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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피소드 == * 박태하 선수는 1990년대 초반에 프로 생활을 시작했는데, 당대는 '프로축구 인기 = 국가대표 인기' 였고, K리그 이외에 여타 대회 ([[아시안클럽챔피언십]] 이라던가..)에 대한 관심이 바닥을 치던 시기 중 하나였다. 때문에 박태하 선수와 포항이 전성기를 구가했던 1990년대 중반에는 성적도 잘나오고 아시안클럽컵 2연패까지 일구어냈음에도 대중의 관심을 받지못했다. 나중에 박태하 선수가 은퇴할 시점 즈음에 이르러서야 아시아대회에 대한 관심이 부쩍 증가하자, 박선수는 지금 필드에 뛰면 더 행복했을 것이라는 의미의 인터뷰를 남기기도 했다. 이러한 배경 덕분인지, 박태하 선수의 팀에 대한 충성심 + 팬에 대한 충성심은 타의 모범이 될정도로 확고하며, 최근 축구선수들이 자신들의 인기를 당연시하는 세태나 거만해지는 세태에 대해 누구보다 안타까워하는 사람 중 한명이기도 하다. * 프로 데뷔 초기부터 17번만을 달고 뛰었다. 1998년 포항이 [[신세기통신]]의 후원을 받을때 박태하가 17번이었기 때문에 파워디지털 017의 광고모델이 되기도 하였다. * 국가대표에도 11경기에 나서 7골을 넣는등 A매치에서도 탁월한 기량을 과시하였으나, 유독 큰 대회를 앞두고 부상을 당해 국가대표와는 좋은 인연을 맺지못했다. 특히 [[1994년 미국 월드컵]]과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본선 엔트리에 부상으로 낙마한건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듯. * 1999년 7월 팀성적이 부진하던 포항을 이끌던 박태하는 포항의 주장으로서 책임을 지고 삭발을 단행했던바 있다. 박태하 선수가 삭발을 감행한 후 팀은 7경기 무패 (5승 2무)를 기록하며 상승세를 탔고, 삭발 효과(?)를 목격한 각 팀 주장들이 너도나도 삭발을 해 삭발 전성시대(??)를 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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