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선수 집단 월북사건
대학선수 집단 월북사건이란, 1948년 가을에 벌어진 대한민국 대학 축구선수 10명이 북한으로 월북한 사건을 말한다.
사건 개요
대학 선수들의 집단 월북
당시 최정예 대학축구선수들이 조축구협회 평의원 겸 감사였던 현효섭에 포섭되어 집단으로 월북한 사건이다. 당시 일부 대학 선수들이 잠적하였고 고려대와 동국대는 일부 주전이 빠진채 제21회 전국체전 서울대표 예선을 치뤄야 했다.며칠이 지나지 않아 북한의 라디오 방송에서 "남조선 축구대표팀이 정부 수립을 경축하여 펼쳐진 기념 체육대회에 출전했으며 준결승에서 탈락하였다"는 보도를 내면서 이들의 월북 사실이 확인되었다.
월북 이유는?
현효섭은 보성전문의 축구선수 출신이었으며, 당시 보성전문의 후신인 고려대학교의 출신 선수가 4명(이강열,이범태,신현수,이봉우)으로 연세대학교와 같이(양준석,이찬영,안봉오,문창욱)제일 많았고 서울대학교 출신 선수 2명(이한상,손덕교)과 동국대학교 출신의 선수 1명(박송림)이 각각 월복하였다.당시 이들중 4명이 1948년 런던올림픽에서 대표팀 2차 예비후보, 2명이 1차 예비후보 였기에 당시 30대가 대거[1] 올림픽에 출전했기에 이에 대한 반발이라는 설,양준석과 이강열이 남로당원이어서 이들을 권유하였다는 설,유럽의 사회주의 국가 원정을 보내준다는 말에 속아서 갔다는 설등 다양하다. 다만 당시 고려대학교 소속이던 홍덕영씨는 당시 서울 대학선수들은 북한이 아닌 시골의 지역단위 축구대회에 가는줄 알았을것이라로 추측했다. 당시 시골에서 촌 축구대회를 열면 주변지역 청년들이 팀을 구성하는데 승부욕으로 서울로 올라와서 선수들을 사서 팀을 구성하기도 했었다고 한다.당시 서울팀 선수들이 이런 촌 축구대회에 참가하면 받는 대접이 극진하였다고.... 월북한 선수들은 1명[2]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북한에 잔류하였고 전쟁 후 빨치산으로 내려온 일부가 서울시내에서 목격되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