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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극동철강'''(極東鐵鋼)은 대한민국 제철사업 초기의 대표적인 철강회사로 [[금호그룹]] 계열사 시절 '''극동철강 축구단''' | + | '''극동철강'''(極東鐵鋼)은 대한민국 제철사업 초기의 대표적인 철강회사로 [[금호그룹]] 계열사 시절 '''극동철강 축구단''' 또는 '''금호산업 축구단'''이라는 명칭으로 1970년대 말 축구대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극동철강의 본사가 부산에 있었으므로 극동철강 축구단은 부산극동철강이라는 명칭으로 불리웠다. 금호산업시절에도 부산을 근거지로 활동했으나 단명하고 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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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극동철강공업(주)'''은 1958년 8월 [[부산]]에서 설립된 회사로 동국제강과 더불어 한국 제철사업 초기를 대표하는 철강회사였다. 1970년대에 이르러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인해 1976년 [[금호그룹]]에 | + | '''극동철강공업(주)'''은 1958년 8월 [[부산]]에서 설립된 회사로 동국제강과 더불어 한국 제철사업 초기를 대표하는 철강회사였다. 1970년대에 이르러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인해 1976년 [[금호그룹]]에 인수되었으며, 1977년 12월 '''금호산업'''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1979년 9월 같은 금호계열사인 {{주석|금호전자|금호그룹이 천우사전자를 인수한 후 이름을 변경한 회사로 가전제품을 생산하던 회사였다. 70년대말 경영합리화조치로 인해 금호산업과 합병된 후 전사사업에서 철수하면서 사라졌다.}}와 합병하였으며, 1981년에는 금호그룹의 지주회사이자 종합상사인 금호실업(주)과 합병하여 금호실업 철강사업부가 되었다. 1984년 금호실업은 철강사업을 정리하고 삼양타이어(현 금호타이어)과 합병하여 (주)금호가 되었고, 이후 1999년 광주고속, 금호건설과 합병하여 다시 금호산업(주)이 되었으며, 2003년 금호타이어가 다시 분사되어 현재의 금호산업은 고속사업과 건설사업을 운영하는 회사가 되었다. 과거 축구단을 운영했던 철강업체 금호산업과는 다른 성격의 회사로 합병에 합병을 거듭하다가 탄생한 금호산업이라는 동명의 회사일 뿐이나 당시 축구단의 운영주체가 금호그룹이었으므로 관련없다고는 할 수 없다. |
− | 1984년 금호산업에서 정리된 철강사업부는 한보철강에 인수되었는데 이듬해 매출을 2배가량 끌어올려 1년만에 흑자기업으로 돌아서며, 이전까지 대치동 은마아파트 분양 등 건설업에 치중하던 한보그룹의 주력회사가 되었다. 이후 [[충남]] 당진에 일관제철소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5조원에 달하는 분식회계와 국회로비로 인해 1997년 [[IMF사태]]의 도화선이 된 한보사태가 발생하여, 회사는 정리절차에 들어갔다. 2002년 당진제철소는 INI스틸(현, [[현대제철]])에 인수되었으며, 부산제강소는 일본 야마모토 코교그룹에 인수되어 야마모토 코교그룹이 100% 출자한 YK스틸이라는 회사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 | 한편, 1984년 금호산업에서 정리된 철강사업부는 한보철강에 인수되었는데 이듬해 매출을 2배가량 끌어올려 1년만에 흑자기업으로 돌아서며, 이전까지 대치동 은마아파트 분양 등 건설업에 치중하던 한보그룹의 주력회사가 되었다. 이후 [[충남]] 당진에 일관제철소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5조원에 달하는 분식회계와 국회로비로 인해 1997년 [[IMF사태]]의 도화선이 된 한보사태가 발생하여, 회사는 정리절차에 들어갔다. 2002년 당진제철소는 INI스틸(현, [[현대제철]])에 인수되었으며, 부산제강소는 일본 야마모토 코교그룹에 인수되어 야마모토 코교그룹이 100% 출자한 YK스틸이라는 회사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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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15일 (수) 03:12 판
극동철강(極東鐵鋼)은 대한민국 제철사업 초기의 대표적인 철강회사로 금호그룹 계열사 시절 극동철강 축구단 또는 금호산업 축구단이라는 명칭으로 1970년대 말 축구대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극동철강의 본사가 부산에 있었으므로 극동철강 축구단은 부산극동철강이라는 명칭으로 불리웠다. 금호산업시절에도 부산을 근거지로 활동했으나 단명하고 말았다.
