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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수 생활 ==
 
== 선수 생활 ==
포철중, [[포철공고]], [[한양대학교]]를 졸업한 선수이다. 한양대 시절인 1995년 [[애틀란타 올림픽대표]]로 발탁된바 있다. 한양대 졸업 후, [[1998년 드래프트]]에서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2순위로 지명되어 프로생활을 시작하였다. 1998년부터 2011년까지 군복무 시절을 제외하고 12년 동안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뛰었지만, 활약한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12년동안 수원에서 1군무대를 밟은 횟수는 불과 76회. 연평균 6회에 그쳤을정도. 남주긴 아깝고 그렇다고 쓰자니 [[이운재]]가 있고 여러모로 계륵같은 존재였던듯. 이운재 선수가 수원을 떠나감에 따라 수원 선수단 중 최고참 선수가 되었다. 2011년 플레잉코치로 활약하다가, 2012년 선수생활을 마감하였다. 이제부터는 지도자 생활에 본격적으로 매진하는듯. 하지만 2012년 7월 6일에 [[정성룡]]이 런던올림픽 대표팀 와일드카드 선발로인한 공백문제로 다시 선수등록을 하였다. 2선발로 [[양동원]]이 존재하고 3선발로 [[권태안]]이 존재하지만 만일에 사태에 대비하여 선수복귀를 추진한것으로 볼 수 있다. 백넘버는 오랜기간 사용하였던 21번이 양동원이 사용하고 있는 관계로서 데뷔년도인 1998년도를 따서 98번으로 정했다.<ref>[http://www.bluewings.kr/news/275191]</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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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철중, [[포철공고]], [[한양대학교]]를 졸업한 선수이다. 한양대 시절인 1995년 [[애틀란타 올림픽대표]]로 발탁된바 있다. 한양대 졸업 후, [[1998년 드래프트]]에서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2순위로 지명되어 프로 생활을 시작하였다. 1998년부터 2011년까지 군복무 시절을 제외하고 12년 동안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뛰었지만, 그 기간동안 수원에서 1군 무대를 밟은 횟수는 불과 76회. 연평균 6회에 그쳤다. 수원을 넘어 국가대표 부동의 1선발 골리였던 [[이운재]]의 존재감 때문. 당시 수원 프론트는 김대환 선수를 남주긴 아깝고 그렇다고 쓰자니 [[이운재]]가 있어 여러모로 계륵같은 존재로 여겼던듯 하다.<ref>물론 1선발이 언제 슬럼프가 오거나 부상을 입을지 모르니, 1선발 실력에 준하는 2선발 골리를 확보하는 것은 프론트 입장에서 매우 중요했을 것이다. 문제는 1선발급 골리에게 2선발을 맡긴 시간이 지나치게 길었던 것..</ref> 이후 이운재 선수가 수원을 떠나감에 따라 수원 선수단 중 최고참 선수가 되었지만 이 즈음에는 [[정성룡]] 등 신예 골리들에게 1선발 자리를 내줘야만 했다. 2011년 플레잉 코치로 활약하다가, 2012년 선수 생활을 마감하는듯 했으나.. 2012년 7월 6일에 [[정성룡]]이 런던올림픽 대표팀 와일드카드 선발로 인해 소속팀의 공백 문제가 생기자 다시 선수 등록을 하였다. 2선발로 [[양동원]]이 존재하고 3선발로 [[권태안]]이 존재하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김대환도 선수 복귀를 추진시킨듯. 백넘버는 오랜 기간 김선수가 사용하였던 21번을 양동원이 사용하고 있던 관계로, 데뷔년도인 1998년도를 따서 98번으로 정했다.<ref>[http://www.bluewings.kr/news/275191]</ref> 하지만 출장 기록은 없이 2012시즌 종료 후 다시금 재차 선수 등록 명단에서 빠지며 최종적으로 은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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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자 생활 ==
 
== 지도자 생활 ==
2011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GK 플레잉코치로 활동 중이다. 그리고 2012년 은퇴 후 플레잉코치가 아닌 정식 GK코치로서 7월까지 코치직을 연임하였으며, 7월 6일경에 다시 선수등록을 하게 되면서 플레잉코치로 변경하였다. 2012년 이후에는 다시 코치로 돌아가 수원의 [[매탄고등학교]] 축구부 GK 코치를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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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GK 플레잉코치로 활동 중이다. 그리고 2012년 최종적으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후 플레잉코치가 아닌 정식 GK코치로서 7월까지 코치직을 연임하였으며, 2012년 7월 6일경에 상술했듯 선수 등록을 하면서 플레잉코치로 변경하였으나, 2013시즌부터는 다시금 코치로 돌아가 수원의 [[매탄고등학교]] 축구부 GK 코치를 수행하였다.
       
