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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피소드 == * '''축구 경기 도중 조선방직이 승리하자 열받은 김창룡이 조선방직 책임자를 끌고 갔는데 그 사람이 손기정이었다.'''라는 에피소드가 전설처럼 전해진다. 당시의 기사는 없고 이후 추억하는 내용만 있어 정확한 팩트를 알기 어려우나 아래 두 기사를 비교해 보자. 1951년도에는 특무대가 금방 창단해 4강에도 간적이 없으므로 무리수. 1953년도에는 병참단이 우승을 차지해 무산되지 않았으므로, 무산된 대회인 1952년의 얘기라고 추정. 두 기사를 읽고 판단하시길.. {{인용문2|1951년 [[전국축구선수권대회]]에서 대구방직팀이 우승을 차지하자 [[특무대]] 김창룡의 심사가 뒤틀렸다. 그래서 부하를 시켜 대구방적 책임자를 끌고 왔는데 다름아닌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손기정]]이었다. 뒤늦게 그를 알아본 군인들이 사과를 하며 끝났지만 손기정이 아니었다면 ㅎㄷㄷ.<ref>[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weekly/2004/11/10/200411100500035/200411100500035_1.html 특무대에 잡혀간 손기정外] -신동아, 2002년 1월 31일 (320호)- </ref>}} {{인용문2|1953년 대구에서 열린 [[전국축구선수권대회]] [[CIC]]와 조방의 준결승전에서 제비뽑기로 조방이 승리하자 열받은 김창룡이 지프차를 타고 운동장으로 들어가 조방응원단 모조리 잡아들이라고 호통치자 공포를 쏘면서 운동장이 순간 아수라장으로 돌변, 축협간부들은 숨고, 주심 배종호는 진해로 도망가서 대회 자체가 무산되고, 손기정은 특무대에 잡혀갔다가 특무대 코치 [[민병대]]의 주선으로 풀려나고 이 때의 인연으로 CIC육상부를 창설했다.<ref>[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6022700329206013&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6-02-27&officeId=00032&pageNo=6&printNo=9359&publishType=00020 진기록 진경기 (12) "패배는 곧 죽음"] -경향신문, 1976년 2월 27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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