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단축구협의회"의 두 판 사이의 차이

풋케위키, 대한민국 대표 축구위키 FootballK WIKI-
둘러보기로 이동 검색으로 이동
잔글 (작성중.....)
30번째 줄: 30번째 줄:
  
 
* 제1회 금융단 축구 춘계리그전  - 1969년 3월 22일 ~ 28일, 주최 한국일보, 장소 효창운동장, 7개팀 참가 예선후 4강토너먼트, 우승 조흥은행, 준우승 산업은행.
 
* 제1회 금융단 축구 춘계리그전  - 1969년 3월 22일 ~ 28일, 주최 한국일보, 장소 효창운동장, 7개팀 참가 예선후 4강토너먼트, 우승 조흥은행, 준우승 산업은행.
* [[국무총리배 금융단 축구대회|제1회 국무총리배 쟁탈 금융단 축구리그]]
+
* [[제1회 국무총리배 쟁탈 금융단 축구리그]]
 
** 금융단 축구 1차리그 - 5월 3일 ~ 15일, 장소 [[태릉선수촌]]구장, 우승 제일은행  
 
** 금융단 축구 1차리그 - 5월 3일 ~ 15일, 장소 [[태릉선수촌]]구장, 우승 제일은행  
 
** 금융단 축구 2차리그 - 5월 29일 ~ 6월 20일, 장소 [[효창운동장]], 우승 상업은행  
 
** 금융단 축구 2차리그 - 5월 29일 ~ 6월 20일, 장소 [[효창운동장]], 우승 상업은행  

2014년 10월 26일 (일) 19:26 판

금융단축구협의회(金融團蹴球協義會)는 금융단소속 축구팀들의 협의체이자 금융단 축구대회를 주관하는 단체였다. 1969년 설립되어, 금융단 축구리그 등 각종 금융단 축구대회를 주관하다가 1970년 금융단축구협의회 소속 축구팀이 한국실업축구연맹가 통합되면서 매년 대통령배 금융단축구대회국무총리배 금융단축구대회를 개최하는 역할을 하였으며, 1981년 대한축구협회에 흡수 해체되었다.


설립

1960년대 후반은 아시아 축구 최강을 자부하던 한국 축구에 있어 충격적인 사실의 연속이었다. 66년 북한이 월드컵 8강에 진입하고 68년 일본이 멕시코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하자 국내 축구계에 불어온 충격은 엄청났다. 그리고 북과 일본의 축구 발전에 대항하여 축구를 발전시킬 방안으로 3가지가 시행되었는데 하나는 중앙정보부장 김현욱의 양지축구단을 창단이고 나머지는 대한축구협회 재무이사 시절 장덕진이 설립한 금융단축구협의회와 회장 재임중 시행했던박스컵 국제축구대회이다.

그중 금융단 축구팀의 창단으로 설립된 금융단축구협의회는 2013년 현재 당시 창단된 금융단 소속 축구팀이 모두 해체되어 드러나는 성과가 없어 보이지만 당시 축구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변변한 실업 축구팀도 몇개 없어 축구인들은 운동보다 먹고 살기에 급급했을 만큼 매우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선수들의 안정된 생활을 보장하여야 축구발전과 전력 강화가 있을 수 있기에 실업팀의 증가를 고민하던 당시 축협의 구세주는 축협 재무이사인 장덕진이었다. 68년 멕시코 월드컵 이후 그는 재무부 이재국장[1]이자 대통령 박정희의 처조카 사위라는 막강한 파워를 이용하여 금융단 소속 12개 국책은행과 시중은행들에게 축구단 창단을 요청하였다. 당시 이재국장이 얼마나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냐면 은행, 보험, 증권, 금고 등 1500여개 모든 금융기관의 인사와 경영에 관한 주요결정의 책임자이자 금융기관의 대출한도와 대출금리를 정하며 대기업에 대한 여신관리도 책임지는 자리였다. 은행장들은 이재국장이 호출하면 언제든지 즉각 달려와야 했을 정도였으며, 은행장들도 이재국장을 한번이라도 만나기 위해서 동분서주 하는 위치였다. 한마디로 은행들의 행사여탈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요청이니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루시퍼였다. 요청 이 후 설립은 즉각적으로 이루어져서 그 전초전으로 1968년 10월 제1회 금융인체육대회[2]를 개최하였으며, 이듬해 1월 상업은행 축구단의 창단을 시작으로 3월 주택은행, 조흥은행, 제일은행, 외환은행, 산업은행, 신탁은행의 창단과 함께 금융단축구협의회를 결성하고 실업축구와는 독자적인 금융단 축구리그를 시행하게 되었다.

회원사

창립멤버

추가 가입사

주관대회

금융단축구협의회는 1969년 3월 설립후 한국실업축구연맹에 가입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리그를 운영하다가 1970년 8월 12개팀이 모두 실업축구연맹에 가입하면서 실업연맹에서 주관하는 대회에 참여하게 되었으며, 금융단팀 별도의 대회로 국무총리배 금융단 축구대회대통령배 금융단 축구대회만 개최하게 되었다.

