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동철강

칫통 (토론 | 기여)님의 2011년 6월 15일 (수) 00:4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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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산업 축구단 은 1978년 9월부터 1979년 5월까지 존재했던 초단명 축구단이다.

광주광역시 (당시 광주시) 에 존재했던 최초의 실업 축구팀이었다는데 역사적 의의는 크다.

금호산업

금호아시아나그룹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금호산업은 금호그룹의 계열의 철강수출전문업체였다. 1981년 금호그룹의 지주회사이자 종합상사인 금호실업(주)과 합병하여 금호실업 철강사업부가 되었으며, 1984년 삼양타이어(현 금호타이어)과 합병하여 (주)금호가 되었다. 이후 1999년 광주고속, 금호건설과 합병하여 금호산업(주)이 되었고, 2003년 금호타이어가 다시 분사되어 현재의 금호산업은 고속사업과 건설사업을 운영하는 회사가 되었다. 과거 축구단을 운영했던 철강업체 금호산업과는 다른 성격의 회사이나 결국 합병에 합병을 거듭하여 금호산업이 되었으므로 결국 같은 회사.

금호산업 축구단

금호산업 축구단은 1979년 2월, 전국 대통령배 축구대회 참가를 선언하며 처음 주목을 끌었다. 1978년 9월 전직 국가대표 선수였던 서윤찬씨를 코치로 선임한 후 선수들을 모집한 금호산업 축구단은, 당시 홍콩 세미프로 축구리그에서 활약했던 임태주 선수를 비롯, 최호춘, 김용관, 추종수 등을 영입하는데 성공해 다크호스로 지목받았다. 1979년 대통령배에서 신생팀임에도 조별예선 통과를 눈앞에 두며 돌풍을 일으켰으나, 금호산업측이 선수등록이 되지 않은 부정 선수를 사용했다는 사실이 적발되어 몰수패를 당해 첫 대회 참가를 어이없이 마무리짓고 말았다.

그리고.. 대회 참가 후 불과 2달여만인 1979년 5월 금호산업 측이 경영상 부진을 이유로 금호산업 축구단을 해체 결정해버리면서 금호산업 축구단은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경남버스 축구단, 동양기계 축구단과 더불어 1979년 혜성처럼 등장했다 혜성처럼 사라져버린 전설과도 같은팀으로 이제는 거의 아는 사람도 없는 환상속의(?) 팀이 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