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웨이펑

엠블럼키스 세리머니를 펼치는 리웨이펑

리웨이펑(중국어 간체: 李瑋鋒, 영어: Li Weifeng, 1978년 1월 26일 ~ )은 중국 국적의 축구선수이자 축구인으로 2009년부터 2010년까지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활약한 중앙 수비수다. 2015년 7월까지 현역으로 활동 후 은퇴하였다.


프로필편집

  • 이름 : 리웨이펑 (중국어 간체: 李瑋鋒, 영어: Li Weifeng)
  • 국적 :   중국
  • 출생지 :   지린 성 창춘 시
  • 출생일 : 1978년 1월 26일
  • 신체 : 182cm / 75kg
  • 국가대표 경력
2000년 AFC 아시안컵 본선 대표
2002년 FIFA 한일 월드컵 본선 대표
2004년 AFC 아시안컵 본선 대표
2007년 AFC 아시안컵 본선 대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예선 대표
1998년 ~ 2011년 중국 축구 국가대표
(통산 A매치 112경기 출장 14골)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K리그 기록
연도 소속팀 리그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2009   수원 삼성 블루윙즈 K리그 26 0 1 0 7 0
2010 29 0 1 1 9 0
통산 K리그 55 0 2 1 16 0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6년 1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선수 생활편집

K리그 이전편집

1998년 선전 핑안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한 리웨이펑은 당시 감독으로 부임한 차범근감독에게 중용받으며 주전으로 도약했다. 2002 월드컵에서 좋은 활약을 보인 그는 중국의 이동전화단말기 제조업체인 科建(커즈안)이 에버튼과 2년간 스폰서 계약에 리웨이펑의 1년 임대 옵션이 포함되면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했으나 1경기만 뛰고 친정팀으로 복귀하였다. 2005년 선전 젠리바오의 AFC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행을 이끌었는데 당시 조별예선에서 같은 조에 속한 은사 차범근감독이 이끄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최종전에서 신펑의 결승골을 도우며 팀의 1:0 승리를 이끌었고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제치고 8강에 진출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1] 선전 젠리바오의 재정문제로 2006년 600만위안의 이적료로 상하이 선화로 떠난 리웨이펑은 전북 현대와의 AFC 챔피언스리그 8강전에서 뼈아픈 실수를 범한다. 1차전 홈경기에서 1:0으로 승리했던 상하이 선화는 2차전 원정 경기에서 선제골을 넣었지만 리웨이펑이 제칼로의 복부를 가격하는 행위로 퇴장당하면서 4:2로 패배하였고 결국 탈락하고 말았다. 경기 후 감독 우진쿠이는 팀의 패배원인으로 리웨이펑의 퇴장을 꼽으며 그를 공개적으로 질책하였다.[2]

리그 준우승 팀 상하이 선화에서 기회를 잡지못한 그는 350만위안에 예전 선전 핑안과 중화인민공화국 국가대표팀의 감독이었던 주광후가 지휘봉을 잡고 있는 우한 광구로 이적하였다. 그러나 2008년 9월 28일 베이징 궈안과의 리그 경기에서 난투극에 휘말렸고, 중국 축구협회로부터 6경기 출장 정지와 벌금 8천 위안의 벌금을 부과받는 중징계를 받았다. 이 징계로 1부리그 잔류에 매우 큰 타격을 입게 된 소속팀 우한 광구는 격렬히 항의하였지만 소용이 없자, 징계에 불복하여 심판을 폭행하고 잔여 경기를 거부하여 2008 시즌 전경기가 몰수패 처리되고 2부리그로 강등되었다. 우한의 2부리그 강등이 결정되자, 우한 광구에 소속된 비연고 출신 고연봉 선수들은 일제히 이적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고, 리웨이펑도 이에 포함되었다. 하지만 높은 연봉과 많은 이적료, 6경기 출장 정지의 징계 때문에, 중국 슈퍼리그 내의 다른 수비수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이적할 팀을 구하기 힘들게되었다. 이러한 찰나, 아시아축구연맹에서 아시아쿼터제를 도입하면서 은사인 차범근 감독이 그에게 관심을 보였고 이에 따라 2009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하게 되었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 시절편집

 
가시마와의 경기에서 선제골을 기록한 리웨이펑

처음 리웨이펑이 왔을때 수원팬들은 지나치게 거친 플레이로 팀에 해가 될 것이란 우려를 보였다. 이러한 우려는 시즌전 홍콩 구정컵 스파르타 프라하와의 경기에서 경고누적으로 퇴장당하면서 현실로 이어지는 듯 했다.[3] 그러나 J리그 챔피언 가시마 앤틀러스와의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1차전에서 리웨이펑은 팀의 선제골을 기록하면서 팀의 4:1 대승을 이끌었다. 당시 리웨이펑은 엠블럼에 키스하는 세리머니로 수원팬들에게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었다. 이 경기 후 수원팬들은 리웨이펑 짜요 라는 구호로 그를 응원하였다. 또한 리웨이펑은 친정팀 상하이 선화와의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3차전 원정경기에서 동점골을 성공시킨뒤 격렬한 세리머니 대신 관중석에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 세리머니로 자신을 응원해준 옛 팬들에 대한 예의를 표시하기도 하였다.