극동철강
극동철강공업(주)은 1958년 8월 부산에서 설립된 회사로 동국제강과 더불어 한국 제철사업 초기를 대표하는 철강회사였다. 1970년대에 이르러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인해 1976년 금호그룹에 인수되었으며, 1977년 12월 금호산업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1979년 9월 같은 금호계열사인 금호전자?와 합병하였으며, 1981년에는 금호그룹의 지주회사이자 종합상사인 금호실업(주)과 합병하여 금호실업 철강사업부가 되었다. 1984년 금호실업은 철강사업을 정리하고 삼양타이어(현 금호타이어)과 합병하여 (주)금호가 되었고, 이후 1999년 광주고속, 금호건설과 합병하여 다시 금호산업(주)이 되었으며, 2003년 금호타이어가 다시 분사되어 현재의 금호산업은 고속사업과 건설사업을 운영하는 회사가 되었다. 과거 축구단을 운영했던 철강업체 금호산업과는 다른 성격의 회사로 합병에 합병을 거듭하다가 탄생한 금호산업이라는 동명의 회사일 뿐이나 당시 축구단의 운영주체가 금호그룹이었으므로 관련없다고는 할 수 없다.
한편, 1984년 금호산업에서 정리된 철강사업부는 한보철강에 인수되었는데 이듬해 매출을 2배가량 끌어올려 1년만에 흑자기업으로 돌아서며, 이전까지 대치동 은마아파트 분양 등 건설업에 치중하던 한보그룹의 주력회사가 되었다. 이후 충남 당진에 일관제철소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5조원에 달하는 분식회계와 국회로비로 인해 1997년 IMF사태의 도화선이 된 한보사태가 발생하여, 회사는 정리절차에 들어갔다. 2002년 당진제철소는 INI스틸(현, 현대제철)에 인수되었으며, 부산제강소는 일본 야마모토 코교그룹에 인수되어 야마모토 코교그룹이 100% 출자한 YK스틸이라는 회사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극동철강 축구단
극동철강 축구단은 1977년 9월 창단된 축구팀으로 1년에 한번 있는 사내 대항전을 위해 대학 및 실업지명에 실패한 무명의 고교축구선수 출신들을 중심으로 실업은퇴를 앞둔 도은낙(전,조흥은행GK)같은 선수를 플레잉코치로 하여 구성된 직장아마추어팀이다. 창단 후 개최된 1977년 32회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첫경기에서 상업은행에 승리를 거두며 이목을 끌었다. 16강전에서는 국민은행에 2 대 2로 비긴후 승부차기에서 4 대 3으로 승리하여 신생팀 파란을 주도했으나, 8강에서 중앙대에 1 대 0으로 패하며 분루를 삼켰다.
이후 모기업인 극동철강이 금호산업으로 바뀜에 따라 1978년 9월 팀명칭도 금호산업 축구단으로 바꾸었으며, 전직 국가대표 선수였던 서윤찬씨를 코치로 선임하고 당시 홍콩 세미프로 축구리그에서 활약했던 임태주 선수를 비롯, 최호춘, 김용관, 추종수 등을 영입하여 본격적으로 실업축구에 참여하게 되었다. 1979년 3월,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 참가하여 신생팀임에도 조별예선 통과를 눈앞에 두며 돌풍을 일으켰으나, 금호산업측이 선수등록이 되지 않은 부정 선수를 사용했다는 사실이 적발되어 몰수패를 당해 첫 대회 참가를 어이없이 마무리짓고 말았다.
그러나 대회 참가 후 불과 2달여만인 1979년 5월 금호산업 측이 경영상 부진을 이유로 금호산업 축구단을 해체 결정해버리면서 금호산업 축구단은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경남버스 축구단(부산), 동양기계 축구단(마산)과 더불어 지방실업구단 붐을 일으켰으나 혜성처럼 등장했다 혜성처럼 사라져버린 전설과도 같은팀으로 이제는 거의 아는 사람도 없는 환상속의 팀이 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