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섭

파일:김이섭.jpg
포항 시절의 김이섭

김이섭(金利燮, Kim, Lee Sub, 1974년 4월 27일~)는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선수로, 1997년부터 2010년까지 K리그에서 활약한 골키퍼이다.


프로필편집

  • 이름 : 김이섭
  • 출생일 : 1974년 4월 27일
  • 신체 : 185cm / 78kg
  • 국가대표 : 2005년 국가대표 예비엔트리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K리그 기록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실점 득점 경고 퇴장
포항 스틸러스 1997 28 0 28 0 1 0
1998 31 1 47 0 0 0
1999 13 0 20 0 0 0
2000 5 0 8 0 0 0
전북 현대 모터스 2002 0 0 0 0 0 0
2003 19 0 28 0 0 0
인천 유나이티드 2004 15 0 15 0 0 0
2005 20 0 25 0 2 0
2006 11 0 9 0 0 0
2007 26 0 31 0 0 0
2008 13 1 13 0 0 0
2009 24 0 24 0 0 0
2010 12 1 25 0 0 0
통산 (K리그) - 217 3 273 0 3 0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0시즌 종료 시점 기준
연맹 공식 DB


유소년 생활편집

광주광역시에 위치한 숭의중학교, 숭신공고[2]를 거쳐 전주대학교를 졸업한 선수이다.


K리그편집

포항 시절편집

1997년 포항 스틸러스에 5순위로 지명되어 입단하였다. 당시 전주대에서 그다지 높은 활약도를 보여주지 못했던 김이섭 선수를 프로팀들은 외면했고, 포항에 가까스로 5순위로 입단하였으나, 당시 포항의 주전 GK 였던 이명열 선수의 군입대 공백을 완벽하게 메우며 FA컵 포함 32경기 출장 31실점이라는 0점대 방어율을 선보이며 프로 축구계를 놀라게했다. 덕분에 K리그 신인왕 후보로까지 올랐으나, 신인왕의 영광은 신진원 선수에게 내주고 말았다. 당대 최고의 유망주 키퍼로 많은 이들의 기대를 얻은 김이섭 선수였으나 1998년 31경기 47실점의 기대 이하의 활약을 펼친데 이어, 99년 부상으로 컨디션 회복에 차질을 빚으면서 조준호 선수와의 경쟁에서 밀려나 2선발로 활약하다 2000년 시즌 종료 후, 포항 스틸러스가 김병지 선수를 영입하면서 2001년 8월에 웨이버 공시된다. 당시 김병지, 조준호라는 국가대표급 골키퍼로 무장한 포항은 굳이 김이섭 선수를 보유할 이유가 없었던 것.


전북, 인천 시절편집

1년 간 각 구단의 입단테스트를 받던 김이섭은 서동명의 이적, 이광석상무 입대로 골키퍼 자원이 이용발 1명만 남은 전북 현대 모터스와 2002년 6월 입단계약을 맺었지만, 이용발에게 밀려 벤치만 달구다가 2003년 말에 FA 매물로 나왔고, 이를 인천 유나이티드가 재빨리 영입하면서 인천에 입단하게된다. 인천에서는 권찬수 선수와 나란히 1,2선발을 나누어 활약하다 2005년 1선발의 자리를 굳히게 되는데 당시 0점대 방어율을 선보이며 인천을 K리그 통합 1위의 자리에 올리며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덕분에 당시 아드보카트 감독이 이끄는 국가대표 예비엔트리에도 이름을 올렸으나 K리그 결승전 對 울산 현대와의 일전에서 5실점하며 국대 발탁이 좌절된 바 있다.[3]

이후 꾸준히 인천 유나이티드의 골문을 지키면서 매 해 1점대 초반 ~ 0점대 방어율을 보여주고 있는 김이섭 선수는 2010년 초반 송유걸과의 주전경쟁에서 밀려나는 듯 했으나 허정무감독의 부임 이후 제법 기용되었다. 그러나 후반기 인천의 실점율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김이섭 선수는 12경기 출장 25실점. 경기당 실점율이 2.0을 초과하는 상태로 시즌을 마쳤고, 결국 2010시즌 종료 후 은퇴하고 말았다. 그러다 다음해 윤기원 선수의 사망 이후 복귀가 검토되어 R리그를 치루며 준비를 했었지만 권정혁 선수의 입단으로 결론이 나면서 현역복귀가 무산된다. 이후 대건고 코치로서 제2의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2011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임중용 선수와 함께 정식으로 은퇴식을 가졌다. 임중용은 선수 명단에 등록되어 있어서 선수로서 마지막 경기를 치르고 은퇴하였지만, 김이섭은 명단에 등록되어 있지 않아 양복 차림으로 은퇴한 점이 조금 아쉬운 부분.

은퇴 이후편집

선수 생활 정리 후, 인천 U-18 팀인 대건고등학교 축구부 GK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대건고는 2013년 현재 우성용 감독, 임중용 코치, 김이섭 GK 코치라는 후덜덜한 라인업으로 인천팬들의 기대를 듬뿍 받고 있다. 2015년부터는 성인팀의 GK 코치가 되어 김도훈 감독을 보좌하고 있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PA 내에서의 활동폭이 넓은 것은 아니지만 꽤 안정적인 선방을 한다.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민첩성이 뛰어나 왠만한 슈팅은 거의 다 막아내 주는 편. 단점으로는 골킥을 들 수 있는데 굉장히 부정확하고 멀리 나가지 않아서 별달리 위협적이지 못하다.


에피소드편집

  • 인천에서는 이섭신으로 통한다. 그만큼 현역 시절 멋진 활약을 보여준 골키퍼이며, 현재는 인천의 유스팀인 대건고등학교 GK 코치로 후학들을 양성하고 있어 김이섭에 대한 인천팬들의 신뢰는 매우 높다.
  • 2009년 괴물같은 선방쇼를 보이며 전반기 단 3실점으로 인천에서는 김이섭과 함께 임중용, 안재준이 포즈를 취하고 있는 철옹성 티셔츠를 제작한 바 있다. 그리고 그 티셔츠를 만들어 판매하자 마자 인천은 DTD을 시전하며 추락하게 된다..
  • K리그 최고의 명승부로 손꼽히는, 1998년 K리그 준플레이오프 울산 VS 포항 2차전에서 김병지 선수에게 역사적인(?) 헤딩 결승골을 헌납한 선수가 바로 김이섭 선수였다.


경력편집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참고편집

  1. 인천 시절
  2. 현재의 숭의고등학교이다.
  3. 하필, 5실점하는 경기를 아드보카트가 직접 관전하고 있었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