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수
김창수 (1985년 8월 12일 ~ )은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선수로 2004년부터 K리그에서 활약 중이다.
프로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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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소년 시절편집
경상남도 창원 출신으로, 창원 상남초등학교, 부산 동래중학교를 거쳐 동명정보고등학교를 졸업한 선수이다. 동명정보고 졸업 후, 2004년 울산 현대 호랑이에 입단테스트를 받아 프로행에 성공하여 고졸 축구선수가 되었다.
K리그 생활편집
2004년 울산에 입단하긴 하였으나, 당시 김창수의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였다. 이 당시 울산은 이호, 장상원 등 수비형 미드필더 유망주들이 즐비한 상황이었고, 김창수 선수는 여기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였다. 결국 1년 반만에 울산에서 퇴단한 김창수 선수는 잠시 내셔널리그 진입을 위해 창단 준비중이던 창원시청 축구단에 몸담으며 몸을 만든 후 2006년 대전 시티즌에 입단하였으며, 대전에서 사이드 풀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하고 최윤겸 감독 등의 노력을 통해 실력이 일취월장하게 된다. 2007년 대전 시티즌의 주전 사이드 풀백으로 성장한 김창수는 김호 당시 대전 감독에 의해 부산 아이파크로 2:3 트레이드 되게된다.
김창수의 부산 합류는 부산에게 단비와도 같았다. 김창수 합류 이전까지, 심재원, 이장관 등 기존 사이드 수비수의 후계자 모색에 골머리를 앓던 부산은 김창수의 합류로 일거에 문제를 해결하는 결과를 낳았고, 김창수 선수는 부산에서 완전히 정착하며 좌우를 가리지않고 팀이 원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주장 자리와 함께 부산의 스타 플레이어로 성장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2012년 와일드카드로 런던 올림픽대표에도 뽑히면서 김선수를 조명하는 이들이 급증했고, 그해 K리그 시즌 베스트 11에도 들었다.[1]
2013시즌을 앞두고 5년간 뛰었던 부산을 떠나 J리그 팀인 가시와 레이솔로 이적하였다.
그리고 2016년 1월 12일, 전북 현대 모터스로 다시 K리그 복귀를 알렸다. 전북에서 시즌 개막전부터 오른쪽 풀백으로 선발출장하며 주전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가 싶더니 곧이어 찾아온 부상과 컨디션 난조로 한동안 출장하지 못했다. 오랜 공백 후 9월이 되서야 경기에 출장할 수 있었지만 리그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게 되어 국가대표팀에 재승선하기도 했다. 특히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같은 포지션의 최철순 선수가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로 올라가는 일이 많았기에 붙박이 오른쪽 풀백으로 출장하였다.
2017년 시즌 개막을 앞두고 3:2 대형 트레이드를 통해 울산 현대로 이적했다.
국가대표 생활편집
2008년 무렵, 이미 K리그 수위권 사이드 수비수로 등극한 김창수 선수는 박성화 감독이 이끄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대표로도 발탁되었으나 베이징올림픽 본선에서는 신광훈 선수에게 밀려 본선 경기에 단 한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였다. 이후 2009년 잠시 국가대표에도 뽑히는등 부산에서 올림픽대표와 국가대표로 드문드문 차출되었으나, 이상할 정도로 출장 기회는 부여받지 못하였다.
그러다 2012년 6월,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2012년 런던 올림픽대표팀에 와일드카드로 극적으로 발탁되었으며[2] 와일드카드 발탁 후 올림픽대표 최종 평가전은 물론 본선 조별예선 경기에서도 모두 선발 풀타임 출장하며 올림픽대표팀의 오른쪽 라인을 든든히 받쳐주고 있다. 이후 영국 올대와의 8강전 경기에서 오른쪽 팔골절을 당한 김선수는 아쉽게도 더이상 올림픽 본선 무대에서 경기를 나서지 못하였지만, 팀은 동메달을 획득하며 김창수 선수에게 군면제를 선물하는데 성공하였다.
플레이스타일편집
오른쪽 측면에서 왕성한 움직임을 보이는 사이드 자원이다. 2대1 패스를 통한 오버래핑에 능하며, 크로스도 수준급. 공수 양면에서 이렇다 할 단점이 보이지 않는다. 측면은 좌우를 가리지않고 모두 소화가능하나, 왼쪽에서의 플레이는 오른쪽에서의 플레이보다 다소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3] 대부분 경기에서 풀타임을 소화할 정도로 체력도 뛰어난 편. 이러한 장점들은 부산팬들이라면 모두 공감하는 사항이었으나, 2012년 런던 올림픽대표팀에서 김창수 선수가 대활약하면서 이러한 장점이 새삼 재조명되는 분위기다.
에피소드편집
- 울산 현대에서 퇴단 후, 창원시청 축구단에 몸담던 2005년 가을 김창수 선수는 부상 스트레스로 선수생활 은퇴를 고민하는 지경에 이르렀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창원시청 감독 박말봉 씨는 김창수 선수에게 포기하지말고 고난을 헤쳐나가라는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않았고, 이에 김창수 선수는 재기하여 대전 시티즌에 입단해 오늘의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 트위터로 오타를 자주 내기로 유명한듯. 얼마 전 팬에게 홍화씨[4]를 선물받고서 "홍아씨 먹고 빨리 낳을게요"라고 트윗해 많은 팬들이 "홍아씨가 누고? 뭘 낳는단 말이고?"하면서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묘하게 음담패설 같다.
경력편집
시즌 | 소속팀 | 리그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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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 2005 | 울산 현대 호랑이 | K리그 | |
2006 ~ 2007 | 대전 시티즌 | K리그 | |
2008 ~ 2012 | 부산 아이파크 | K리그 | |
2013 ~ 2015 | 가시와 레이솔 | J리그 | |
2016 | 전북 현대 모터스 | K리그 클래식 | |
2017 ~ 현 재 | 울산 현대 | K리그 클래식 |
같이 보기편집
참고편집
- ↑ 2006년 뽀뽀 이후 부산이 배출한 첫 베스트 선수였다.
- ↑ 원래 홍명보 감독은 김창수 선수가 아닌 이정수 선수를 와일드카드로 발탁하려 했으나, 이정수의 소속팀인 알사드가 이정수의 올림픽대표 차출을 거부함에 따라 꿩대신 닭(?)격으로 뽑은게 김창수 선수였다. 워낙 긴박하게 와일드카드 발탁이 변경된 관계로 김창수 선수 본인도 올림픽대표 최종명단 발표가 나온 후에야 자신이 올림픽대표에 뽑혔음을 알 수 있었다.
- ↑ 부산에서 박진섭이 뛰던 시절 등, 매우 드문 경우에만 왼쪽을 소화하였다. 그래도 왠만한 전문 왼쪽 사이드 자원들보다 나은 기량을 보여주었다.
- ↑ 골절에 좋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