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훈1

파일:강정훈.jpg
대전 시절의 강정훈

강정훈(1976년 2월 20일~)는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선수로, 1998년부터 2007년까지 K리그 대전 시티즌에서 활동하였던 수비수이다.


프로필편집

  • 이름 : 강정훈
  • 출생일 : 1976년 2월 20일
  • 유스클럽 : 한양공업고등학교 → 한양대학교 졸업
  • 국가대표 경력 : 1992년 청소년대표 선발
  • 신체 : 178cm / 70kg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리그 기록
소속팀 리그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대전 시티즌 K리그 1998 21 20 1 1 3 0
1999 25 21 1 2 1 0
  대전 시티즌 2000 27 20 1 3 2 0
2001 6 6 0 0 1 0
2002 25 8 0 1 5 0
2003 28 12 1 2 1 0
2004 33 8 1 1 8 0
2005 34 4 2 2 5 0
2006 34 6 1 0 6 0
2007 26 10 0 0 4 0
  김해시청 축구단 KNL 2008 5 5 0 0 1 0
통산 (K리그) 클래식 - 259 115 8 12 36 0
통산 (내셔널리그) KNL - 5 5 0 0 1 0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0년 3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지도자 프로필편집

  • 2009 ~ 현재 : 강정훈 축구교실 운영
  • 2010 ~ 2012 : 대전 CMB 축구중계 해설위원


유소년 생활편집

전라남도 해남 출신으로, 빵과 우유를 준다기에 축구를 시작했을 정도로 집안 형편이 좋질 않았다고 한다. 우연히 해남에 들렀던 한양중학교 감독눈에 들어 서울로 상경했고, 한양공업고등학교, 한양대학교 축구부를 거쳐 대전 시티즌에 입단하게 되었다. 여담으로 이관우 선수가 중학교 시절부터 강정훈 선수의 직속 후배였다.


K리그편집

한양대 졸업 후, 1998년 드래프트에 참가한 강정훈 선수는, 대전 시티즌에 3순위로 지명되어 프로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 포지션은 스트라이커를 맡았는데 원래 강선수의 포지션은 미드필더였다. 대전에서 꾸준히 기회를 주었지만 자기에게 맞지않는 포지션을 계속 맡기니 부담감이 컸었다고. 2001년 큰 부상을 당해 선수 생명의 위기까지 겪었지만 이 모든걸 극복해내는데 성공했다. 재활을 마친 후, 다시 1군무대에 돌아와 활약했으며 이때부터는 윙 포워드와 사이드 미드필더를 맡으며 자기 자리를 찾는데 성공했다. 2003년 이후로는 수비형 미드필더와 윙백을 고루 활약하며 대전의 미드필더진에 중량감을 불어넣는데 공을 세웠다. 특히나 2004년 이후에는 거의 시즌 전경기를 출장하며 기복없는 플레이와 활동량을 보여주었으며 후배 선수들에게도 모범이 되는등 대전의 최고참 선수로 활약하였다. 2007시즌에는 대전 시티즌의 주장을 맡았으나 2007시즌 종료 후 김호 전 대전 감독의 리빌딩 명분 아래 은퇴당하고 말았다.


은퇴 이후편집

대전을 떠난 뒤 내셔널리그 팀인 김해시청에서 잠시 플레잉코치를 소화하기도 했던 강정훈 씨는 이후 대전광역시에 자신의 이름을 딴 '강정훈축구교실'(강정훈 FC)을 설립하여 운영 중에 있으며, 강정훈 축구교실은 KFA 공식대회에 참가해 좋은 성적을 거두는 등 대전 지역에서 명망있는 축구 교실로 발돋움 중이다.[1] 이외에도 2012년까지 CMB와 대전 MBC에서 대전 시티즌 홈경기 중계를 해줄때마다, 해설가로 나서기도 하였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활동량이 좋은 미드필더로 공수전반에서 대전의 감초같은 역할을 맡았다. 특히 자기 관리가 뛰어나 어린 선수들에게 모범이 되기도. 대전 시티즌 시절 주장으로 활약하며 김형일 등 어린 선수들에게 많은 조언과 도움을 주었다.


에피소드편집

  • 한양대 1학년 시절 척추분리증이라는 축구선수 생명은 물론이고 일반적인 생활도 힘들 정도로 치명적인 병을 앓은적이 있다.[2] 결국 수술과 각고의 노력끝에 재활에 성공해 축구선수의 길을 걷는데 성공했다. 다만 척추분리증의 휴유증으로 허리에 핀이 4개나 박혀있어 잠을 제대로 자기 어렵다고 한다. 여기에 오른발 감각도 약간 없으시다는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K리그에서 300경기 가까운 출장기록을 세우셨으니 그야말로 감동의 도가니탕이다.
  • 대전에서 오랜 시간을 뛰었지만 초기에는 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특히나 1998년 IMF 위기 직후에는 선수단 처우가 워낙 열악해 이거 받느니 실업축구에서 뛰는게 낫겠다고 했을 정도. 여기에 2005년에는 수원을 비롯해 여러팀이 강정훈 선수에게 오퍼를 넣었던바 있다. 무려 대전에서 강선수가 받는 지금 연봉의 6배를 줄테니 오라고 간청한 구단까지 있었지만 모두 거부. 결국 대전의 레전드로 남으셨다.
  • 안그런 선수가 어딨겠느냐만, 강정훈 선수의 대전 시티즌 사랑은 정말 대단하다. 선수시절에도 후배 선수들에게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으며 특히 대전 시티즌 선수로서의 자긍심과 책임감을 항상 강조하곤 했다. 은퇴 후 대전 CMB 해설위원으로 나설때도, 대전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멘트를 남기곤한다. 특히 대전 선수들이 어이없는 실수를 하면 한숨섞인 탄식을 하시곤 하는데 그 절절한 감정이 묻어나올지경.


경력편집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참고편집

  1. 2016년 초에는 강정훈 FC 소속인 오한빈 선수가 J2리그 자스파 쿠사츠로 입단에 성공, 소소한 화제를 모으기도 하였다. 명문 학원 축구부 출신이 아닌, 유소년 축구 클럽 출신이 해외 진출에 성공하는 경우가 매우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 [1]
  2. 실제로 당시 강정훈 선수를 진단한 의사는 축구 선수 생활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었다. 이때 강선수는 은퇴를 고민하기도 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