀렸다는 소식을 제일 먼저 접한뒤 곧바로 영입을 시도, 그를 클럽하우스로 불러들였다. 부산 입단 후 [[유호준]]과 함께 부산의 중원을 완벽하게 바꾸어 놓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후반기에 들어가면서 체력고갈로 시즌 소화에 애를 먹었다. 2011년 [[안익수]] 감독 부임 이후에는 [[유호준]], [[박희도]] 등과 함께 2군행 지시를 받아 충격을 주었다. 유호준이 몸을 끌어올리고, 박희도 역시 출장을 이어가며 군입대를 준비하는 와중에 김근철은 부상으로 통 모습을 드러내지 못 한데다 2군에서도 그다지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안익수의 계획에서 완전히 제외되었다. 시즌이 종료된 2011년 11월 [[김형필]]과 트레이드되어 [[전남 드래곤즈]]로 이적하였다. * '''김근철 ([[부산 아이파크]]) ↔ [[김형필]] ([[전남 드래곤즈]])''' === 부산 이후 === 당시 전남을 이끌던 [[정해성]]은 김근철에게 전진형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맡기며 전남 미드필더진에 힘을 불어넣어 줄 것이라 기대했으나 김선수의 활약은 미비했다. 결국 정해성 감독은 2012시즌 도중 전남 감독직을 사임하고 말았고, 뒤를 이어 부임한 [[하석주]] 감독은 김근철 선수를 기용하지 않았다. 결국 2012시즌 종료 뒤 전남은 김근철 선수와 계약 해지를 단행하였고, 이후 김선수는 팀을 물색하다 중국 2부리그 팀인 선양 센베이에 입단하면서 K리그 생활을 정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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