2010년에는 전북 현대에서 더 좋은 연봉을 제시받았지만 차범근감독과 팬들을 버리고 떠날 수 없다며 이를 거절, 수원 팬들에 대한 의리를 보이기도 했다. 수원에서는 주로 중앙 수비수와 오른쪽 풀백으로 활약하였으며 적극적인 오버래핑을 간간히 선보이기도 하였다. 2010시즌 종료 이후 양자합의하에 계약을 해지하고 수원을 떠났지만 2011년 여름 휴가때 빅버드를 찾기도 하는 등 수원팬들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과시하고 있다.[4] 2014년 겨울 휴가에도 3년만에 찾아왔다.[5]



톈진 터다 시절편집

2011년 중국리그 준우승팀 톈진 터다로 이적한 리웨이펑은 소속팀의 16강행을 이끌었으나 닥공 전북 현대와의 16강 원정경기에서 0:3으로 완패하면서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텐진 터다는 2012년 AFC 챔피언스리그에도 출전하는데 성남 일화와 같은 조에 속해있다.[6] 중국으로 복귀한 이후에는 국가대표로도 선발되며 선수 생활의 끝자락을 화려하게 보내는 중. 2014년에는 텐진 테다의 부주장을 맡아 활동하였다.

2015년, 리웨이펑은 톈진 터다의 아리에 한(Arie Haan, 1948.11.16 ~ ) 감독의 리빌딩 계획으로 주전 자리에서 물러나 있는 상태다. 이에 리웨이펑은 7월 21일 톈진 터다 구단과 합의하에 팀을 떠나기로 결정하였고, 리웨이펑은 톈진 터다의 리빌딩 계획[7]에 대하여 동감하는 반응으로 구단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4년간의 톈진 터다의 커리어를 마감하기로 하였다.[8] 7월 22일, 팀을 떠나는 리웨이펑을 배웅하기 위하여 수 많은 팬들이 톈진의 홈 경기장으로 찾아왔었고 리웨이펑은 차후 행선지에 대해서는, 현역 은퇴를 하거나 친정팀이었던 선전 FC로 컴백[9]하여 남은 시즌을 소화하고 은퇴를 할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말을 아꼈다.

리웨이펑은 톈진 터다에서 2015년 7월까지 총 105경기에 출전하여 3골을 기록하였고, 경고 35회와 퇴장 2회를 기록하였다.


국가대표 생활편집

리웨이펑은 1998년 11월 22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친선경기에 중국 국가대표로 데뷔하였다. 데뷔 후 중국 국가대표팀의 간판 수비수로 각 대회와 친선경기에서 활약하였다. 2008년 3월 15일에 태국 국가태표팀과의 친선경기에서는 국가대표 데뷔 후 약 10년만에 센추리 클럽에 가입하는 영광을 누렸다. 하지만 리웨이펑은 2008년 6월부터 국가대표팀에 호출되지 않았었다. 이후 한동안 국가대표팀과 인연이 닿지 않았었으나, K리그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의 기여를 인정받아, 당시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부임한 스페인의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Jose Antonio Camacho, 1955년 06월 08일 ~ )의 부름으로 2011년 3월 25일에 있었던 뉴질랜드 대포팀과의 친선경기에서 2년 9개월만에 중국 국가대표팀으로 복귀와 더불어 주장으로도 재선임되는 화려한 복귀를 하였다. 이후 카마초 감독의 중국 국가대표팀에는 2011년 11월 15일, 싱가포르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2014 브라질 월드컵 1차 조별예선 경기를 끝으로 선발되지 않았다.

리웨이펑은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총 A매치 통산 112경기에 출전하여 14골을 득점하였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뛰어난 피지컬과 공중볼 장악 능력 그리고 투지가 돋보이는 수비수다. 또한 수비라인을 지휘하는 능력과 리더십도 뛰어나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직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역 시절에 다혈질적인 성격으로 스스로 자멸하는 경우가 많았고 구설수에도 많이 올랐었다.


수상편집

클럽편집

  선전 젠리바오편집

  상하이 선화편집

  수원 삼성 블루윙즈편집

  • FA컵 우승 : 2009, 2010

  톈진 터다편집

  • 중국 FA컵 우승 : 2011

국가대표편집

  중국 국가대표팀편집


근황편집

2015년 9월 2일, 리웨이펑은 중국 갑급리그의 톈진 쑹장의 연습 경기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리웨이펑은 선수 신분으로 복귀한 것이 아닌, 톈진 쑹장의 사무국 차장으로 구단의 업무를 보조하는 새로운 경력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한다.


