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스 히딩크
거스 히딩크 (1946년 11월 8일 ~ 현재)는 네덜란드 국적의 전설적인 감독으로, 2002 FIFA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4강 신화를 이끌었다. 본명은 휘스 히딩크이나 본인이 언론에 거스라고 불러달라고 하여 거스 히딩크라 불린다.
선수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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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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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시절
20대에 일찌감치 선수 생활을 정리하고 코치로 데뷔했으나, 코치 자격으로 선수들과 같이 훈련하는 걸 본 감독이 선수로 계약서를 바꿔버린 탓에 선수로 입지를 다지게된 특이한 일화가 있다. 선수 데뷔 초기에는 지금의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서 뛰었으며 강력한 중거리슛이 특기였다고 한다. 또한 22골로 팀 내 득점왕에 올랐다고 기록되어 있다. 1970/71 시즌 PSV로 이적한 후에는 잘 뛰지 못했다. 같은 포지션에 선수가 히딩크 말고도 3명이나 더 있었기 때문, 3경기 뛰고 2경기 쉬는 식이니 경기를 잘 뛸 리가 없었다. 결국 팬들의 모금행사로 친정팀 격인 데 그라프샤프로 돌아왔다.
선수생활 말년엔 당시의 대스타 펠레와 베켄바워가 뛰고 있던 북미축구리그 (NASL)의 제의를 받고 워싱턴 디플로매츠로 임대, 미국 리그가 비시즌 중일 때는 네덜란드가 시즌을 맞아서 4계절 내내 축구만 하는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은퇴 직전 그의 포지션은 리베로였으며, 1981/82 시즌 데 흐라스프합(De Graafschap)에서의 활약을 끝으로 은퇴하였다.
지도자 생활
데 흐라스프합
PSV 에인트호번
당시 PSV는 당초 예상이었던 우승권이 아닌 4~5위 싸움을 벌이고 있었는데 이 때 히딩크가 취임. 오자마자 한 말은 바로"너희가 원하던 대로 감독은 없어졌다,이제 너희가 잘 뛰지 못하면 너희 실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라며 주도권을 휘어잡고 팀을 진두지휘했다. 당연히 PSV는 우승했다.
레알 마드리드
이 때는 상당히 잘 나갔었다. 도요타컵 우승 등 국제 친선 대회에서도 좋았었고, 리그는 항상 1위 아니면 2위였다.(너무 당연한가?) 당시 히딩크가 추구하던 축구는 화끈한 축구였다. 이 때 레알의 경기에는 1-0 이나 0-0 은 없었고 항상 2-1 아니면 3-2 였다고 한다. 그러나 팀의 이사 중 한 사람이 자신의 아들을 유소년 클럽에 몰래 입단시키려고 한 것에 격분한 히딩크는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대한민국
대한민국 이후
업적 및 경력
같이 보기
외부 링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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