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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리그 == | | == K리그 == |
− | 1980년 할렐루야 축구단이 창단하자 합류하여, 원년 맴버가 되었다. 이후 1983년 수퍼리그에서 할렐루야 원년 우승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하며, 시즌 베스트 일레븐과 우수 골키퍼 상까지 휩쓰는 좋은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후 자금력을 앞세운 대기업 구단이 연이어 창단하자, 할렐루야 축구단은 제대로 된 성적을 내지 못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수는 할렐루야의 문전을 지키며 분전하였다. 이후 1985시즌을 끝으로 할렐루야가 아마 귀환을 선언하였음에도 끝까지 할렐루야에 남아있다가, 1987년 [[포항제철 아톰즈]]에 입단하며 프로 무대에 복귀하였다. 이후 1990년까지 포철에서 활약하다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 + | 1980년 할렐루야 축구단이 창단하자 합류하여, 원년 맴버가 되었다. 이후 1983년 수퍼리그에서 할렐루야 원년 우승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하며, 시즌 베스트 일레븐과 우수 골키퍼 상까지 휩쓰는 좋은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후 자금력을 앞세운 대기업 구단이 연이어 창단하자, 할렐루야 축구단은 제대로 된 성적을 내지 못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수는 할렐루야의 문전을 지키며 분전하였다. 이후 1985시즌을 끝으로 할렐루야가 아마 전환을 선언하였음에도 끝까지 할렐루야에 남아있다가, 1987년 [[포항제철 아톰즈]]에 입단하며 프로 무대에 복귀하였다. 이후 1990년까지 포철에서 활약하다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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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퇴 이후 == | | == 은퇴 이후 == |
− | [[현대 호랑이]]와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대표팀, 애틀란타 올림픽대표팀, [[전북 현대 모터스]], [[전남 드래곤즈]], [[수원 삼성 블루윙즈]] 등 여러 팀을 지도하며 코치로 활약하였다. 1997년과 1998년에는 할렐루야 축구단의 감독을 맡아 지도하기도..<ref>하지만 할렐루야 축구단은 메인 스폰서인 신동아 그룹의 부도에 따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ref> 이후 2014년부터는 대한축구협회 경기분과위원회 경기위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 + | [[현대 호랑이]]와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대표팀, 애틀란타 올림픽대표팀, [[전북 현대 모터스]], [[전남 드래곤즈]], [[수원 삼성 블루윙즈]] 등 여러 팀을 지도하며 코치로 활약하였다. 1997년과 1998년에는 할렐루야 축구단의 감독을 맡아 지도하기도..<ref>하지만 할렐루야 축구단은 메인 스폰서인 기독교선교횃뷸재단의 운영포기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ref> 이후 2014년부터는 대한축구협회 경기분과위원회 경기위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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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에 있는 동안 경고ㆍ퇴장을 한장도 받지 않을 정도로 깔끔한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 | * 프로에 있는 동안 경고ㆍ퇴장을 한장도 받지 않을 정도로 깔끔한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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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80년대 K리그 최정상급 골리 중 한명이었지만, 유독 월드컵과 인연이 없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오연교]] 선수에게 밀리며 벤치 신세를 감내해야 했고,<ref>이를 두고 [[김정남]] 감독이 인맥으로 선수를 기용했다는 루머까지 있었다. 그러나 김정남 감독이 후일담으로 밝히길 오연교 선수의 컨디션이 조병득보다 좋았기 때문에 기용했던 것이었다고 한다.</ref>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아시아 예선만 참여하고, 본선 엔트리에는 들지 못했다. 이후 1997년 [[FIFA 프랑스 월드컵]] 대표팀 체제가 발족됐을 당시만 해도 코치로 이름을 올렸지만, 아시아예선 도중 할렐루야 축구단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결국 코치진에서 빠지게 된다. 이후 프랑스 월드컵 대표팀은 네덜란드에게 0:5 대패 이후, [[차범근]] 감독이 경질되고 [[김평석]] 코치<ref>원래 [[트레이너]] 였으나 조병득 코치의 하차 이후 대표팀 코치로 승격하였다.</ref>가 감독 대행으로 승격하여 본선 잔여일정을 치루었는데.. 만약 조병득 씨가 계속 국가대표 코치직을 했더라면 조병득 대행이 벨기에 전을 치렀을지도 모른다. | + | * 80년대 K리그 최정상급 골리 중 한명이었지만, 유독 월드컵과 인연이 없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오연교]] 선수에게 밀리며 벤치 신세를 감내해야 했고,<ref>이를 두고 [[김정남]] 감독이 인맥으로 선수를 기용했다는 루머까지 있었다. 그러나 김정남 감독이 후일담으로 밝히길 오연교 선수의 컨디션이 조병득보다 좋았기 때문에 기용했던 것이었다고 한다.</ref>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아시아 예선만 참여하고, 본선 엔트리에는 들지 못했다. 이후 1997년 [[FIFA 프랑스 월드컵]] 대표팀 체제가 발족됐을 당시만 해도 코치로 이름을 올렸지만, 아시아예선 도중 할렐루야 축구단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결국 코치진에서 빠지게 된다. 이후 프랑스 월드컵 대표팀은 네덜란드에게 0:5 대패 이후, [[차범근]] 감독이 경질되고 [[김평석]] 코치<ref>원래 [[트레이너]] 였으나 조병득 코치의 하차 이후 대표팀 코치로 승격하였다.</ref>가 감독 대행으로 승격하여 본선 잔여일정을 치루었는데.. 만약 조병득 씨가 계속 국가대표 코치직을 했더라면 조병득 대행이 벨기에 전을 치뤘을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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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범근]] 감독과 각별한 사이, [[현대 호랑이]]와 국가대표 그리고 [[수원 삼성 블루윙즈]] 코치 시절에도 차범근 감독을 보좌했다. | | * [[차범근]] 감독과 각별한 사이, [[현대 호랑이]]와 국가대표 그리고 [[수원 삼성 블루윙즈]] 코치 시절에도 차범근 감독을 보좌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