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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와 1950년대 대한축구협회의 활동 === 대한축구협회가 1948년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1942년 전후로 자행된 일제의 문화말살정책으로 인해 선수 육성이 단절되어 세대교체가 이루어지질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에 1949년 전국학도호국단체육대회, 전국중등학교축구선수권대회 등을 개최하며 선수 육성에 매진하던 대한축구협회였으나... 1950년 6월 25일 6.25 남침소식이 들려왔다. 그야말로 여우를 피한다싶었더니 호랑이가 달려든격. 6.25는 사회 전분야의 파국적 결과를 초래했으며, 이는 축구도 피할수 없었다. 축구 선수들은 군인 신분으로 전장에 투입되었고, 축구협회 임원들 중 상당수가 자진 월북 내지 납북되어 남한 축구계에서 사라졌으며, 여기에 [[인천 조일양조]] 등 실업팀들도 모두 해체되었다. 그야말로 광복 이후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축구기반이 뿌리까지 다 뽑힌셈이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6.25로 얻은것(?)도 있었으니 이북에서 전란통에 월남한 축구선수들이 그들. [[최정민]], [[박일갑]], [[차순옥]], [[임병순]], [[임성우]] 등은 이후 195,60년대 한국축구의 근간을 다지는데 활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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