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이그 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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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즈번 로어 시절 무어

크레이그 무어 (1975년 12월 12일 ~ 현재)는 오스트레일리아 국적의 센터백으로, 레인저스 FC브리즈번 로어전설이다.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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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레일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52경기 3골
오스트레일리아 축구 올림픽 대표팀 11경기 1골
오스트레일리아 U-20 대표팀 24경기
오스트레일리아 U-17 대표팀 8경기
  • A-리그 기록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브리즈번 로어 FC 2007/08 21 0 0 0 2 1
브리즈번 로어 FC 2008/09 23 0 2 2 4 0
브리즈번 로어 FC 2009/10 18 0 1 1 5 0
통산 (A-리그) - 62 0 3 3 9 0

A-리그 기록은 챔피언십 포함. 2012년 3월 1일 기준.


유소년 생활

1991/92시즌 노스 스타에서 축구화를 신은 무어는 U-17 대표팀에 발탁되며 성장 가능성을 보였고, 1992/93시즌 AIS에 발탁, U-20대표팀에서 24경기에 나서며 인상적인 모습을 보인다. 성장 가능성을 엿본 무어에게 많은 클럽들이 제의를 했지만 무어는 스코티시 프리미어십의 거함 레인저스 FC와 유소년 계약을 하며 스코틀랜드 무대에 진출한다.

프로 생활

영광의 길, 레인저스 생활

1993/94시즌 레인저스와 전임 계약을 체결한 무어는 첫 시즌 1경기에 출장하는 데 그쳤지만, 1994/95시즌 리그 21경기에 출장, 2골을 터뜨리며 팀의 우승에 기여하면서 레인저스의 미래로 자리잡기에 이르렀다. 이 시즌 레인저스는 리그 최다 득점(60점), 최소 실점 2위(35점)을 기록하면서 2위 마더웰 FC를 무려 15점 차로 따돌리며 압도적인 우승을 차지했다.[1] 이와 동시에 무어는 사커루의 일원으로 선발되면서 만 19세의 어린 나이에 국가 대표팀에 선발되는 영광을 맛보기도 하였다. 이어진 1995/96시즌에는 부상 등으로 컨디션 난조를 보이며 11경기에 나서 1골을 기록하는 데 그쳤고, 이 시즌 레인저스는 셀틱과 단 승점 4점차로 우승을 차지하면서 정상 자리를 지켜나간다. 한 숨 돌린 무어는 1996/97시즌 리그 23경기에 출장하여 1골을 기록, 다시 정규 주전으로 좋은 모습을 보였다. 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면서, 1996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 올림픽 축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11경기에 나서 1골을 기록하는 등 최고의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1997/98시즌에는 페루지아에서 3백 75만 파운드를 투자해 데려온 이탈리아 국적 센터백 세르지오 포리니의 활약에 주전 자리에서 밀리며 리그 10경기에 출장하는데 이르렀다.

주전에서 밀리면서 위기가 찾아온 1998/99시즌에는 리그에서 단 8경기에 출장하는 데 그치게 되었는데, 마침 그에게 관심을 가진 클럽이 있었으니, 바로 팰리스였다. 당시 승격해서 풋볼리그 퍼스트 디비전[2] 잔류가 지상 최대 목표였던 팰리스는 수비 보강 카드로 레인저스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던 무어를 꼽았고, 결국 그를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1998/99시즌 팰리스에서 뛴 기간 동안, 무어는 리그 23경기에 나서 3골을 기록하는 활약을 펼쳤고, 팰리스는 디비전에 잔류하는데 성공하게 되었다.

팰리스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뒤, 1999/00시즌을 앞두고 당시 레인저스의 감독을 맡고 있던 네덜란드 국적 감독 딕 아드보카트의 전력 보강 계획의 일환으로 다시 레인저스로 복귀하였다. 무어는 그 시즌 22경기 1골을 기록하며 레인저스의 리그 우승을 이끌며 화려한 복귀를 치른다. 하지만 그 영광도 잠시, 2000/01시즌 찾아온 부상과 함께 5경기에 출장하는 데 그치며 심각한 슬럼프를 겪은 그는 2001/02시즌 리그 18경기에 출장, 3골을 기록하며 부활을 신고하더니 2002/03시즌에는 리그 35경기 3골을 포함, 자신의 프로 경력 사상 최다 출장인 49경기를 기록하며 팀의 중심임을 알렸다. 2001년 12월 13일, 아드보카트의 후임으로 부임한 스코틀랜드 국적 감독 알렉스 맥레이시가 2003/04시즌 리빌딩을 시작하면서 리그 17경기에서 2골을 기록하며 로테이션 멤버로 기용되더니, 2004/05시즌에는 아예 리그와 컵 대회, 대륙 대회를 포함해 9경기밖에 출장하지 못하면서 전력 외 선수로 간주되었다.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

결국 2004/05시즌 레인저스와 계약을 해지, 자유 계약 선수가 된 무어는 2005년 1월 3일, 레인저스 시절 가르침을 받았던 아드보카트를 따라 독일 분데스리가 하위권 클럽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로 이적하게 된다. 이적 후 남은 시즌 동안 리그 13경기에 나서 1골을 기록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팀이 강등권에서 턱걸이로 살아남으면서 아드보카트 감독이 경질, 그도 팀을 떠나게 된다.

