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원

김석원(1960년 11월 7일~)는 대한민국 국적의 전직 축구선수로, 1983년부터 1986년까지 K리그에서 선수로 활동하였다.

쌍용그룹 회장이었던 김석원 씨나, 미포조선에서 활동하였던 1993년생 김석원 선수와는 동명이인이다.


프로필편집

  • 이름 : 김석원
  • 출생일 : 1960년 11월 7일
  • 유스클럽 : 고려대학교 졸업
  • 신체 : 174cm / 64kg (선수 시절)
  • 국가대표 경력
1978년 AFC U-19 챔피언십 본선 대표
1979년 FIFA U-20 월드컵 본선 대표
1980년 AFC U-19 챔피언십 본선 대표
1981년 FIFA U-20 월드컵 본선 대표
1984년 AFC 아시안컵 본선 대표
1986년 FIFA 멕시코 월드컵 아시아예선 대표
(통산 A매치 8경기 출장 1골)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K리그 기록
연도 소속팀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1983   유공 코끼리 9 2 3 0 0 0
1984 17 6 5 1 0 0
1985 2 0 0 0 1 0
1986 0 0 0 0 0 0
통산 K리그 28 8 8 1 1 0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4년 3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유소년 생활편집

중앙대학교 부속중학교, 중앙대학교 부속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를 졸업한 선수이다. 중대부고 시절인 1978년 대한민국 U-20 청소년대표팀에 발탁되어, 한국 대표팀을 아시아선수권 우승으로 이끄는 활약을 보여주었으며[1] 이를 발판삼아 고려대학교에 진학하여 활동할 수 있었다. 고려대학교 시절에도 청소년대표팀에서 바쁜 시간을 보내었으나[2] 국가대표팀에는 부름을 받지 못하였다.


K리그편집

1982년 고려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유공 코끼리에 창단 멤버로 입단하였다. 당시 대우 로얄즈가 김석원을 비롯해 79학번 선수들을 영입하기 위해 유공과 경쟁을 벌였는데, 결과적으로 이태호, 정해원은 대우로 김석원 선수는 유공으로 스카우트 되었다는 후문.


국가대표 생활편집

1985년 7월까지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며 대한민국 대표팀의 32년만의 FIFA 월드컵 본선 진출에 공헌하였으나, 1985년 10월 왼쪽 무릎의 연골연하증이 악화되는 등 경기를 뛸 수 없는 몸이 되고 말았고 결국 1986년 3월 본선 무대 진출을 눈앞에 두고 월드컵 대표팀 명단에서 자진 하차하고 말았다. 이후 무릎 수술과 재활로 1년 넘는 시간을 보냈으나 끝끝내 회복하지 못한채 1987년 2월 선수 생활을 은퇴하고 말아 주위를 안타깝게 하였다.


은퇴 이후편집

은퇴 후 가족들이 있는 미국으로 건너가,[3] 한인 방송국에서 축구 해설가로 활동하였다고 한다. 최근에는 에이전트 사업 및 한국 - 미국 간 프로 진출 및 유학도 주선하는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플레이 스타일편집

86 월드컵 대표팀 부동의 왼쪽 윙어 자원이었으며, 빠른 스피드를 동반한 돌파 및 마무리 능력까지 갖춘 자원이었다. 무릎 부상으로 전성기를 채 맞이하기도 전에 은퇴해버린 것이 두고두고 아쉬운 선수 중 한명.


에피소드편집

김석원 선수의 아버지는 195,60년대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에서 하프백으로 활약하였던 김찬기 씨이다. 부자 축구선수가 모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로 활동한 셈. 특히 김찬기 씨는 1978년 AFC U-19 챔피언십을 앞두고, 대한민국 U-20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 뒤 아들인 김석원 씨를 청소년대표팀에 발탁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는데,[4] 그러한 입방아를 잠재우기라도 하듯 김석원 선수는 78년 대회에서 아프가니스탄 U-20을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하고 결승전 對 이라크 U-20을 상대로 선취골을 기록하는 등 한국대표팀의 우승에 공헌하는 맹활약을 보여주었다.


경력편집


같이 보기편집

  • 김찬기 (아버지, 前 국가대표팀 하프백)


참고편집

  1. 당시 이태호, 박윤기 등과 함께 청소년대표팀의 골게터로 통했다.
  2. 1981년 FIFA U-20 월드컵 본선 대표팀에도 합류하며, 2회 연속 U-20 월드컵에 출전하는 기록을 세웠다. 81년 대회에서는 최순호와 호흡을 맞추기도 하였다.
  3. 김선수가 선수 생활을 한국에서 보내고 있을 당시부터, 부친인 김찬기 씨를 비롯한 일가족은 미국으로 이민을 간 상태였다.
  4. 청대 선발 이전인 1978년 초, 대한축구협회가 추진한 서독 축구 유학 프로젝트 때도 김석원 선수의 이름이 올라갔다가 특혜 논란이 일면서 김석원 선수의 서독 유학이 불발된바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