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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FC 아시안컵 19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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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진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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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10월 14일, [[효창운동장]]에서 대한민국 vs 월남의 경기를 시작으로 리그전이 진행되었다. 당시 한국은 월남, 중화민국 등에는 어느 정도 자신감을 내비쳤지만, 이스라엘은 다소 낯선 상대로 간주하고<ref>물론 이 경기 이전에도 한국 대표팀이 [[AFC 아시안컵 1956|1회 아시안컵]]에서 이스라엘을 2:1로 이긴 경험이 있긴 했다. 아예 모르는 상대는 아니었던 셈.</ref> 이들과 우승을 다툴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때문에 월남을 상대로는, [[최정민]], [[우상권]], [[문정식]], [[조윤옥]](2골) 선수들의 골세례로 5:1의 손쉬운 승리를 거둔 뒤, 이어지는 이스라엘과의 경기를 사실상의 결승전으로 상정하고 준비하였는데.. 문제는 이러한 생각을 당시 첫번째 국제대회 개최로 관심이 고조되었던 서울 시민들도 마찬가지로 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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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10월 17일, 대한민국 vs 이스라엘의 경기에는 3만 가까운 관중이 몰려왔다.<ref>[[효창운동장]]은 최대 수용인원이 1만 8천에 불과한 구장이다.</ref> 이에 스탠드는 물론 경기장 내 육상 트랙까지 관중이 몰려와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심지어 몰려드는 인파를 못이겨 정문이 부서지고 스코어 보드 쪽 담장이 붕괴해 부상자가 발생하기도 하는 등 경기장 분위기가 지나치게 과열되어 있었다. 간신히 관중들을 라인 밖으로 밀어내고 경기를 개시하긴 했는데, 이스라엘 선수들은 이러한 홈 어드벤테이지에 기가 질려 경기를 제대로 진행하질 못했고, 결국 [[조윤옥]](2골), [[우상권]]로 이스라엘 마저 3:0으로 제압하는데 성공하였다.<ref>월간축구 1981년 11월자를 보면, 최정민 씨는 이스라엘에서의 경기 득점자를 조윤옥과 우상권이 아닌, 자신이 2골을 넣고 [[김동근]] 선수가 1골을 넣은 것으로 잘못 서술하고 있다. 아무래도 오래전 일이라서 기억에 혼선이 있었던듯..</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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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3차전 중화민국과의 경기는 아시안컵 바로 직전에 있었던, [[1960년 로마 올림픽]] 아시아예선 몰수패의 설욕전 성격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ref>중화민국과의 경기 도중, 한국 선수단이 주심에게 강하게 항의를 퍼부었고 관중 난입 등 소요가 일어나자 주심이 몰수패를 선언해 결국 한국이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한 사건을 말한다. 자세한 내용은 [[1960년 로마 올림픽]] 문서 참고</ref> 한국 선수들이 집중력을 가지고 쉼없이 공격을 퍼부었고, 결국 전반 종료를 앞두고 터진 [[문정식]] 선수의 결승골에 힘입어 1:0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해당 경기를 끝으로, 한국은 3전 전승으로 동대회를 우승으로 마무리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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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진행 =
 
= 경기 진행 =
 
한국 대표팀은 동부 최종예선을 대만에서 1956년 9월 2일에 마치고,<ref>즉 본선 대회 일정이 시작된 뒤에, 예선 일정이 마무리 되었던 것이다.</ref> 바로 당일 홍콩으로 배편을 통해 출발, 9월 5일에야 홍콩에 입국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홍콩과의 본선 1차전 경기가 바로 다음날인 6일에 있었던 것. 사전 준비나 적응도 없이 곧바로 진행된 경기에서 한국 대표팀은 전반 2골을 실점하며 0:2로 끌려가다가, 후반 [[김지성]]ㆍ[[최광석]]의 연속골로 간신히 2:2 무승부를 기록하며 1차전을 마쳤다. 이후 곧바로 2일 뒤 열린 이스라엘과의 2차전에서는 한국 대표팀은 체력을 회복하여 시종일관 우세한 경기력을 펼쳐보인 끝에 [[우상권]]ㆍ[[성낙운]]의 골로 2:1 승리를 거두게 된다.<ref>특히 2차전은 후반 10분 경, [[차태성]] 선수가 퇴장당한 상황에서 일구어낸 승리라 더욱 의미가 남달랐다.</ref> 마지막 3차전에서는 월남을 상대로 [[우상권]](2골)ㆍ[[최정민]](2골)ㆍ[[성낙운]]의 소나기 골이 터지며 5:3 승리를 거두어 결국 2승 1무의 성적으로 대회 초대 우승컵을 드는데 성공하였다.
 
한국 대표팀은 동부 최종예선을 대만에서 1956년 9월 2일에 마치고,<ref>즉 본선 대회 일정이 시작된 뒤에, 예선 일정이 마무리 되었던 것이다.</ref> 바로 당일 홍콩으로 배편을 통해 출발, 9월 5일에야 홍콩에 입국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홍콩과의 본선 1차전 경기가 바로 다음날인 6일에 있었던 것. 사전 준비나 적응도 없이 곧바로 진행된 경기에서 한국 대표팀은 전반 2골을 실점하며 0:2로 끌려가다가, 후반 [[김지성]]ㆍ[[최광석]]의 연속골로 간신히 2:2 무승부를 기록하며 1차전을 마쳤다. 이후 곧바로 2일 뒤 열린 이스라엘과의 2차전에서는 한국 대표팀은 체력을 회복하여 시종일관 우세한 경기력을 펼쳐보인 끝에 [[우상권]]ㆍ[[성낙운]]의 골로 2:1 승리를 거두게 된다.<ref>특히 2차전은 후반 10분 경, [[차태성]] 선수가 퇴장당한 상황에서 일구어낸 승리라 더욱 의미가 남달랐다.</ref> 마지막 3차전에서는 월남을 상대로 [[우상권]](2골)ㆍ[[최정민]](2골)ㆍ[[성낙운]]의 소나기 골이 터지며 5:3 승리를 거두어 결국 2승 1무의 성적으로 대회 초대 우승컵을 드는데 성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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