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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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김효일.jpg
전남 시절 김효일

김효일 (1978년 9월 7일 ~ )은 K리그내셔널리그 무대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던 대한민국 국적 미드필더다.



프로필

  • 본명 : 김효일 (金孝日, Kim Hyo-Il)
  • 출생일 : 1978년 9월 7일
  • 등번호 : 38


  • 국내 기록
소속팀 리그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전남 드래곤즈 K리그 2003 19 11 0 0 2 0
2004 16 9 0 0 0 0
2005 17 3 0 0 3 0
2006 35 10 1 2 6 0
경남 FC 2007 29 11 1 0 1 0
2008 25 8 1 1 5 0
부산 아이파크 2009 12 4 0 0 0 0
2010 11 8 0 0 0 0
미포조선 KNL 2011 13 - 1 1 1 0
통산 K리그 - 164 64 3 3 17 0
KNL - 13 - 1 1 1 0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4년 3월 1일 기준.


프로 입단 이전까지

서울 광희초등학교, 중동중학교, 강동고등학교를 거쳐 경상대학교를 졸업한 선수이다. 김효일 선수 본인 말에 의하면 경상대 재학 시절만 해도 자신이 프로축구 선수 될 수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다고 한다. 경상대가 축구 명문대학도 아니었거니와, 변변한 국가대표 경력 하나 없었기 때문. 심지어, 경상대 졸업을 앞두고는 체육교사로 취직하기 위해 교생 실습도 다녔을 정도였다. 그러나 2002년, 우연한 기회에 미포조선 축구단에서 김효일 선수를 입단테스트에 부르면서 생각지도 않은 반전의 기회가 찾아왔다. 김효일 선수의 활동량과 적극적인 팀워크에 주목한 미포조선 스탭진은 김효일 선수의 영입을 결정하였고, 미포조선에서 뛰던 김효일 선수의 모습을 지켜본 이회택 당시 전남 드래곤즈 감독에게 재능이 엿보이는 선수로 리스트에 오르면서 2003년 프로 입단에 성공하게 된다.


프로 입단 후 꾸준한 활약

프로팀 입단까지의 과정은 드라마틱했지만, 전남 드래곤즈 입단 당시만 해도, 김효일 선수에게 주목하는 축구팬은 아무도 없었다. 전 소속팀 미포조선에서도 에이스 선수 축에도 끼지 못하는 선수였고, 포지션도 마당쇠에 가까운 멋은 없고 고생만 하는 수비형 미드필더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꿈만 같았던 프로무대에 입성한 김효일 선수는 각고의 노력으로 기량을 끌어올려 미포조선 시절보다 더 알찬 기량과 전술적 이해로 전남 드래곤즈의 선발 자리를 꿰차는데 성공한다. 특히 김남일 선수의 이적 이후, 비어있던 전남의 주전 홀딩 자리는 김효일 선수에 의해 메워지게 된다. 특히 김효일 선수의 전남 시절 하일라이트는 2006년 FA컵이었다. 동 대회에서 전남은 우승컵을 들어올리는데 김효일 선수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는데, 특히 FA컵 2006 결승전에서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상대해 당시 백지훈, 이관우 등, 화려한 수원의 미드필더 진을 완벽히 봉쇄하는 것도 모자라 결승골까지 터뜨리며 원맨쇼급 활약을 펼쳐보인것. 덕분에 김효일 선수는 대한민국 FA컵 2006년 MVP를 수상하며 화려하게 전성기를 만끽하였다. 그리고 FA컵 우승 한달뒤, 김효일은 전남에서 경남 FC로 FA로 이적했다. 당시 경남이 김효일 선수 영입에 지불한 돈은 약 6억 정도였다.


경남에서의 활약

2007년 경남 FC에 입단한 후, 경남의 주장 자리까지 떠맡았다. 앞선 2006시즌 김근철, 김도근, 이창엽, 김성재 등을 기용했으나, 별 재미를 못봤던 경남 이었는데 김효일 선수 입단 이후에는 김선수 중심으로 재편성되어 안정감을 불어넣는데 성공했다. 박항서 감독은 김 선수를 첫시즌부터 주장으로 선임한 것도 모자라, 기존에 중앙에서 경기를 풀어가는 역할을 맡고 있던 김근철처진 미드필더로 내리고 김효일을 공격형 미드필더로 올리면서 대반전을 일으켰는데, 생각보다 꽤나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안정감을 발판으로 경남은 그 해 K리그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이라는 파란을 일으키며 화제가 되었다. 이 때 경남의 6강행 성공에는 까보레, 뽀뽀의 대활약도 빠질 수 없지만, 김효일도 그 한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6강 플레이오프 진출 이듬해인 2008년 시즌 조광래 감독의 개인 전술 변화로 오른쪽 윙백의 역할도 맡지만 중반기 이후 부상과 컨디션 저하등으로 경남 FC의 주전자리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불과 1년도 안되는 사이에 선수단 주장에서 후보선수로 전락하고 만 것이었다. 이에 김효일 선수는 구단 수뇌부와 마찰을 일으킨 끝에 경남 FC를 퇴단, 사실상 방출 상태로 약 6개월 가량을 축구를 쉬고 말았다. 이후 2009시즌을 앞두고 김효일은 부산 아이파크에 입단하는데 성공하였다.

부산 시절과 이후

김효일 영입 당시 부산 스탭진은, 전남과 경남에서 보여줬던 성실한 플레이와 견고한 미들라인 구축의 선봉장 역할을 부산에서도 해주길 희망했다. 그러나 김효일 선수의 부산 입단 당시 몸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30대 초반이었던 김효일 선수가 6개월동안 실전무대 소화를 못하면서 경기감각 및 체력적인 부분이 급저하되고 말았고, 이를 다시 회복하지 못한 것이다. 그 결과, 45분 짜리 선수라는 혹평이 부산 팬들 사이에서도 쏟아지게 되었고, 결국 2010시즌까지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다 시즌 종료 후, 부산에서 방출되었다. 부산에서 방출 후 내셔널리그의 친정팀인 미포조선에 입단했지만 13경기를 소화하는데 그치며 퇴단하였고, 12시즌부터는 필리핀 축구리그로 가서 Loyola FC, Stallions FC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후 2014년, 내셔널리그 충주 험멜에 플레잉코치로 입단하며 오랜만에 국내축구팬들에게 근황을 전했다.


업적 및 수상

클럽


개인


같이 보기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