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병준

파일:노병준.jpg
포항 시절 노병준

노병준(1979년 9월 29일~)는 대한민국 출신의 축구선수로 2002년부터 K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다.


프로필편집

  • 이름 : 노병준
  • 출생일 : 1979년 9월 29일
  • 신체 : 177cm / 67kg
  • 국가대표 경력
2000년 U-23 올림픽 대표 상비군
2000년. 2003년 국가대표 상비군
2010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통산 A매치 6경기 출장 1골)
  • K리그 기록
소속팀 리그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전남 드래곤즈 K리그 2002 5 5 0 0 0 0
2003 39 36 7 4 6 0
2004 28 27 3 3 4 1
2005 29 27 6 1 1 0
2007 0 - - - - -
포항 스틸러스 2008 21 19 5 0 1 0
2009 27 19 7 5 3 0
2010 6 5 1 0 1 0
울산 현대 2010 14 13 1 1 0 0
포항 스틸러스 2011 34 29 5 2 2 0
2012 35 33 7 2 1 0
클래식 2013 26 26 6 1 1 0
대구 FC 챌린지 2014 19 12 4 3 4 0
2015 34 29 7 4 5 0
2016
통산 (K리그) 클래식 - 264 240 48 19 21 1
챌린지 - 53 41 11 7 9 0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6년 1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유소년 생활편집

부산광역시에서 초,중,고를 모두 나왔으며, 장산국민학교 시절부터 축구 선수로 활동했다. 수영중학을졸업하고 동래고 재학중, 우연찮게 동래고 경기를 관전했던 이회택 당시 한양대 감독에 눈에 들어, 한양대로의 진학을 결정하였다. 한양대에서 대활약하며 국가대표로까지 뽑히는 등 대학권에서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통했으며, 한양대 졸업 후 은사인 이회택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던 전남 드래곤즈에 입단하게 되었다.

프로 생활편집

전남 입단편집

2002년 전남 드래곤즈에 계약금 2억 5천만원, 연봉 2천만원에 4년 계약으로 입단하였다. 전남 입단 당시, 많은 기대를 모았으나 메디컬 테스트에서 B형 간염 보균자임이 밝혀지면서 주로 교체출장 요원으로 경기를 나설수밖에 없었다. 조금만 경기를 뛰어도 지친다는 세간의 선입견 속에서 맘고생이 심했던 노선수는, 재활을 거쳐 어느정도 자신의 신체적 조건을 극복하면서 2003시즌부터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하였고, 당시 전남에서 몇안되는 밥값하는 공격수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1]

전남에서 4년동안 활약한 노선수는 2005시즌 종료 후, FA가 되었는데 전남측은 나름대로 노선수와 재계약하려고 꽤 높은 금액을 제시했지만[2], 결국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협상이 결렬되고 말았고, 이후 경남 FC의 구애로 협상을 벌였지만 역시 연봉 문제로 협상이 결렬되었다.[3] 결국 K리그 어떤 팀도 노선수를 영입하지 않으면서 FA 미아가 되버린 상황, 이에 노병준은 홍순학, 이정운 등 다른 선수와 함께 유럽 진출을 모색한다.[4]


오스트리아 진출편집

2006년 2월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의 그라츠 AK (소위 GAK) 에 연습생으로 입단한 노선수는, 관계자들의 좋은 평가를 얻으며 입단 계약을 추진했으나 전남 드래곤즈 측이 노선수의 이적 동의서를 발급하지 않으면서 GAK 입단이 연기되었고, 이에 노선수측과 전남측은 엄청난 신경전을 벌였다. 결국 FIFA와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중재로 이적 동의서를 발급받은 노선수는, 2006년 7월 정식계약을 체결하고 데뷔전에서 도움을 기록하는등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숨겨진 유럽파 선수로 한동안 조명을 받았다.