에피소드편집

 
스즈키 케이타의 멱살을 잡는 리웨이펑

목조르기 달인(?)편집

리웨이펑은 중국대표팀 시절 거친 플레이가 자주 화두에 올랐다. 2005년 7월 30일 대전 월드컵 경기장에서 펼쳐진 대한민국과의 동아시아축구대회에서 유경렬의 목을 조르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황당하게도 리웨이펑이 퇴장당하지 않고 가오린이라는 선수가 퇴장당했는데 당시 만 18세의 가오린선수는 A매치 데뷔전에서 전반 4분만에 억울하게 퇴장당하기도 했다.)[10]


3년 뒤 중국에서 열린 동아시아축구대회에서는 일본의 주장 스즈키 케이타의 멱살을 잡는 행동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11]



투지의 사나이편집

 
붕대투혼을 펼치는 리웨이펑

리웨이펑은 수원 시절 투지 넘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특히 2009년 7월 4일 성남 일화와의 경기에서 보여준 붕대투혼이 돋보였다. 티아고의 골로 1:0으로 앞서고 있던 후반 40분 상대편 김진용과의 헤딩경합중 머리를 부딪치며 쓰러졌고 피를 흘리며 경기를 뛰기 어려운 것으로 보였다. 차범근감독이 최성환의 교체투입을 준비했지만 리웨이펑은 교체를 거부하고 붕대를 감은 뒤 다시 들어가 끝까지 경기를 소화하며 팀의 승리를 지켜냈다.






관중 보호편집

2011년 6월 18일 다롄 스더와의 원정경기 후반 막판 한명의 꼬마 서포터가 경기장에 난입, 심판을 쫓아가 때린 사건이 발생했다. 안전요원들이 꼬마 서포터를 전력으로 제압하고 있던 중 리웨이펑이 가장 먼저 뛰어가 안전요원을 꼬마 서포터로부터 떼어내고 꼬마 서포터를 보호한 사건이 있었다. 리웨이펑의 이런 행동은 축구계 뿐만 아니라 축구계 밖에서도 호평을 받았다.[12]


기타편집

  • 리웨이펑은 수원 입단 후 K리그의 환경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않았는데, 특히 다른 것은 생각하지않고 오직 축구에만 전념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는 평을 남겼다.


경력편집

시즌 소속팀 리그 비고
1998 ~ 2005   선전 핑안 → 선전 젠리바오 중국 축구 갑급 A리그 → 중국 슈퍼리그
→ 2002 ~ 2003   에버턴 FC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임대
2006 ~ 2007   상하이 선화 중국 슈퍼리그
2008   우한 광구 중국 슈퍼리그
2009 ~ 2010   수원 삼성 블루윙즈 K리그
2011 ~ 2015.07.21   톈진 터다 중국 슈퍼리그
선수 생활 은퇴


갤러리편집


참고편집

  1. 2005년 AFC 챔피언스리그는 조별예선 각 조 1위만 8강에 진출할 수 있었는데 4승 1무 1패로 동률을 기록한 수원은 승자승 원칙에 의해 탈락하였다.
  2. 상하이 감독, “리 웨이펑 퇴장이 컸다”, 스포탈코리아 이상헌기자
  3. 거친 플레이 리웨이펑 '우려가 현실로?, 스포츠서울 위원석 기자
  4. 수원 깜짝 방문 리웨이펑, 친정팀에 무한사랑 표현,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5. 빅버드 방문한 리웨이펑, "수원이 그리웠다"
  6. 성남과 텐진의 경기는 2012년 3월 21일로 예정되어있었다.
  7. 리웨이펑 이외에도 톈진 터다의 원클럽맨 수비수 차오 양(曹阳, Cao Yang, 1981.12.15 ~ ), 미드필더 왕신신(王新欣, Wang Xinxin, 1981.04.27 ~ ) 노장 3명이 리빌딩 계획에 포함되었다고 한다. 아리에 한 감독은 노장 선수들의 경기력 문제와 부상 문제로 젊은 선수들을 대신 투입하였는데, 경기력이 더 좋아져서 리빌딩 계획을 진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리웨이펑을 제외한 두 선수는 부상문제가 컸다지만, 부상이 없었던 리웨이펑이 계속 라인업에서 제외되자 중국 언론은 리빌딩 계획의 원인으로 리웨이펑을 지목하게 되었다.
  8. 아리에 한 감독이 2002년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면서 첫 인연을 시작하였다. 이후 톈진 터다로 2011년 이적하였을 때, 아리에 한 감독과 재회하였다. 2011년에는 리웨이펑을 주전으로 기용하여 신뢰를 보내준 아리에 한 감독이지만, 2014년 다시 톈진 터다로 복귀한 아리에 한 감독은 리웨이펑의 노쇠화에 따른 기량 저하로 고민이 점차 커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9. [사커피플] 리웨이펑 “수원에서 2년…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남장현 기자[1]
  10. 주심, 전반 4분만에 엉뚱한 중국 선수 퇴장시켜, OSEN 박상현기자
  11. 日축구협회, '중국축구 이대론 발전 없을 것' 항의서한 전달, 마이데일리 이용욱특파원
  12. 관련 동영상(중국언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