아래는 1969년 3월에서 1970년 8월까지 금융단축구협의회에서 주관한 대회이다.

  • 제1회 금융단 축구 춘계리그전 - 1969년 3월 22일 ~ 28일, 주최 한국일보, 장소 효창운동장, 7개팀 참가 예선후 4강토너먼트, 우승 조흥은행, 준우승 산업은행.
  • 제1회 국무총리배 쟁탈 금융단 축구리그
    • 금융단 축구 1차리그 - 5월 3일 ~ 15일, 장소 태릉선수촌구장, 우승 제일은행
    • 금융단 축구 2차리그 - 5월 29일 ~ 6월 20일, 장소 효창운동장, 우승 상업은행
    • 금융단 축구 3차리그 - 7월 20일 ~ 8월 5일, 장소 효창운동장, 우승 조흥은행
    • 금융단 축구 4차리그 - 9월 3일 ~ 9월 14일, 장소 효창운동장, 우승 주택은행, 통합순위 1위 제일은행
    • 금융단 축구 5차리그 - 10월 19일 ~ 10월 28일, 장소 금성방직구장, 통합순위 1위 상업은행[3]
    • 금융단 축구 6차리그 - 11월 22일 ~ 12월 5일, 장소 효창운동장, 통합 우승 상업은행 [4]
  • 금융단축구기 기술평가회 - 1차 ? , 2차 8월 11일, 장소 서울운동장,
  • 제1회 금융.실업 올스타전 - 8월 21일 서울운동장, 금융단 선발 3 대 2 실업(한국대표 상비군) 선발
  • 제1회 대통령배 쟁탈 금융단 축구대회 - 9월 20일 ~ 29일 주최 한국일보, 장소 서울운동장 및 효창운동장, 우승 조흥은행
  • 금융단 축구선발팀 동남아 순방 - 1970년 1월 6일 ~ 2월 4일,
    • 6승(싱가포르 군경팀, 말레이시아 셀랑고FA, 페낭FA, 푸테라, 태국은행연합팀, 일본청소년대표) 3무(인도네시아 메단, 태국청소년대표, 후루카와전공)
  • 금융단 축구 동계강화대회 - 1970년 2월 21일 ~ 28일, 장소 부산공설운동장, 8개팀 2개조, 우승 산업은행, 서울은행 공동우승
  • 제2회 금융단축구 춘계리그전 - 1970년 3월 19일 ~ 26일, 장소 효창운동장, 8개팀 2개조 예선 후 4강토너먼트, 우승 주택은행
  • 제2회 국무총리배 쟁탈 금융단 축구리그
    • 금융단 축구 1차리그 - 4월 17일 ~ 5월 20일, 장소 효창운동장, 인천공설운동장, 금성방직구장, 건국대운동장 등, 10개팀 참가, 우승 주택은행
  •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 - 실업과 금융단 첫 동시 참가 이후 8월 한국실업축구연맹에 통합.
  • 제2회 대통령배 쟁탈 금융단 축구대회 - 12월 5일 ~ 12월 15일, 장소 부산공설운동장, 11개팀 참가, 우승 상업은행

통합 및 해체

평가

1969년 1회 금융단리그는 엄청난 인기를 누리게 되고 이에 자극받은 다른 은행들도 속속 금융단 팀을 창단하게 되어 12개팀에 이르게 되었다. 이후 군팀과 실업팀이 함께 하는 실업리그와 겸해서 개최되었다. 하지만 1983년 수퍼리그가 창설됨에따라 한 두팀씩 점점 해체되고 IMF 위기때 그나마 남아있던 팀들도 해체를 결정하게 된다. (국민은행은 해체했다가 재창단한 케이스) 금융단축구대회 및 리그의 경우, 1981년 대한축구협회가 금융단축구협의회를 흡수하면서 잠정 중단되었다가 1986년 부활해 몇회를 더 개최된 뒤 최종적으로 폐지되었다.

축구인들은 금융단 팀에 소속되어 안정된 생활을 누리게 될 수 있게 되었다. 2002년 월드컵 이후 대한축구협회 명예의 전당 선정에 있어서도 수퍼리그 설립보다 더 큰 평가를 받게 되었다.




같이 보기

참고

  1. 2014년 현재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의 지위.
  2. 일은 상은 공동우승 -1968년 10월 22일, 동아일보-
  3. 금융단 축구 시행 첫해라서 정확한 리그명도 통일되지 않았을 뿐더러 언제 리그가 끝나는지에 대해서도 명확하지 않았던 듯 하다. 그래서인지 이후 6차리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5차리그 우승팀을 결정하지 않고 통합 순위와 통합 우승팀만 보도되었다.
  4. 상은팀 종합우승 -경향신문, 1969년 12월 6일-
  5. 다른 팀들이 1980년대 초반 및 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사라질 동안에도 2012년까지 축구팀을 유지해왔으나, 2013년을 앞두고 해체를 선언했다. 이로써 금융단축구리그에 참가했던 은행 축구팀들은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