뉴캐슬 유나이티드

2005년 7월 30일, 그는 잉글리시 프리미어십 소속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와 2년 계약에 서명하며 축구 종가 의 최상위 리그에 모습을 드러낸다. 2005/06시즌을 부상으로 대부분 날린 채 시즌이 끝나가던 2006년 3월 22일, 그는 첼시 FC를 상대로 한 잉글리시 FA 컵 4강전에서 데뷔전을 치루었는데, 이는 오스트레일리아 국적 선수 중 뉴캐슬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FA 컵에 출전한 첫 선수로 남아 있는 기록이다.[3] 결국 그는 이 시즌에서 리그 8경기에 출장하는데 그쳤다.

2006/07 시즌이 시작되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2006년 11월, 무어는 다시 부상을 당해 몇 개월 동안 피치를 떠나 있어야 했고, 그가 부상에서 복귀했을 때에는 스티븐 테일러 등의 선수들이 그를 밀어낸 상태였다. 경쟁 관계에 있던 티터스 브램블이 좋지 않은 경기력으로 빠졌을 때에야 1군에 돌아왔는데, 그는 시즌 동안 리그 17경기에 출장하는데 그쳤다.

시즌 종료 후인 2007년 5월 16일, 뉴캐슬 유나이티드는 무어와의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그는 뉴캐슬을 떠나야 했다.

브리즈번 로어

뉴캐슬 유나이티드와 계약이 종료되는 시점부터 퀸즐랜드 로어로 이적한다는 루머가 돌았고, 그는 2007년 7월 25일, 2년 동안 마키 선수로 대우받으며 뛴다는 계약에 서명하며 퀸즐랜드 로어에 합류한다. 그는 뉴사우스웨일즈 주의 시드니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이 퀸즐랜드 주 출신이어서 해당 연고 팀이었던 퀸즐랜드 로어와 계약하려는 마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A-리그 시작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는 2007/08시즌 개막 경기인 애들레이드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경고를 두 장 받으며 퇴장당했다. 그의 퇴장은 팀이 2-1로 앞서고 있던 상황이라 더 안타까웠으며, 그의 공백을 이겨내지 못 한 퀸즐랜드는 통한의 실점을 기록하며 2-2로 무승부를 기록했다. 그 뒤 2008/09시즌에도 리그 21경기에 출장하며 팀의 핵심으로 활약했지만 경기 베팅에 관련된 추문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2008/09시즌에는, 촌부리 FC멜버른 빅토리AFC 챔피언스 리그 조별 예선 경기 등 A-리그 클럽이 관련된 두 경기에 총 600 AUD의 금액으로 베팅을 한 사실이 밝혀져 파문이 일었다. 자기 경기와 관련이 없었다는 판단도 있었거니와 이것 때문에 충분히 속죄할 만한 벌금과 처벌을 받았기 때문에 로어는 이를 명예로운 실수라고 이름붙였다.

당시 이 사건에 관련된 케빈 머스캣과 무어[4]는 벌금형을, 머스캣의 팀 동료 그랜트 브렙너에게는 4경기 출장 정지와 2경기 추가 정지, 5000 AUD의 벌금, 2000 AUD의 추가 정지 경기당 벌금형이라는 처벌이 내려졌다. 이로 인해 각종 언론들은 크레이그 무어가 브리즈번에서 방출되어야 한다며 강한 비판을 했지만, 무어는 꿋꿋이 2009/10시즌 리그 15경기에 기용하며 노익장과 팀의 절대적인 믿음을 과시했다.

그 외

그는 2009/10시즌 종료 후 그리스 클럽 AO 카발라로 이적한 뒤 10경기 1골을 기록한 후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은퇴 후인 2010년 7월, 뉴캐슬 제츠를 상대로 한, 사커루AC 밀란에서 활약했던 골키퍼 젤리코 칼라치의 은퇴 경기를 위해 잠시 시드니 유나이티드의 붉은 셔츠를 입기도 했다.


국가 대표팀

그는 2006 FIFA 월드컵 조별예선 크로아티아 전에서 페널티킥으로 득점하면서 사커루의 16강 진출에 공헌했다. 2008년 2월 6일, 텔스트라 돔에서 열린 카타르와의 2010 FIFA 월드컵 지역 예선 경기에 출장해 팀의 3-0 승리에 공헌하기도 하였다. 국가 대표팀에서도 주장으로 활약했던 그는 2010 FIFA 월드컵 종료 후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하였다.


은퇴 이후

몇몇 미디어와 시간제 계약을 맺어 칼럼을 쓰거나 어떤 일에 대해 코멘트를 하는 식으로 활동했다.


에피소드

  • 2008년 11월, 그는 고환암 때문에 수술을 받아서 6주 동안 경기에 나오지 못했다.
  • 은퇴 후인 2010년 9월, 두바이에서 음주 후 추태로 현지 경찰에 체포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은근 멘탈왕


수상 및 경력

클럽

개인


같이 보기


외부 링크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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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표적인 라이벌 셀틱 FC는 36경기 11승 18무 7패 승점 51점을 기록, 4위에 그쳤다.
  2. 현재 잉글리시 챔피언십의 전신
  3. 사실 그의 실제 데뷔 전은 예딩 FC와의 홈 경기였는데, 이 경기에서 득점하기도 하였다.
  4. 당시 이 두 선수는 사커루 주장 출신이었고, 각각 멜버른 빅토리브리즈번 로어의 주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