그러나 오랫동안 컨디션 조절을 못한탓에 초반의 임펙트있는 활약도에 비해 갈수록 체력이 딸려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고, 결국 2006/2007 시즌 종료 후, GAK 측이 계약해지를 통보함에 따라 자신이 수개월전 진흙탕 싸움을 벌였던 전남으로 복귀해야만 했다.[5]


국내 복귀와 포항 입단편집

복귀한 노선수에 대한 전남의 반응은 냉담했다. 6개월동안 2군 무대에서도 모습을 보이지 않던 노선수는 2007 시즌 종료 후, 이적을 모색했고 이에 부산 아이파크를 비롯해 여러팀들이 노선수에 대해 영입의사를 보였던바 있다. 결국 2008년 이적시장 마감 직전, 한양대 시절 은사이자 당시 포항의 수석코치였던 박창현씨의 도움으로 이적료 1억 연봉 1억원에 포항으로 이적하게 된다. 이적 직후 바로 부상을 당하기도 했지만, 포항에서 슈퍼서브로 화려하게 부활에 성공. 2009년 주전으로 발돋음 하여 2013년 현재까지 꾸준히 활약중에 있다. 13시즌에는 어언 35세의 나이에 이르렀음에도, PA 근처에서의 공격 본능을 번뜩이며 중요한 고비때마다 한방씩 터뜨려줘 포항의 13시즌 우승에 공을 세웠다.


대구 이적 이후편집

하지만 13시즌 이후 팀이 노장과 고연봉 선수들을 대거 정리하면서 노선수 역시 팀을 나오게 되었다. 광주 FC 등 여러 팀에서 제의를 받은 가운데 대구 FC에 입단. 베테랑으로서 팀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물론 경기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경기장 사이드로 넓게 퍼져 볼을 받은 후 중앙으로 드리블 돌파를 즐긴다. 퍼스트 터치가 일품이며, 페널티에리어 근처에서 골대 구석으로 감아차는 프리킥 또한 정확한 편. 선발로 나왔을때보다 상대팀 선수들이 지친 후반 조커로 나왔을때 뒷공간을 파고 드는 스타일이 잘 먹힌다.


에피소드편집

  • 유년기 시절에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축구부 회비를 당시 부산시 축구협회 부회장이었던 박수관 씨가 지원한 바 있다.
  • 노병준 선수는 B형 간염 보균자로 풀타임을 뛸 체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때문에 전남 드래곤즈에서는 조커로 활약할 수 밖에 없었다. 허나 체력이 부족하다는 평을 비웃기라도하듯 도합 300경기가 넘는 출장기록을 남기며 K리그의 레전드로 발돋움했다.
  • 포항 스틸러스에서 방출된 이후로도 팀에 대한 애정을 보이는 선수다. 여러모로 얼굴 붉힐 일이 있었던 전남과 달리 포항에서는 김기동에 이은 레전드 후보에 오를 만큼 팀 및 팬들과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인 듯? 덕분에 대구 팬들에게는 영 점수를 못 따고 있다...


경력편집

  • 2006 ~ 2007 : 그라츠 AK /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2001 ~ 2003년 사이, 전남은 약 120억에 가까운 물량공세를 퍼부으며 각급 대표 공격수와 외국인 선수들을 수집했지만, 모조리 먹튀만 뽑아 실패했던 비참한 역사가 있다. 결국 2004년 스카우트 비리 파동이 터지면서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 대략 이유가 밝혀지긴 했지만.. 그나마 이때의 흑역사급 스카우트 과정으로 뽑힌 선수 중, 현재까지 K리그에서 뛰고있는 유일한 선수가 노병준 선수다.
  2. 스카우트 비리 파문이 터진 직후, 포스코측이 전남의 예산을 엄청나게 깍았기 때문에 당시 전남은 돈이 상당히 쪼들리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꽤 섭섭지않은 금액을 노선수에게 제시했었다는게 전남측의 증언이다.
  3. 당시 노선수의 FA 이적료가 대략 7 ~ 8억이었기 때문에, 다른 팀이 노병준을 데려갈 경우 10억을 훌쩍 넘기는 돈을 들여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4. 말이 좋아 유럽 진출 모색이지, 결국 일종의 도박이나 다름없었다. 유럽 진출마저 실패하면 다음 선수 등록기간까지 반년은 공식 경기를 뛸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기 때문.
  5. 노병준 선수는 FA 이적료가 발생하는 신분이었기 때문에, 전남 외 타 K리그 구단이 노선수를 영입하고자 한다면 수억원의 이적료를 전남에 지불해야하는 상황이었다. 이에 K리그 구단들은 노선수 영입을 타진하지 않았고, 노선수는 울며 겨자먹기의 심정으로 전남으로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