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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신문선.jpg|250픽셀|섬네일|유공 시절의 신문선]]
[[File:신문선.jpg|250픽셀|섬네일|유공 시절의 신문선]]
'''신문선'''(1958년 3월 11일 ~)은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선수이자 축구인<ref>해설가,행정가 그리고 교육자이기도 하다.</ref>으로 1983년부터 1985년까지 [[K리그]]에서 공격수로 활동하였다.
'''신문선'''(1958년 3월 11일 ~)은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 선수이자 축구인<ref>해설가, 행정가 그리고 교육자이기도 하다.</ref>으로 1983년부터 1985년까지 [[K리그]]에서 공격수로 활동하였다.
* 출생일 : 1958년 3월 11일
* 출생일 : 1958년 3월 11일
* 유스클럽 : [[서울체고]] → [[서울대학교]] 졸업
* 유스클럽 : [[연세대학교]] 졸업
* 신체 : 172cm / 64kg (선수 시절)
* 신체 : 173cm / 67kg (선수 시절)
* 포지션 : [[포워드]]
* 포지션 : [[포워드]]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등번호]] : 14번<ref>[[유공 코끼리]] 시절 등번호 이다.</ref>
* [[등번호]] : 18번<ref>[[유공 코끼리]] 시절 등번호 이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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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팀 !! 연도 !! 출장 !! 교체 !! 득점 !! 도움 !! 경고 !! 퇴장 !! 자책
!소속팀 !! 연도 !! 출장 !! 교체 !! 득점 !! 도움 !! 경고 !! 퇴장 !! 자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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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span=3| [[유공 코끼리]] || 1983 ||15 ||5|| 1||1 ||2||0||0
|rowspan=3| {{팀|유공}} || 1983 ||15 ||5|| 1||1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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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28 ||2|| 2||1 ||0||0||0
|1984 ||28 ||2|| 2||1 ||0||0||0
== K리그 입단이전 ==
== K리그 입단 이전 ==
[[연세대학교]]를 졸업한뒤 1981년 [[대우축구단]]에 입단하고 그해 7월부터 [[충의]]에서 복무했다.
[[서울체고]], [[연세대학교]]를 졸업한 선수로 연세대 시절부터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충무 국가대표팀]]에 발탁<ref>여담으로 당시 신문선 씨와 함께 충무 국가대표팀에 발탁된 대학 선수로는, [[김용해]]ㆍ[[박항서]] 등이 있었다.</ref> 될 정도로 좋은 기량을 자랑하는 선수였다. 연세대 졸업 후인 1981년 [[대우축구단]]에 입단하였으며, 그해 7월부터 [[충의]]에서 군복무를 했다.
== K리그 ==
== K리그 ==
전역 후 1983년, 프로팀 유공 코끼리 축구단의 창단 맴버로 입단하면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학업을 위해 1985시즌을 끝으로 은퇴 <del>[[이용수|어! 이거 어디서 많이 본건데??]]</del>의 길을 선택한다.<ref>신씨는 연대 시절부터 공부와 운동을 병행해 왔다고 한다. 운동 선수는 무식하다는 편견이 싫어서 공부를 더 열심히 했다고 하며, 학과 수업을 꼬박꼬박 다 듣고 연습 시간에 참가하는 통에 축구부 선배들과 트러블이 있었을 정도였다고 한다.</ref>
== 해설 스타일 ==
== 해설 스타일 ==
오랜 시간 해설을 했지만 신문선씨의 해설이 본격적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게된 건,[[98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이 결정적이었다. 초반엔 MBC가 독점 중계를 했고 [[송재익]] 캐스터와 함께 현장감있고, 경기의 흥을 돋우며 재미있게 해설을 하면서 많은 사랑을 받게되었던 것. 이 덕분에 당시 MBC의 [[98 프랑스 월드컵]] 시청률은 방송 3사 중 최고였다.<ref>신문선 해설위원의 인기가 어느정도 였냐면 이후 쇼핑사이트, 의약품, 라면, 통신사등 여러편의 CF를 찍었을 정도였다..</ref> 2001년 [[SBS]]로 이직을 하면서 2000년 부터 이미 [[SBS]]로 자리를 옳겼던 송재익 캐스터와 다시 짝을 이루며 해설을 했지만, SBS 시절엔 과학적인 해설을 내세우며 운동생리학을 해설에 곁 들이는 경우를 볼수가 있었고 이게 시청자가 축구 자체에 집중하기 힘들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ref>당시 [[차범근]] 등 새로운 해설자가 경쟁자로 급부상했고, 이들이 쉬운 해설로 호평을 받으면서 신문선씨의 해설의 인기는 한창 때보다는 못한 감이 있긴했다.</ref><ref>2002년 각종 평가전이나 월드컵 본선때 파트너 송재익씨는 경기화면 밑에 SBS 8 뉴스 자막이 지나가면 경기중 뜬금없이 8뉴스 이야기를 해서 항의를 받기도 했다.</ref>
오랜 시간 해설을 했지만 신문선 씨의 해설이 본격적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게된건 [[98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이 결정적이었다. 당시 아시아예선은 MBC가 독점 중계를 해서 시청자들이 몰렸는데, [[송재익]] 캐스터와 함께 현장감있고, 경기의 흥을 돋우며 재미있게 해설을 하면서 많은 사랑을 받게되었던 것. 이 덕분에 당시 MBC의 [[98 프랑스 월드컵]] 본선 시청률은 방송 3사 중 최고였다.<ref>신문선 해설위원의 인기가 어느정도 였냐면 이후 쇼핑사이트, 의약품, 라면, 통신사등 여러편의 CF를 찍었을 정도였다..</ref> 2001년 [[SBS]]로 이직을 하면서 2000년 부터 이미 [[SBS]]로 자리를 옳겼던 송재익 캐스터와 다시 짝을 이루며 해설을 했지만, SBS 시절엔 과학적인 해설을 내세우며 운동생리학을 해설에 곁 들이는 경우를 볼수가 있었고 이게 시청자가 축구 자체에 집중하기 힘들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ref>당시 [[차범근]] 등 새로운 해설자가 경쟁자로 급부상했고, 이들이 쉬운 해설로 호평을 받으면서 신문선씨의 해설의 인기는 한창 때보다는 못한 감이 있긴했다.</ref><ref>2002년 각종 평가전이나 월드컵 본선때 파트너 송재익씨는 경기화면 밑에 SBS 8 뉴스 자막이 지나가면 경기중 뜬금없이 8뉴스 이야기를 해서 항의를 받기도 했다.</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