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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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공오균.jpg
대전 시절의 공오균

공오균(1974년 9월 10일~)은 대한민국 출신의 축구선수로 1997년부터 2008년까지 K리그에서 활동하였던 공격수이다. 현재는 은퇴 후, 호주에서 축구 지도자 경력을 쌓고있는 중이다.



프로필

  • 이름 : 공오균
  • 출생일 : 1974년 9월 10일
  • 신체 : 177cm / 72kg
  • 학력 : 한국체육대학교 박사과정
  • 국가대표 경력 : 1996년 올림픽대표 상비군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별명 : 공쌤


  • 프로 기록 (실업 포함)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대전 시티즌 1997 33 10 1 2 4 0
1998 25 15 5 2 3 0
1999 31 13 6 3 5 0
2000 24 19 2 0 4 0
2001 29 19 9 2 8 0
2002 20 19 1 0 3 0
2003 31 19 5 6 4 0
2004 32 24 4 1 2 0
2005 30 22 3 2 4 0
2006 36 30 2 0 5 0
경남 FC 2007 14 13 2 0 4 0
2008 14 14 3 0 3 0
통산 (K리그) - 319 219 43 18 49 0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0년 3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지도자 프로필

  • KFA 1급 지도자 자격증, AFC 1급 지도자 자격증 보유
  • 고등교육 정교사 2급
  • 2010 호주 TV Sports 신태용 축구교실 감독
  • 2016 ~ 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

유소년 생활

경기도 김포 출신으로, 축구 명문인 부평동중과 부평고를 나와 관동대학교로 진학하였다. 관동대 시절 활약으로 애틀란타 올림픽대표 상비군에 발탁된바 있어, 1997년 드래프트에서 대전 시티즌은 3순위로 공오균 선수를 지명하였다.


프로 생활

대전 시티즌의 창단 멤버로 입단해 10년동안 대전에서만 활약했던 베테랑 선수였다. 특히 대전 시티즌의 창단 첫승과 첫골을 동시에 기록하기도 했으며, fa컵에서 이뤄낸 시티즌 역사상 최초의 헤트트릭을 기록한 선수로 많은 대전팬들의 사랑을 받았는데.. 2006년 시즌 종료 후, 대전 시티즌 측이 공선수가 보다나은 환경의 팀에서 뛸 수 있도록 배려한다 는 기묘한 핑계를 대며 공오균 선수와 재계약을 포기해 많은 대전팬의 비판을 받은바 있다. 결국 공오균 선수는 경남 FC로 이적해 그곳에서 2년간 더 활동하다가 호주로 지도자 연수를 떠나며 K리그와의 인연을 끝맺었다.[1]

플레이 스타일

꾸준한 활약보다는 몰아치기에 능했던 선수였다. 특히 시즌별로 상승 하강 기복의 폭이 꽤나 심했던편. 여담으로 젊은 시절 공오균 선수는 파이터 기질이 은근 있어 상대팀 수비수나 심판과 충돌이 잦았다. 때문에 쓸데없이 경고를 받는 경우가 많았는데 노장선수로 자리매김하면서 부터는 후배들을 챙기고 상대 선수들과 충돌도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에피소드

  • 2007시즌 중반, 빅버드에서 펼쳐진 수원 삼성 블루윙즈경남 FC의 경기에서 교체 투입되어 추격골을 기록하였다. 그는 골을 넣고선 세리머니를 하지 않고 공을 집어들고 곧장 센터 서클로 달려갔다. 팀의 승리를 위해 노력하는 그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사례.
  • 2008년 5월 14일, 양산종합운동장에서 펼쳐진 부산 아이파크와의 경기에서 팀의 창단 100번째 골을 성공시켰다. 창단 100골 기념 티셔츠에 그의 실루엣을 그려 넣기도 하였다.


경력


같이 보기

외부 링크

참고

  1. 당시 경남 선수와 팬들도 그를 공쌤이라고 부르며 잘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