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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에는 [[AS 모나코]]의 훈련에 합류하여 유럽 진출을 하는 듯 싶었으나, 당시 모나코의 용병 쿼터가 모두 차있는 바람에 입단이 무산 된 바 있다. 이듬해 2월에는 [[위건 애슬레틱 FC]]로 이적하여 한국인으로는 여섯번째, K리그에서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로 직행한 세번째 선수가 되었다.
 
2008년에는 [[AS 모나코]]의 훈련에 합류하여 유럽 진출을 하는 듯 싶었으나, 당시 모나코의 용병 쿼터가 모두 차있는 바람에 입단이 무산 된 바 있다. 이듬해 2월에는 [[위건 애슬레틱 FC]]로 이적하여 한국인으로는 여섯번째, K리그에서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로 직행한 세번째 선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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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009년 3월 28일 이라크와의 친선경기에서 부상으로 시즌아웃 진단을 받는 등 영국에서의 생활은 신통치 않았으며, 2010 남아공 월드컵 참가를 위해 주전으로 경기를 나서고 싶었던 조원희 선수는 친정팀인 수원으로 임대이적하게 된다. 1년간 준수한 활약을 펼쳤지만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들지는 못했고, 위건으로 복귀한 직후 광저우 헝다로 이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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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009년 3월 28일 이라크와의 친선경기에서 부상으로 시즌아웃 진단을 받는 등 영국에서의 생활은 신통치 않았으며,<ref>하지만 시즌 중 회복하여 스토크시티를 상대로 리그 데뷔전을 치루었다.</ref> 2010 남아공 월드컵 참가를 위해 주전으로 경기를 나서고 싶었던 조원희 선수는 친정팀인 수원으로 임대이적하게 된다. 1년간 준수한 활약을 펼쳤지만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들지는 못했고, 위건으로 복귀한 직후 광저우 헝다로 이적했다.
    
2013년 우한 줘얼로 둥지를 옮겨서 활약했지만 팀의 강등을 막지 못했고, 2014년 2월 경남FC에 1년 임대 조건으로 다시 국내 팬들에게 돌아왔다.
 
2013년 우한 줘얼로 둥지를 옮겨서 활약했지만 팀의 강등을 막지 못했고, 2014년 2월 경남FC에 1년 임대 조건으로 다시 국내 팬들에게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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