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년 미국 북장로회 소속의 선교사 제임스 아담스가 대구 남성로 남문안교회내 사택에 학교 설립한 후 1908년 대신동에 아담스관을 건축하고 교사를 이전하였다. 1912년 현재의 명칭인 사립계성학교로 인가를 받았으며 1919년 아담스관 지하에서 기미 독립선언서가 복사되어 3월 8일 영남지역 3.1운동이 시작되었다. 1945년에는 일제의 강압에 의해 대구공산중학교가 되었으나 해방후 계성중학교로 환원(1949)시키고 1950년에는 계성중학교와 분리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1906년 미국 북장로회 소속의 선교사 제임스 아담스가 대구 남성로 남문안교회내 사택에 학교 설립한 후 1908년 대신동에 아담스관을 건축하고 교사를 이전하였다. 1912년 현재의 명칭인 사립계성학교로 인가를 받았으며 1919년 아담스관 지하에서 기미 독립선언서가 복사되어 3월 8일 영남지역 3.1운동이 시작되었다. 1945년에는 일제의 강압에 의해 대구공산중학교가 되었으나 해방후 계성중학교로 환원(1949)시키고 1950년에는 계성중학교와 분리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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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까지는 남학교였으나 2000년부터 여학생도 입학하여 남녀공학이 되었다.<REF>남고 시절에는 같은 재단의 신명여고와 조인트 동문회를 하기도 하였으나 2000년 남녀공학이 되며 바이바이. 신명여고도 2004년 남녀공학이 되었다</ref> 한 때 경북고, 경북대 사대부고와 더불어 대구 최고의 명문고이기도 했으나 80년대 후반 수성학군의 대두로 몰락하여 성적이 바닥을 헤매다 2010년부터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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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까지는 남학교였으나 2000년부터 여학생도 입학하여 남녀공학이 되었다.<REF>남고 시절에는 같은 재단의 신명여고와 조인트 동문회를 하기도 하였으나 2000년 남녀공학이 되며 바이바이. 신명여고도 2004년 남녀공학이 되었다</ref> 한 때 경북고, 경북대 사대부고와 더불어 대구 최고수준의 명문고였으나 80년대 후반 수성학군의 대두로 몰락하여 성적이 바닥을 헤매다 2010년부터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하였다.
학교의 역사만큼 오래된 건물도 많은데 아담스관(1908년,45호), 맥퍼슨관(1913년,46호), 핸더슨관(1931년,47호) 등 3채의 건물이 대구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학교의 역사만큼 오래된 건물도 많은데 아담스관(1908년,45호), 맥퍼슨관(1913년,46호), 핸더슨관(1931년,47호) 등 3채의 건물이 대구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