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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학]]''' : 김명학은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외과개업의로서, 함흥부회의원, 함경도평의원을 겸직하고 있었다. 그의 영향력과 재력은 막강하여, 일본인 함경도지사가 부임해와도 그를 먼저 접견했을 정도로 지역 유력 인사였다.<ref name="함축1">윤경헌, 최창신『축구 = 1 : 國技축구 그 찬란한 아침 』국민체육진흥공단, 1997, p111.</ref><ref>당시 김명학 씨의 위세를 확인할 수 있는 일화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월간축구]] 1972년 12월호에 따르면, 1939년 여름 함남축구대회 후 발생한 소요 사태(당시 지방 축구대회가 열리면, 서울 선수들이 지역 유지들의 의뢰로 대신 경기를 하는 일이 많았다. 이 대회에서도 서울 선수들이 내려가 함남축구대회 우승을 차지했고, 이후 호화 접대(?)를 받던 중 함흥 토박이들과 시비가 붙었는데.. 이 다툼이 패싸움으로 번졌고 이 싸움에 함흥 군민들까지 가세, 소요 사태가 벌어졌다고 한다. 이에 서울 선수들은 함흥 축구단을 이끌고 있었던 [[이유형]] 씨 집으로 피신했고, 이유형 씨는 즉각 김명학 단장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알렸다고. 이에 김명학 씨는 직통으로 함흥헌병분대장에게 전화를 걸어 헌병대를 출동시켜 소요 사태를 진압했다고 한다. ㄷㄷㄷ 교차 검증이 필요한 대목이지만,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당시 김명학 씨 위세가 일본 헌병대 출동을 이끌어낼 정도로 함흥 내에서 막강했던 셈이 된다.</ref> 그는 승마, 사냥, 스케이트 등을 즐기는 스포츠 광이기도 했으며, 이러한 스포츠에 대한 열정을 바탕으로 함흥축구단 창단을 주도하고 단장직에 선임되기에 이른다. 광복 이후에는 월남하여 김명학외과병원을 개원하였으며, [[대한축구협회]] 및 대한승마협회 회장으로도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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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학]]''' : 김명학은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외과개업의로서, 함흥부회의원, 함경도평의원을 겸직하고 있었다. 그의 영향력과 재력은 막강하여, 일본인 함경도지사가 부임해와도 그를 먼저 접견했을 정도로 지역 유력 인사였다.<ref name="함축1">윤경헌, 최창신『축구 = 1 : 國技축구 그 찬란한 아침 』국민체육진흥공단, 1997, p111.</ref><ref>당시 김명학 씨의 위세를 확인할 수 있는 일화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월간축구]] 1972년 12월호에 따르면, 1939년 여름 함남축구대회 후 발생한 소요 사태(당시 지방 축구대회가 열리면, 서울 선수들이 지역 유지들의 의뢰로 대신 경기를 하는 일이 많았다. 이 대회에서도 서울 선수들이 내려가 함남축구대회 우승을 차지했고, 이후 호화 접대(?)를 받던 중 함흥 토박이들과 시비가 붙었는데.. 이 다툼이 패싸움으로 번졌고 이 싸움에 함흥 군민들까지 가세, 소요 사태가 벌어졌다고 한다. 이에 서울 선수들은 함흥 축구단을 이끌고 있었던 [[이유형]] 씨 집으로 피신했고, 이유형 씨는 즉각 김명학 단장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알렸다고. 이에 김명학 씨는 직통으로 함흥헌병분대장에게 전화를 걸고 헌병대를 출동시켜 소요 사태를 진압했다고 한다.. 교차 검증이 필요한 대목이지만,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당시 김명학 씨 위세가 일본 헌병대 출동을 이끌어낼 정도로 막강했던 셈이 된다. 동시에 이는 김씨가 친일파라는 증거도 되는셈. 실제로 김명학 씨는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내에 지역유력자 부문으로 선정되었다..</ref> 그는 승마, 사냥, 스케이트 등을 즐기는 스포츠 광이기도 했으며, 이러한 스포츠에 대한 열정을 바탕으로 함흥축구단 창단을 주도하고 단장직에 선임되기에 이른다. 광복 이후에는 월남하여 김명학외과병원을 개원하였으며, [[대한축구협회]] 및 대한승마협회 회장으로도 활동하였다.
    
* '''[[이성주]]''' : 함흥동명극장과 양조장을 운영하는 재력가로써 조선축구협회 지방이사 겸 조선축구협회 함경남도 지부장 및 함흥체육회의 총무로 활동하였다. 함흥 축구단에서는 부단장으로 선임되어, 명치신궁경기대회 일본 원정단에도 참가하는등 공무가 바빴던 김명학을 대신해 사실상 함흥 축구단의 얼굴 마담으로 활약하였다.
 
* '''[[이성주]]''' : 함흥동명극장과 양조장을 운영하는 재력가로써 조선축구협회 지방이사 겸 조선축구협회 함경남도 지부장 및 함흥체육회의 총무로 활동하였다. 함흥 축구단에서는 부단장으로 선임되어, 명치신궁경기대회 일본 원정단에도 참가하는등 공무가 바빴던 김명학을 대신해 사실상 함흥 축구단의 얼굴 마담으로 활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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