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1년 5월22일 13명의 선수로 창단한 체육선교신학교 여자축구단은 1991년 11월6일 전국남녀 춘계 대학축구연맹전에서 창단5개월여만에 우승을 차지하며 주목을 받았지만 1992년 이 학교가 무인가 대학으로 밝혀지면서 <ref> <small>무인가 학교 23곳 조사착수[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022200289114001&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2-02-22&officeId=00028&pageNo=14&printNo=1164&publishType=00010]</small></ref>각종 축구대회에 참가조차 할 수 없게 된다. 각종 친선경기와 연습경기만으로 팀을 운영해야만 했고, 나중엔 홍석열 감독의 사재로 운영을 해왔으나 결국 선수단 스스로 회비를 걷어 식사를 해결해야하는 상황까지 오고 말았다. 힘들게 운동에 전념하던 홍석열 감독과 선수단은 이랜드 푸마 축구단의 [[이영무]] 감독의 도움으로 1994년 4월에 개설한 낫소의 어린이 축구교실의 지도를 맡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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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1년 5월22일 13명의 선수로 창단한 체육선교신학교 여자축구단은 1991년 11월6일 전국남녀 춘계 대학축구연맹전에서 창단5개월여만에 우승을 차지하며 주목을 받았지만 이 학교가 무인가 대학으로 밝혀지면서 <ref> <small>무인가 학교 23곳 조사착수[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022200289114001&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2-02-22&officeId=00028&pageNo=14&printNo=1164&publishType=00010]</small></ref> 1994년을 마지막으로 공식 축구대회에 참가조차 할 수 없게 된다. 각종 친선경기와 연습경기만으로 팀을 운영해야만 했고, 나중엔 홍석열 감독의 사재로 운영을 해왔으나 결국 선수단 스스로 회비를 걷어 식사를 해결해야하는 상황까지 오고 말았다. 힘들게 운동에 전념하던 홍석열 감독과 선수단은 이랜드 푸마 축구단의 [[이영무]] 감독의 도움으로 1994년 4월에 개설한 낫소의 어린이 축구교실의 지도를 맡게된다.
=== 낫소 선교단 ===
=== 낫소 선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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낫소는 체육선교신학교 여자축구단의 사정을 알게되면서 경영난에도 불구하고 1994년 10월 선수단을 돕기로 한다. 낫소의 기숙사로 사용하던 건물을 보수해 숙식을 제공하였고, 낫소의 본사가 있는 부천시로부터 공설운동장과 학교를 연습장소로 사용 할 수 있도록 협조를 구했다. 낫소의 도움으로 소속도 가지게 되면서 '''낫소 선교단'''이라는 이름으로 95년부터 대회에 참가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낫소도 어려운 상황이었고 정식적인 인수가 아니었기에<ref> 월간축구 94년 10월호에 실린 낫소측의 인터뷰에는 '''회사의 재기를 위해 전념하고 있을뿐 여력은 없습니다.지금 당장 팀창단은 현실적으로 힘든일이죠. 다만 지역내 생활체육활성화를 위한 노력과 어려운 환경에 처한 체육선교신학교축구단을 힘닿는데까지 돕고 있을뿐입니다.''''''실업팀 하나없이 침체되어 있는 한국여자축구계에 낫소가 팀을 구성한다고 하더라도 여왕기대회 이외에는 출전할 대회가 없는 형편이어서 활성화를 꾀하기도 힘든상태'''라며 다소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였고 이어서'''오갈데 없는 선수들에게 숙식을 해결해주고 모든 직원들과 가족처럼 함께 더불어 살수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시각으로 해석해달라'''고 답해 선을 긋는다.</ref> 숙식,용품,행정적 지원은 받을 수 있었지만 급여는 받지못하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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낫소는 체육선교신학교 여자축구단의 사정을 알게되면서 경영난에도 불구하고 1994년 10월 선수단을 돕기로 한다. 낫소의 기숙사로 사용하던 건물을 보수해 숙식을 제공하였고, 낫소의 본사가 있는 부천시로부터 공설운동장과 학교를 연습장소로 사용 할 수 있도록 협조를 구했다. 낫소의 도움으로 소속도 가지게 되면서 '''낫소 선교단'''이라는 이름으로 95년부터 대회에 참가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낫소도 어려운 상황이었고 정식적인 인수가 아니었기에<ref> 월간축구 94년 10월호에 실린 낫소측의 인터뷰에는 '''회사의 재기를 위해 전념하고 있을뿐 여력은 없습니다.지금 당장 팀창단은 현실적으로 힘든일이죠. 다만 지역내 생활체육활성화를 위한 노력과 어려운 환경에 처한 체육선교신학교축구단을 힘닿는데까지 돕고 있을뿐입니다.''' '''실업팀 하나없이 침체되어 있는 한국여자축구계에 낫소가 팀을 구성한다고 하더라도 여왕기대회 이외에는 출전할 대회가 없는 형편이어서 활성화를 꾀하기도 힘든상태'''라며 다소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였고 이어서 '''오갈데 없는 선수들에게 숙식을 해결해주고 모든 직원들과 가족처럼 함께 더불어 살수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시각으로 해석해달라'''고 답해 선을 긋는다.</ref> 숙식,용품,행정적 지원은 받을 수 있었지만 급여는 받지못하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