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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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희근.jpg
대구 FC 시절 나희근

나희근(1979년 5월 5일 ~ ) 는 대한민국 국적의 전직 축구선수로 2001년부터 2007년까지 K리그에서 활동한 미드필더이다.



프로필

  • 이름 : 나희근
  • 출생일 : 1979년 5월 5일
  • 국적 : 대한민국 대한민국
  • 신체 : 178cm / 72kg
  • 국가대표 경력
1998년 ~ 1999년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
2000년 시드니 올림픽대표팀 강화 훈련 참가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K리그 기록
소속팀 리그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포항 스틸러스 K리그 2001 1 1 0 0 0 0
2002 0 0 0 0 0 0
2003 0 0 0 0 0 0
대구 FC 2004 12 3 0 0 1 0
2005 21 11 1 0 1 0
2006 5 2 2 0 0 1
2007 1 1 0 0 0 0
통산 (K리그) - 40 18 3 0 2 1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2년 3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유소년 생활

청소년대표 나희근

동북고등학교 시절부터 김은중 선수와 함께 전도유망한 공격 자원으로 기대를 모았던 선수이다. 동북고 시절 부동의 스트라이커였던 김은중 선수가 고교 중퇴를 선언하고, 대전 시티즌에 입단하자 빈자리를 나희근 선수가 메워 활약하였다. 이후 김은중, 나희근 두 선수는 나란히 1998년 AFC U-19 챔피언십에 참가하였고, 김은중 선수는 이동국 선수와 함께 98년 청소년대표팀의 투톱으로 대활약하였다. 이에 질세라 나희근 선수도 측면과 중앙을 오가며 활약. 준결승전에서 카자흐스탄 청소년대표팀을 상대로 선취골을 터뜨리며 팀의 대회 결승행을 이끄는 알짜배기 활약을 보였다. 결국 동대회는 한국 청소년대표의 우승으로 마무리지어졌고, 쿠칭참사의 기억을 말끔히 씻어낼 새로운 황금세대의 등장이라고 축구팬들의 많은 기대를 모았다.


세계 청소년 월드컵의 기억

1998년 AFC U-19 챔피언십 우승을 이끈 박창선 감독은 3-5-2 전술을 사용해 톡톡히 재미를 보았으나, 박감독이 청소년대표 선발과 관련한 뇌물 수수 혐의로 경질되면서 대표팀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1] 박감독의 후임으로 청대 지휘를 맡은 조영증 감독은 4-4-2로 체제로 팀을 개편하였고, 기존 3-5-2 전술의 플레이메이커였던 정용훈이 엔트리에서 제외되고 새로운 플레이메이커로 김경일이 기용되는등 대대적인 리빌딩 작업에 착수했다. 이러한 경쟁 속에서도 나희근 선수는 자신의 보직을 보장받으며 99년 나이지리아에서 개최된 FIFA U-20 월드컵에 참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이지리아 청소년대회는 쿠칭참사 만큼은 아니었지만, 실패의 기록이었다.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하길 기대했던 김경일은 상대팀의 압박에 녹아내려 버렸고, 당황한 한국 청소년대표들은 킥 앤 러쉬 축구외에 달리 대안이 없었다. 결국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채, 포르투갈우루과이 청대에게 잇달아 패한 한국 청소년대표팀은 3차전 말리와의 경기에서 4:2 승리를 거두며 체면 치레를 하게된다. 이 때 나희근 선수도 PK로 골을 기록하지만, 이전까지 김은중과 나희근 선수의 서브 멤버 정도로 여겨졌던 설기현 선수가 2골을 몰아치며 청소년대표의 희망으로 떠오르게 된다. 이후, 설기현 선수는 한국 대표팀의 공격자원으로 차근차근 성장해나갔고, 나희근 선수는 청대 호출이 잦아들게 되었다.


K리그

아주대학교를 졸업하고 2001년 드래프트에서 포항 스틸러스에 3순위로 지명되어 프로 생활을 시작하였다. 당시 포항에는 최순호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었고, 한국축구 역사상 손꼽히는 천재 스트라이커 출신인 최감독이 나희근 선수를 키워줄거라 기대하는 팬들도 더러있었다. 그러나.. 최감독의 지도 스타일은 나선수와 충돌을 일으켰고, 결국 3년동안 포항 2군에 머무는 시련을 겪게된다.

이후 2004년, 노상래의 은퇴 후 공격진 확보에 고심하던 대구 FC에 입단했는데.. 박종환 감독은 나선수를 당초 예상대로 공격형 미드필더로 쓰기보다 윙백으로 전환시키는 수완을 발휘하였고, 예상외로 윙백에서 그럭저럭 활약을 보이면서 2005년 한시즌 20경기 이상 출장에 성공하는 등, 성공적인 행보를 이어나갈 것으로 기대하였다. 하지만.. 2006년 5월, 對 광주 상무와의 경기에서 왼쪽 무릎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큰 부상을 당하면서 그대로 전력 아웃, 이듬해인 2007년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정리하게 된다.


플레이 스타일

에피소드

2006년 대구 FC 홈 개막전에서 2골을 몰아치며 주간 MVP를 수상했던 바 있다.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던 시절에는 변변한 1군 출장도 없다가, 대구에 와서 윙백으로 보직 변경 후 1경기 2골을 성공시키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셈. 이에 많은 이들이 '나희근 선수도 드디어 포텐 터지는건가?' 하고 기대했었는데.. 현실은 그 해 나선수의 출장은 5경기에 그치고 말았다. 요컨대 최후의 불꽃과도 같은 활약이었던 셈.. 현제 대구에서 달성군 현풍에서 축구 교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선수를 육성하고있다 현제 현풍상회에 식당을 운영중 인걸로 전해지고 있다

경력


같이 보기

외부링크

참고

  1. 이후 박감독 기소건은 무혐의로 밝혀져 축구계에 복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