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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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범(1984년 1월 1일~)은 대한민국 출신의 축구선수로 2004년부터 2013년까지 K리그에서 활동한 미드필더이다.



프로필

  • 이름 : 김형범
  • 출생일 : 1984년 1월 1일
  • 신체 : 174cm / 69kg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프로 기록 (실업 포함)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울산 현대 호랑이 2004 29 25 1 5 2 0
2005 14 13 4 1 1 0
전북 현대 모터스 2006 28 12 7 4 4 0
2007 6 5 2 0 1 0
2008 31 25 7 4 2 0
2009 1 1 0 0 0 0
2010 9 8 1 0 1 0
2011 4 4 0 0 0 0
대전 시티즌 2012 32 18 5 10 3 0
경남 FC 2013 21 17 8 0 1 0
통산(K리그) 175 128 35 24 15 0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4년 3월 1일 기준.

유소년 생활

보인정산고, 건국대학교를 거쳤다. 2002년 잠시 U-20 대표팀에 선발되기도 했다. U-20 대표팀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더 열심히 훈련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 한다.


울산, 전북 생활

2004년 2월 울산 현대 호랑이에 입단하게 되었다. 당시 울산의 김정남 감독은 김선수를 주목하여 데뷔 시즌임에도 많은 출장 기회를 부여하였고, (물론 정경호 등의 국가대표 차출 공백 등의 이유도 있었지만..) 그 기대에 부응하듯 김선수는 점점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2005년 후반기에 부상을 당한데다 같은 포지션에 이천수, 최성국등 당시 최고의 선수들이 있던터라 그의 입지는 좁아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2005년 전북 현대 모터스로 트레이드가 결정되었다.



트레이드 소식이 나왔을 때 당시 국가대표 선수였던 박동혁, 박규선을 내주고 유망주 1명 밖에 데려오지 못했다는 생각에 많은 전북팬들이 반발하였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오래지나지 않아 사라졌으니.. 시즌 첫경기인 감바 오사카와의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교체로 들어온 김형범은 드리블 돌파로 동점골, 그리고 프리킥 골로 역전골을 기록하며 전북에서의 데뷔전을 최고의 경기로 만들었다. 특히 염기훈과 호흡을 맞춘 스위칭 플레이[1]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많은 활약을 보여주어 결국 우승으로 이끈 일등 공신이 되었다. 2007년 시즌에도 시즌 홈 개막전부터 프리킥 골을 성공시키는 등 활약을 계속 이어갈 것으로 생각되었으나 갑작스런 부상을 당하게 되어 재활에만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08년에는 부상에서 복귀하여 전보다 더 큰 활약으로 팀의 에이스로 발돋움 하였고, 국가대표팀에도 선발되고 팀을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 시키는 등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 성남과의 경기에서 큰 부상을 당해 또다시 긴 재활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1년간의 기다림이 지난 후인 2009년 7월 13일, 드디어 후반 중반 기립박수를 받으며 그라운드를 밟았다. 하지만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투입되자마자 약 10분만에 곽희주의 태클로 인해 인대와 연골이 나가는 등 큰 부상을 당하게 된다.[2] 다시 1년이 지난 후 경기장에 복귀하긴 했지만 몸상태가 아직도 예전만큼 올라오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결국 2011시즌 4경기 출장에 그친뒤, 2011년 12월 대전 시티즌으로 1년 임대가 결정되었다.


전북을 떠난 후

대전에서의 2012년은 김형범 선수에게 전화위복의 장이 되었다. 시즌 초반에는 대전의 미약한 조직력 속에 김형범 선수의 분전도 녹아들지 못하는듯 했지만, 케빈, 바바 등이 김형범 선수와 연계 플레이로 공격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하면서 김선수의 활약도와 대전의 성적도 반등하게 되었다. 이후 2012시즌 내내 김선수는 대전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프로 데뷔 이래 단일시즌 기준 가장 많은 출장 횟수를 기록하며 전성기 폼을 되찾는데 성공하였다. 2013년에는 전북으로 복귀한 것이 아니라 경남 FC로 이적을 선언해 세간을 놀라게 하였는데..[3] 13시즌 경남에서 김선수는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8골을 기록하며 건재함을 과시하였지만, 여름 허리 부상을 당했고 시즌 종료 후에는 발등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당하면서, 경남과의 재계약은 물론 타팀 이적에도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2014년 5월 21일, 태국 프리미어리그 부리람 유나이티드로 전격 이적하였다. 계약 기간은 1년 6개월이었다고.. 그러나 부리람은 김형범을 리그에 등록시키지 않는 실수를 저질러 김선수는 리그가 아닌 컵대회 4경기 출장에 그쳤다. 결국 한국으로 돌아와 계약을 해지하고, 그 후로 무적선수로 지내다가 2015년 겨울, 결국 은퇴를 선언하였다.


플레이 스타일

예전에는 빠른 발로 상대 수비진을 흔들어 주는 돌파형 측면 공격수였다. 하지만 전담 키커로서의 역할을 수행한 이후로는 돌파보다는 킥에 집중하는 듯 하다. 역시나 날카로운 크로스와 정확한 프리킥이 최고 장점이다. '무회전 키커'로 알려졌지만 사실 무회전 보다는 큰 각도로 휘어지는 킥이 특기. 좌우 측면을 번갈아 가며 스위칭 하며 가끔씩 중앙으로 올라와 중거리슛을 쏴대는데 성공률이 상당히 높다.


에피소드

  • 2006년 교통사고로 인해 한동안 출장하지 못하였는데 같이 차에 타고 있던 사람은 바로 염기훈이었고 염땜빵이 이때 생겼었다. 첨언으로 덧붙이자면 당시 교통사고에서 운전자 김형범 선수가 무면허상태였던지라 논란이 된바 있으며 이후 사건 발생 16년만에 김형범 본인 등판으로 해당 사건 피해자와는 원만한 합의를 완료한 사항이었으며 여타 관련 루머는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하였다.[4]
  • 2009년 K리그 우승으로 이끈 최강희 감독이 팬들에게 다가와 양복안에 입고 있던 유니폼을 보여줬는데 22번 김형범이 새겨진 유니폼이었다. 긴 부상으로 상심하게 된 애제자를 생각한 가슴찡한(?) 스토리.
  • 역대 최다 K리그 프리킥 골 2위를 기록 중.[5] 어떤 기사에서는 다른 선수가 1위로 되어있는데 PK도 포함시킨 잘못된 기록이라고 합니다.


경력

  • 2014.6 ~ 2014.12 : 부리람 유나이티드 / 태국 프리미어리그


같이 보기

외부 링크

김현회(은퇴 선언 김형범 "나는 45점짜리 선수였다")


참고

  1. 이 때가 좌기훈 우형범 시절이다.
  2. 전북 팬들은 지금도 김형범에게 태클로 부상을 입힌 곽희주를 엄청나게 싫어한다.
  3. 대전 시절부터 경기를 소화한 뒤 병원에 찾아가 무릎 치료를 받고 다시 경기를 소화하는 시간의 반복이었다고 한다. 전북 입장에서는 다시 뛰기 어려운 폼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4. 관련 링크 :[1]
  5. 2011시즌 에닝요 선수가 프리킥 골을 몇개 기록해서 김형범 선수의 기록을 넘어섰음. 현재는 에닝요가 1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