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범
프로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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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 프로필편집
연도 | 소속팀 | 직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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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 트레이너 |
2001 ~ 2003 | 경신고등학교 | 감독 |
2004 ~ 2008 | 인천대학교 | 코치 |
2009 ~ 2011 | 강원 FC | 스카우트ㆍ2군 감독 |
2012 | 상주 상무 | 공격코치 |
2016 ~ 현재 | 성남 FC U-18 | 감독 |
2016.09 ~ 2016.11 | 성남 FC | 감독 대행 |
유소년 생활편집
숭곡초등학교 시절에 축구를 시작하였고 경신중학교 축구부로 진학하였다. 이후 경신고등학교에 입학하였지만 고등학교 시절 워낙 몸집이 작았던터라 감독이 좋아할리 없었고 축구부를 들락날락하는 신세가 되었다.[1] 게다가 경신고등학교 2학년 시절에 발목 골수염에 걸려 아예 선수생활을 접을 위기에 빠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골수염으로 쉬던 동안에 키가 많이 자라 우여곡절 끝에 다시 축구를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차례 위기를 겪은 후 이를 악물고 연습에 매진한 구선수는, 3학년 시절부터 링커로 뛸 수 있었다. 하지만 1,2학년 시절 별다른 기록이 없었던 구선수를 유수의 대학 축구팀들은 외면했고, 당시 창단팀으로 고교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공개 테스트를 벌인 인천대학교에 가까스로 진학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구선수의 운명은 달라지게 된다. 당시 인천대 감독이었던 故임창수, 故차경복 감독을 차례로 만나면서 축구 선수로서의 기량이 급성장하게 되었던 것. 이후 대학축구 무대에서 이름을 떨치는 선수가 되었다.
프로 생활편집
1986년 인천대학교 졸업 후 럭키금성 황소에 입단하였다. 윙백으로 뛰면서도 예리한 킥과 함께 득점력까지 갖춘 구상범 선수는 데뷔시즌부터 럭금의 핵심선수로 발돋움하였고 2년차인 1987년에는 K리그 시즌 베스트 11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K리그에서의 활약을 발판으로 88년부터는 국가대표를 단골로 들락날락거렸다. 88년 올림픽, 90년 월드컵, 아시안게임 등 굵직한 대회마다 모두 이름을 올렸고, 90년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도 3경기 중 2경기를 선발 출장해 뛰었다.[2] 그러다 1994년, 남기설 선수와의 트레이드로 대우 로얄즈로 이적하게 되었다.
당시 대우는 구상범과 함께 박정배를 영입, 국가대표 수비라인을 구성하는 과감한 투자를 선보였다. 하지만 94년 미국 월드컵 준비로 구상범과 박정배 선수 둘다 대표팀에서 뛰는 날이 소속팀에서의 활동 기간보다 훨씬 길었고, 결국 1994년 K리그에서 대우 로얄즈는 전북 버팔로에 이어 최하위를 기록하는 최악의 결과를 받아들고 만다. 결국 1년만에 부산에서 퇴단한 구상범 선수는 1995년 자유 계약선수로 이적료 없이 포항 아톰즈에 입단하였다.
국가대표 생활편집
지도자 생활편집
1999년 당시 허정무 대표팀 감독 사단에 합류하여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트레이너로 첫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서울특별시 소재의 경신고등학교 감독으로 2001년부터 2003년까지 활동하였으며, 인천대학교 코치로 2008년까지 학원축구 지도자로 활동하였다. 2009년 신생팀 강원 FC의 스카우트 겸 2군 감독으로 프로 무대에도 오랜만에 얼굴을 비췄으며, 이후에는 상주 상무에서 코치로 1년 동안 활동하였다. 상주에서 코치로 활동한 뒤로 한동안 공백기를 가졌으며, 2016년부터 성남 FC의 지정 유소녀팀인 풍생고등학교의 감독으로 복귀하였으며, 2016년 9월 12일자로 성남 FC의 김학범 감독이 자진 사임하게 되자 풍생고 변성환, 남궁도 코치와 함께 대행직을 수행하였으나 하위 스플릿에 무승에 그쳐 성남을 승강 플레이오프까지 내려놓고 말았다. 여기에 성적 부진과 갑작스런 감독 대행직으로 부담감에 시달린 구상범 대행은 강원 FC와 경기를 앞두고 대행직에서 물러나 변성환 코치에게 대행의 대행직을 내주며 물러나고 말았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에피소드편집
- 불가사의하게도 구상범 선수의 활약도가 좋을수록 팀성적은 곤두박질치고, 구상범 선수가 국가대표 차출 등으로 소속팀에 소홀할 때에 팀성적이 좋아지는 이상한(?) 효과가 있었다. 일례로 구상범 선수는 1989년과 1990년에 럭금에서 1자리 수 출장에 그쳤는데 이 두해에 럭금은 K리그 우승과 준우승을 석권하였고, 구상범 선수가 럭금의 시즌 경기 대부분을 풀타임 활약했던 1987년과 1991년, 럭금은 리그 최하위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