== 플레이 스타일 ==
 
== 플레이 스타일 ==
외모나 몸집에 비하여 순발력이 좋아서 선방능력이 좋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골키퍼에게 필요한 안정감이 떨어지는 모습을 자주 보였었으며 골킥 정확도가 떨어지는게 단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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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나 몸집에 비하여 순발력이 좋아서 선방 능력이 좋았다. 하지만 골킥 정확도가 떨어지는 점이나 안정감 부족이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다만 이운재 선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했다고 평가함이 타당할 것이다.
       
== 에피소드 ==
 
== 에피소드 ==
* 친선경기에서는 자주 모습을 보였다. 특히 2004년 7월 29일, 수원 삼성과 [[FC 바르셀로나]]의 친선 매치에서 1:0으로 수원이 승리할 당시 수원의 선발 골리도 김대환 선수였다. 덕분에 농담삼아 친선매치 전문 GK라는 타이틀도 얻었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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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선 경기에서 자주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프로 무대 출장 횟수에 비해 수원 팬들의 기억 속에는 추억의 선수로 남아있다. 특히 2004년 7월 29일, 수원 삼성과 [[FC 바르셀로나]]의 친선 매치에서 1:0으로 수원이 승리할 당시 수원의 선발 골리도 김대환 선수였고 2005년과 2007년 있었던 첼시 FC vs 수원 삼성 블루윙즈 경기에서도 선방을 보여주며 활약했다. 덕분에 농담삼아 친선매치 전문 GK라는 타이틀도 얻었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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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수원에서 세컨드 키퍼를 보던 시절 [[이운재]]가 국가대표로 자주 차출된 탓에 해외 명문팀과의 친선경기에서 많이 활약했다. 특히 2004년 7월 FC 바르셀로나와의 경기에서 무실점 선방을 보여주며 바르셀로나를 격침시키는데 일등공신이 되었고, 2005년과 2007년 첼시와의 경기에서도 선방을 보여주며 활약했다. 국내용이 아닌 해외용 골키퍼?<ref>실제로 수원 입단 후, 2년간 2군 생활을 겪다가 2000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수원 1군 골키퍼로 활약한 계기도 해외팀과의 경기에서의 대활약에 있었다. 2000년 2월 [[아시아클럽선수권]]에서 수원은 [[가시마 앤틀러스]]와 경기를 치루었는데, 당시 김대환 선수가 선발로 나서 야나기사와, 히라세 등 일본 선수들의 1:1 득점찬스를 잇달아 막아내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이후, [[K리그 수퍼컵]]에서 [[성남 일화]][[김현수]] 선수의 승부차기 까지 막아낸 김대환 선수는 [[김호]] 감독의 눈도장을 받아 2000년 1군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었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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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입단 후, 2년간 2군 생활을 겪다가 2000시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수원 1군 골키퍼로 활약할 수 있었던 계기도 국외 경기에서의 대활약에 있었다. 2000년 2월 [[아시아클럽선수권]]에서 수원은 [[가시마 앤틀러스]]와 경기를 치렀는데, 당시 김대환 선수가 선발로 나서 야나기사와, 히라세 등 일본 선수들의 1:1 득점 찬스를 잇달아 막아내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이후 치러진 [[K리그 수퍼컵]]에서는 [[성남 일화 천마]] [[김현수]] 선수의 승부차기를 막아내며 김대환 선수는 [[김호]] 감독의 눈도장을 받아냈고, 2000시즌 1군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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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삼성에서 은퇴 후 선수 복귀는 [[윤성효]] 이후에 두번째 사례라고 볼 수 있다.<ref>수원 삼성에서는 두번째지만 K리그 전체로 보면 제법 있었다. 2007년에는 [[대구 FC]]의 [[정기동]] [[GK 코치]]가 46세의 나이로 GK로 등록한적도 있었을 정도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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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은퇴 후 선수 복귀를 했던 사례로는 [[윤성효]]에 이어 두번째라고 볼 수 있다.<ref>수원 삼성에서는 두번째지만 K리그 전체로 보면 제법 있었다. 2007년에는 [[대구 FC]]의 [[정기동]] [[GK 코치]]가 46세의 나이로 GK로 등록한적도 있었을 정도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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