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강조

성남시절의 박강조

박강조(朴康造, 1980년 1월 24일 ~)는 2000년부터 2002년까지 K리그에서 활약한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이다.

K리그 역사상 첫 재일교포 선수이며 재일교포로써는 첫번째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으로 뽑힌 선수이기도 하다.


프로필편집

  • 이름 : 박강조
  • 출생일 : 1980년 1월 24일
  • 유스클럽 : 다끼가와다고등학교 졸업
  • 신체 : 165cm / 58kg
  • 국가대표 경력
2000년 시드니 올림픽대표 예비엔트리
2000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통산 A매치 5경기 출장 1골)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K리그 기록
연도 소속팀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2000   성남 일화 천마 31 8 0 1 1 0
2001 20 15 1 2 1 0
2002 18 17 0 1 2 0
통산 K리그 69 40 1 3 4 0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0년 7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유소년 시절편집

1980년 일본 효고현 아마가사끼에서 태어난 박강조는 부모님이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한국국적을 가지고 있었다. 민족학교에서 축구를 배운 박강조는 다끼가와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재일교포의 설움속에서도 축구를 통해 이를 극복해 나갔다.


교토 시절편집

박강조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1998년 교토 퍼플상가와 계약을 맺고 프로에 입문했지만, 2년만에 방출당하고 말았다. 박강조 본인의 말로는 방출의 이유가 프로의 실력차가 너무나 컸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성남 시절편집

교토에서 방출된 뒤 뛸 팀을 모색하고 있던 박강조는 K리그로 눈을 돌렸고, 성남 일화 천마의 훈련캠프로 들어가 3개월간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차경복 감독으로부터 흡족한 평을 받은 박강조는 계약에 성공하였고, 우여곡절 끝에(?) 성남 일화에 입단하게 되었다. 2000년 31경기에 나와 골 없이 1도움을 기록한 것이 전부였지만, 탁월한 축구시야를 바탕으로 차경복 감독을 만족시켰다. 이러한 능력은 허정무 당시 올림픽대표팀 감독에게도 만족을 주었고, 재일교포로써는 최초로 올림픽국가대표와 성인 국가대표에 뽑히는 영광을 누리기도 하였다. 이듬해인 2001년 K리그 무대 적응에 성공한 박강조는 무릎부상으로 고생하는 와중에도 20경기에 나와 1골 2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정규리그 우승에 앞장섰고, 2002년에도 18경기에 나와 1도움을 기록하면서 활약했다. 하지만, 2003년을 앞두고 최강의 팀을 구상하던 성남에게 박강조는 만족을 주지 못했고 2002 시즌이 끝난 뒤 일본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고베 시절편집

K리그에서 J리그로 복귀한 박강조는 빗셀 고베에 입단했으며, 2011시즌에는 27경기 5골 7도움을 올리는 등 현재까지 통산 301경기 출장 26골을 득점하면서, 재일교포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현재 K리그의 제의도 들어오고 있지만, 박강조 본인은 빗셀에서 은퇴하고 싶다는 입장인듯. 2012년까지 빗셀고베에서 활약하다가 2012년을 끝으로 현역생활을 마쳤다. 은퇴후에는 보트레이서로 활동한다고 한다.


에피소드편집

  • 당시 성남이 박강조를 영입할때 걸림돌이 하나가 있었다. 당시 K리그 선수선발은 드래프트 방식이었는데, 박강조는 자유계약을 맺은 것이었다. 당시에는 재일교포 선수에 대한 규정이 명확하지 않아. 자칫하면 드래프트 신청을 하거나, 대한민국 국적이지만 외국인으로 분류되는 초유의 일이 벌어질 뻔 하였다. 다행히도 한국프로축구연맹 재일교포 선수들은 대한민국 국적으로 인정한다.는 로컬룰을 만들었고, 이 룰은 재일교포 선수들의 K리그 진출에 큰 영향을 끼쳤다. [1]
  • 2002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폴란드 국가대표와 평가전을 치렀던 성남일화는 폴란드에 1-2의 아까운 패배를 당했는데, 이때 박강조는 0:2로 뒤지고 있던 후반 29분 아크서클 정면에서 총알같은 중거리 슈팅으로 만회골을 터뜨렸다. 샤샤까지 있었다면 성남이 폴란드를 잡을수도 있었을텐데 아까운 경기였다. 박강조도 K리그에서 뛰던 시절 이 경기가 가장 기억엔 남는다고 밝혔었다.
  • 당시 K리그에서 뛰던 선수중 최단신 선수였다. 거기다 피부도 뽀얗고 귀엽게 생긴편이라 성남 종합운동장을 찾던 아저씨(!) 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으레 신태용 선수나 박강조 선수에게 상대팀 선수들의 태클이 작렬하면 아저씨들의 쌍욕이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흠좀무.
  • K리그에서 뛸 당시 박강조는 한국의 엄격한 팀문화에 애를 먹었었다. 심지어는 막내라는 이유로 경기중에 자신이 전술의견을 펼 수 없었을 정도였다고 하니.. 그도 그럴것이 하필 박강조가 간 팀이 가장 규율이 세기로 정평이 난 성남이었으니 애를 먹을만도 했다.


같이 보기편집


경력편집

  • 1998 ~ 1999 : 교토 퍼플 상가 / J리그
  • 2003 ~ 2012 : 비셀 고베 / J리그


참고편집

  1. 이후 2001년 서호지(안양LG) 정용대(포항) 김황정 량규사(이상 울산현대), 2002년 김명휘(성남), 2004년 제대일(부산), 2008년 김굉명(경남) 등이 잇달아 K리그 무대를 노크했지만 실제 K리그 1군무대를 밟은 선수는 김황정(7경기 출전) 정용대(4경기 출전) 김굉명(1경기 출전)뿐이었다. 그리고, 안영학을 제외하곤 거의 실패했다.